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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너희가 지겹다고만 여겼던 화학수업에서 우리는 인간이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발견했다.
 

늘 제자들에게
 

누리 양에게

멈출 줄 모르는 지구의 운동은 우리를 또 다시 한 해의 시발점으로 옮겨 놓았다. 인문여고 거기서도 문과생인 너희들과 지겹고 골치 아프다는 화학을 공부한 지도 벌써 여러 해를 넘겼구나.

누리야!

너 기억하겠니? 너희들이 그렇게도 싫다던 화학수업에서 나는 이런 점을 강조했지. 화학을 배움으로써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자고, 자연의 순리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인간답고 행복한 삶이라고 말이야.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에서 남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나의 변화는 없다는 것을, 산화·환원 반응에서 나의 기쁨이 남의 슬픔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을, 지구의 복사평형에서 내가 받는 것 만큼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했지. 결국 너희가 지겹다고만 여겼던 화학수업에서 우리는 인간이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발견하지 않았니.

누리야!

그래 몇 해 동안 사회생활을 해보니 어떠니?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지 않든? 올해는 너도 이 사회의 주인됨을 확인하는 첫 투표권을 행사할 나이지. 너는 지금쯤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인 소중한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겠구나.

우리가 보다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많은 정보가 있어야 되겠지. 자연은 우리에게 수많은 판단자료를 제공해 주는 정보의 보고(寳庫)란다. 너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정보는 고등학교 2학년 끝날 무렵에 화학평형에서 얻을 수 있을 거야. 우리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

대자연의 자발적인 변화의 방향은 두가지가 있다고 했지. 그것은 보다 안정으로 가려는 방향과 보다 무질서해지려는 방향이라고 말이야.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되는 것은 보다 안정해지려는 방향으로의 변화이고,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는 것은 보다 무질서 해지려는 방향으로의 변화지.

여기서 무질서해지려는 변화는 자유로워지려는 변화라고 했지. 즉, 대자연은 안정과 자유를 향해 가려고 한다. 언뜻보기에 대자연은 이 두 방향을 동시에 취할 수 있을 것 같지 ? 그러나 에너지 차원에서 보면 안정은 에너지가 낮아지는 쪽이고, 자유는 에너지가 높아지는 쪽이므로 둘은 동시에 향할 수 없는 방향이다. 한편 안정은 자유의 반대 방향이므로 억압과 같은 것이고, 자유는 안정의 반대 방향이므로 불안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 즉, 안정과 자유는 동시에 취할 수 없는 것이며, 안정과 억압 그리고 자유와 불안(혼란)은 지킬박사의 숨은 모습 하이드처럼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누리야!

그럼 우리는 안정과 자유중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이 질문의 해답을,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에서 찾아 보자. 소금을 물에 넣으면 처음에는 거의 절대적 억압(안정)상태에 있던 소금이 물을 만나서 자유를 찾아 신나게 물속으로 흩어져 녹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 녹으면 녹은 알갱이중 불안을 느끼는 알갱이가 다시 소금으로 되돌아 간다. 이 과정에서 자유를 찾는 속도(용해속도)와 안정을 찾는 속도(석출속도)가 같아서 동시적 평형을 이룬다. 이때 거시적으로는 소금이 더 이상 녹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대자연의 대부분의 변화는 이러한 소금의 용해반응 처럼 안정을 찾으려는 반응도 일어나고, 동시에 자유를 찾으려는 반응도 일어나는 가역반응으로 이루어진다. 이 가역반응은 화학평형을 이루게됨을 알고 있을거야.

누리야!

우리가 찾는 정보는 바로 이것이 아니겠니? 즉,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안정을 향해 갈 수 없고, 또한 동시에 자유를 향해 갈 수도 없는 거야. 왜냐하면 오늘의 우리 사회는 절대적 불안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절대적 억압상태도 아니잖아. 다만 지금의 상태보다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정을 향해 가고,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유를 향해 가면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회적 평형을 이루게 되지.

또한 소금의 녹는 정도가 온도에 따라 달라지듯이 사회적 평형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수의 희망 쪽으로 이동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자연의 순리대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형을 이루려면, 우리 국민들이 안정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알고 바로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정이냐? 아니면 혼란이냐?"는 흑백논리에서 무턱대고 안정만을 택할 것이 아니라 안정의 숨은 모습인 억압을 볼 줄 알고, 혼란의 숨은 모습인 자유를 볼 줄 아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할 게야.

누리야!

이렇듯 대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단다. 너의 소중한 한 표도 자연의 순리에서 터득한 지혜를 바탕으로 행사해야 하지 않겠니? 앞으로의 삶에서도 너는 항상 자연이 참 스승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1992년 3월
사직골 쇠미산 기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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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옥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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