“원자력발전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원자핵공학을 전공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있지만, 오히려 지금 원자핵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는 황용석 교수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의 방향이 원전 축소로 맞춰지면서 원자핵공학의 전망을 우려하는 시선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에서 에너지 공급원이 다양하지 않으면 급격한 가격 상승이나 공급 문제가 생길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황 학과장은 “장기적으로는 준 국산 에너지인 원자력에너지가 국가 전력 수요의 최소한 3분의 1 정도는 공급하는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7년 기준 국내 총 발전전력량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6%다.
원자핵공학과는 기존의 원자력발전 이외에 핵융합발전과 같은 차세대 청정에너지도 주 연구 분야로 두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 활용되는 플라스마와 방사선 기술도 원자핵공학과의 연구 영역이다.
교수진 - 원자력시스템부터 핵융합, 방사선까지
원자핵공학과는 원자력시스템, 핵융합 및 플라스마, 그리고 방사선 등 크게 세 가지로 세부 전공 분야를 나누고 있다.
원자력시스템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한 운전과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등에 대한 연구와 함께 안전성이 매우 뛰어난 새로운 원자로에 관한 다양한 기술을 연구한다. 교수진 14명 중 절반인 7명이 포진해 있을 만큼 원자핵공학과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현재 전력 생산을 책임지는 기술이어서 그에 관한 연구 수요도 많기 때문이다.
심형진 교수팀이 개발한 ‘맥카드’라는 프로그램은 원자력발전 기술 국산화에 방점을 찍는 성과로 평가 받고 있다. 맥카드는 중성자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다. 중성자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이 원자로 성능과 안전의 핵심 요소인데, 그동안은 외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활용해 왔다. 맥카드는 해외에 수출하는 연구용 원자로에 적용됐다.
핵융합 및 플라스마 연구는 황 학과장을 비롯해 네 명의 교수진이 맡고 있다. 핵융합발전은 수억 도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중수소와 삼중수소 원자핵을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로, 태양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리와 같기 때문에 ‘인공 태양’이라고도 불린다. 플라스마는 핵융합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산업계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용된다.
한국의 핵융합 연구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에 2007년 건설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스타(KSTAR)’는 2016년 수천 도의 플라스마를 70초간 유지해 세계 최장 운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K스타 구축과 실험을 주도한 이경수 전(前) 국가핵융합연구소장은 2015년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무차장으로 선출돼 프랑스에서 ITER 구축을 이끌고 있다. 현재 황 학과장이 이끄는 연구팀도 자체 핵융합실험장치(VEST)를 보유하고 고성능 핵융합로 구현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방사선 분야에서는 가속기와 같은 방사선 발생장치, 방사선의 산업 및 의학 응용 등을 연구한다. 특히 국내에 건설중인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이나 이미 가동 중인 포항의 방사광가속기, 경주 양성자가속기의 건설과 운영에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출신 전문가들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 - 코딩은 기본, 학부에서 대학원 수준 실험
원자핵공학과는 1~2학년 과정에서 수학과 물리 등 공학기초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공은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가르치는데, 공대 내 다른 학과에 비해 실험과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교육이 많은 편이다.
특히 실험의 경우 기초적인 실험뿐 아니라 핵융합 플라스마 실험장치나 열수력 실험 장치, 방사선 발생 장치 등을 이용하는 본격적인 실험도 이뤄진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나 접할 법한 수준 높은 실험 교육이 학부 교과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시뮬레이션의 경우 컴퓨터 코딩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코딩 능력은 필수다. 이를 위해 1학년 때 컴퓨터 언어에서 출발해서 2학년부터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 황 학과장은 “교과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코딩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학부생들이 방학동안 인턴연구원으로 대학원에서 연구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3~4학년 학부생이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대학원 실험실에서 대학원생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미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황 학과장은 “이런 프로그램이 본
인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 지원 - 선배 초청해 진로 강의
원자핵공학과 졸업생의 진로는 매우 다양하다. 원자력 분야의 경우 원자력발전소를 건설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한 원자력 관련 공기업,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는 민간 회사 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 정부 기관이나 연구소에 진출할 수 있다.
핵융합과 플라스마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국가핵융합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에서 관련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
방사선 분야는 가속기 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할 수 있고, 의대나 병원에서 핵의학 연구를 할 수도 있다. 황 학과장은 “다양한 진로를 소개하기 위해 각 분야로 진출한 졸업생들을 초청해 어떤 일을 하는지 듣는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때 굳이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점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장점이다. 우리나라는 원자력과 핵융합 등의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연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인재상 - 에너지 문제 해결 꿈꾸는 인재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이나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연구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황 학과장은 원자핵공학과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좋은 성과를 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원자핵공학의 토대인 물리학적 사고방식을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물리 문제는 외워서 푸는 게 아니라 물리학적 배경지식을 가지고 한 단계씩 논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며 “이런 훈련이 돼있는 학생들이 연구도 잘 한다”고 말했다.
조언 - 유행보다 꿈을 좇아라
황 학과장은 고등학교 시절 물리를 가장 좋아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할 때 공대를 선택했는데, 이후 ‘뭘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재밌는 것을 하자’라는 생각으로 물리학적인 성격이 가장 강한 원자핵공학과로 진로를 정했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 핵융합에너지에 대해 알게 됐고, 이 분야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가장 도전적인 주제라는 생각에 선택했다.
황 학과장은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당장 유망하다는 이야기에 이끌려 전공을 선택하면 그 분야가 침체됐을 때 오히려 힘들어질 수 있다”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좇아 열심히 하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