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만들어진 살 빼는 약에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 포함돼 있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이 약은 이미 국내에 대량으로 불법 유통된 것으로 밝혀져 그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마약성분이 포함된 중국산 살 빼는 약은 무엇이며, 그 부작용은 무엇일까.
최근 일본과 중국 여성들이 마약성분이 함유된 다이어트 식품을 복용하고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일본에서는 7월 20일 현재 이 약품을 먹은 여성 4명이 사망하고 1백24명이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중국산 다이어트 식품이 국내에서도 ‘살 빼는 약’으로 알려져 시중에서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 17일 관세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중국산 살 빼는 약이 중국과 태국 등지에서 한국으로 밀반입된 양은 총 93건, 41만 7천5백61정에 달한다고 한다. 이 약들은 펜플루라민, 분불납명편, 안빈압동편, 펜타민, 디아제팜, 북방감초편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 동안은 주로 우편소포나 여행자 휴대품 등으로 밀반입됐으나 최근에는 태국에서 한번에 7만정 가량을 조직적으로 들여오다 적발되기도 했다.
마약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중국산 살 빼는 약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또한 인체에 어떤 해를 입히는지 알아보자.
장기간 복용하면 중독돼
‘알약 하나로 한달에 10kg을 뺄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한번쯤 결심한 사람에게 이처럼 달콤한 유혹은 없을 것이다. 주부 박혜숙(36세, 가명)씨도 얼마 전 이런 유혹에 빠져 낭패를 당할 뻔 했다. 그녀는 얼마 전 찜질방에 갔다가 살 빼는 약 좋은게 있다는 말에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구입했다. 까만 캡슐약과 하늘색 알약으로 구성된 이름모를 약이었다. 며칠을 복용한 박씨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입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며 온 몸에서 열과 함께 가슴이 큰 바위로 눌리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놀란 박씨는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진찰 결과, 무허가 다이어트 약품으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것.
최근 한달에 10kg 이상을 빼준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건강에 치명적인 중국산 불법 다이어트 약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대문 수입상가나 찜질방, 미용원 등지에서 불법으로 거래되고 있는 이들 약품은 대부분 허가를 받지 않는 불법 약품들이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기도 한 이 약은 식사를 해가면서 다이어트가 가능하다고 선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약품이 마약성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마약성분은 펜플루라민과 암페타민 계열이다. 이들 성분은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일시적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를 갖지만 중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기복용하면 중독성과 심장, 간, 폐 등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박경호 서울대병원 약무과장은 “펜플루라민과 암페타민 계열의 약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중독은 물론 심판막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사망케할 수도 있으며 정신과적 손상도 유발할 수 있다”고 위험성을 지적한다.
사실 이번에 문제가 된 중국산 살 빼는 약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비만약의 일종이다. 비만약이란 비만을 일종의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약으로 치료하고자 개발된 약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 정도가 가벼우면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치료하지만 정도가 심할 경우, 또는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나아지지 않을 경우엔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고 비만 치료 지침에 규정한 바 있다.
최근 생활여건과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비만은 현대인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됐다. 가장 좋은 다이어트 방법은 적당한 운동과 식이요법이다. 하지만 바쁜 현대인은 시간을 내기도 힘들뿐더러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식욕을 억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닥터유 비만클리닉의 유은정 원장은 “요즘 들어 부쩍 비만약을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비만약을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만능약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비만약의 세가지 종류
비만약은 기능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흔히 쓰이는 비만약은, 제니칼처럼 소화기관에 직접 작용해 음식물 흡수를 저하시키는 약제다. 말 그대로 섭취한 영양소의 흡수를 차단해주는 약이다. 여기에는 섬유식품, 다이사카리데이즈(Disaccharidase) 억제제 등이 있다.
섬유식품은 몸에서 흡수되지 않는 비영양성 다당류로 일단 먹으면 ‘배부르다’는 느낌을 갖게 해 다이어트 효과를 나타낸다. 다이사카리데이즈 억제제는 탄수화물의 분해효소인 다이사카리데이즈의 작용을 억제해 탄수화물의 흡수를 부분적으로 차단한다.
또다른 비만약 종류는 신진대사 촉진제다. 이 약제는 신체의 대사율을 촉진함으로써 칼로리 소비를 증가시킨다. 마치 운동한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종류에는 갑상선 호르몬제, 교감신경 작용제 등이 있다.
갑상선 호르몬제는 천연 갑상선 호르몬과 유사하게 생긴 약제로서 갑상선을 자극해 체내 열량생산과 기초대사를 촉진시킨다. 그러나 과다하게 사용하면 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으므로 사용전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교감신경 작용제는 신체의 에너지 발산을 촉진하는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운동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약제다. 그러나 이 역시 여러가지 부작용이 보고돼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
포만중추 인위적으로 자극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비만약은 식욕억제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중국산 약에 포함된 펜플루라민과 암페타민은 모두 식욕억제제의 일종이다. 사람의 식욕은 대뇌와 척수 사이에 있는 시상하부의 포만중추에서 주관한다. 포만중추가 자극을 받으면 사람은 ‘배부르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포만중추를 약물로 자극해 식욕을 줄이는 것이 식욕억제제의 원리다.
포만중추의 자극은 신경세포 사이의 정보전달에 의해 이뤄지는데, 그 매개체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10여가지가 된다. 이 중 식욕과 관계된 것은 세로토닌과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이다.
사람이 음식물을 섭취하면 시상하부의 신경세포에서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노드아드레날린의 합성이 급격히 이뤄진다. 어느 정도 합성이 끝나면 이 신경전달물질들은 인접한 신경세포로 분비되고 이 정보는 다음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상하부 안쪽에 있는 포만중추를 자극하는 것이다. 식욕억제제는 바로 이 과정을 간섭해 ‘배부르다’는 느낌을 좀더 빨리 갖게 하는 약제다.
현재 개발된 식욕억제제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포만중추를 자극한다. 식욕억제제 자신이 마치 신경전달물질처럼 행동하는 경우와 특정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는 두가지 방식이다.
엑스터시와 성분 같은 비만약
하지만 대부분의 식욕억제제는 부작용을 갖고 있다. 포만중추가 있는 시상하부에는 사람의 체온조절중추와 기분조절중추 등도 함께 있다. 식욕억제제가 포만중추에만 영향을 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수십가지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고 흡수되는 매우 복잡한 신경회로망인 사람의 뇌속에서 이런 기대는 무리다.
더욱이 하나의 신경전달물질이 한 조절중추에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작용의 소지가 있다.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은 포만중추외에도 기준조절중추 등의 다른 조절중추를 자극한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돼 있다. 따라서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지녀 포만중추를 자극하는 식욕억제제의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크다. 대표적인 예가 암페타민이다.
암페타민은 지난 1991년 미국 인구의 7% 이상이 복용했을 정도로 식욕억제 효과가 크다. 암페타민의 정확한 구조명은 3,4-메틸렌다이옥시암페타민(3,4-methylenedioxyamphetamine)으로 그 분자구조가 도파민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복용할 경우 시상하부의 포만중추를 효과적으로 자극하지만, 이와 함께 기분조절중추도 자극해 여러 부작용을 나타낸다. 특히 지각과 정서를 담당하는 시상하부 내의 림빅 시스템(limbic system)을 자극해 자꾸 약물을 투약하고 싶은 중독성을 유발하며, 림빅 시스템 내에 도파민 농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와 정신적 장애를 초래한다. 도파민이 과다분비돼 발생하는 망상과 환시, 성적과다행동 등 정신분열증의 전형적인 증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얼마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엑스터시 마약도 암페타민 계열의 화합물이다. 암페타민은 이같은 부작용이 보고되면서 지난 1992년부터 그 사용이 철저히 금지된 매우 위험한 약물이다.
폐와 심장에 심각한 부작용
펜플루라민은 암페타민과는 다른 메커니즘으로 식욕억제효과를 갖는다. 즉 신경전달물질의 모양새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신경전달물질이 더 많이 분비되게끔 자극함으로써 식욕억제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펜플루라민은 여러가지 신경전달물질 중에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한다. 또한 적은 정도지만 방출된 세로토닌이 원래의 신경세포로 다시 흡수되는 과정도 막는다. 신경세포 말단에는 분비된 신경전달물질을 다시 흡수하는 재흡수 채널이 있다. 이 재흡수 채널을 방해하면 분비된 세로토닌이 다시 흡수되지 못해 실제로는 더 많은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효과를 나타낸다.
펜플루라민은 세로토닌에만 특이적으로 작용해 시상하부 내의 세로토닌 양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식욕억제 효과가 매우 크다. 이런 특징 때문에 펜플루라민은 이미 196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지난 1980년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살 빼는 약으로 널리 쓰였으며, 1996년에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허가도 받았다. 하지만 1997년 미국에서 이 약을 먹은 비만환자들이 폐와 심장에 이상을 호소하면서 약품의 사용이 금지됐다. 경미한 부작용으로는 설사와 입마름 증상을 보이며, 치명적일 경우 폐고혈압과 심장 판막 이상을 초래해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암페타민과 펜플루라민은 모두 약제의 일반명이며 이 성분을 포함한 비만약에는 모두 다른 이름이 붙는다. 따라서 일반인이 약품의 상품명만으로 어떤 성분이 포함됐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 피해가 더욱 컸던 이유 중 하나다. 중국산 살 빼는 약에는 모두 차잎과 생약성분으로 만들어졌다고 적여있다.
유 원장은 “암페타민과 펜플루라민은 매우 위험한 약물로, 일반인이 의사의 처방없이 이 성분의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비만약은 반드시 의사와 협의 하에 복용해야 하며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