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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아성에 도전하는 아시아의 인류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있는 830m 높이의 부르즈 칼리파입니다. 여기에 중국이 최근 도전장을 던졌습
니다. 838m 높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층수는 220층이나 되는데, 놀라운 것은 공사 기간입니다. 단 90일만에 세우겠다고 합니다. 높이와 속도, 두 가지 분야에서 기록을 내겠다는 속셈이지요.

이렇게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 중국이 최고라고 내세우는 주장이 또 하나있습니다. 바로 인류의 조상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입니다.

인류의 진화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코웃음을 칠 만할 일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서도 소개했듯, 최초의 인류는 최소 400만~5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부 종이 포함되면 600만 년 전까지 올라갑니다(2012년 4월호 ‘경선! 최초의 인류는 누구?’ 참조). 현생인류 역시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정말 아시아가 고향일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최초의 직계 조상이?

19세기 말 다윈의 연구를 계기로 진화론이 알려지면서, 인류에게도 조금 ‘덜 인간스러운’ 모습, 즉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모습을 한 조상이 있었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의 해부학자였던 외젠 뒤부아 역시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고요. 뒤부아는 최초의 인류가 지금의 유인원과 비슷한 곳에 살았고, 화석도 유인원이 사는 울창한 숲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돈을 들여서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을 발굴한 끝에, 1891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인류 화석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자바인’이었습니다.

자바인 화석은 머리뼈가 작고 납작한 대신, 넙적다리뼈는 인간과 거의 똑같이 생겼습니다. 이 말은 자바인이 현생인류에 비해 비록 머리는 덜 똑똑하지만 두 발로 성큼성큼 걸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뒤부아는 ‘똑바로 서서 걸은 유인원 인간’이라는 뜻인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종은 훗날 호모 에렉투스의 일종이 됩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뒤부아는 인류의 직계 조상을 제대로 잘 찾았고, 고인류학계에서 인정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이었던 당시는 달랐습니다. 똑똑함을 자랑하는 인류의 조상이 머리보다 다리가 먼저 발달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머리가 작고 지능이 낮은 상태로 아무리 잘 걸어봤자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죠. 뒤부아는 학계와 사회의 냉대 속에서 잊혀졌고, 결국 우울하게 여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최초의 직계 조상을 향한 레이스

최초의 직계 조상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20세기에도 이어졌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세 대륙에서 1920년대에 동시에 이뤄졌죠. 유럽에서는 영국 런던 근교인 필트다운에서 발견된 ‘필트다운인’이 있었습니다. 필트다운인은 사람들이 인류 조상에게 기대하던 그대로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 환영 받았습니다. 크고 둥근 머리뼈와 무시무시하게 생긴 이빨입니다. 뛰어난 두뇌와 위협적인 몸을 갖춘 용맹한 모습이었죠. 이런 멋진 인류의 조상이 영국 수도 부근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에, 당시 쇠락해가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사람들은 작게나마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필트다운인은 발견 직후부터 조작된 화석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1950년대에 가짜로 판명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타웅 아이’라는 작은 화석입니다. 호주의 고인류학자 레이먼드 다트가 발견한 새로운 종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였죠. 지금은 이 종이 유력한 인류의 조상 후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종 역시 무시당했습니다. 미개하다고 업신여김 받던 아프리카에서 인간 같은 훌륭한 종의 조상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인류학자들은 두 후보를 대신해 세 번째 후보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시아인 중국에서 발견된 베이징인이었습니다.

베이징인은 1920년대에 중국의 수도 베이징 근처의 동굴 저우커우뎬에서 발견된 화석입니다(2012년 12월호 참조). 처음에는 ‘베이징에서 나온 중국인’이란 뜻으로 ‘시난트로푸스 페키넨시스’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1940년대에 자바인과 함께 호모 에렉투스에 포함됐습니다. 베이징인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뇌 용량의 두 배에 이를 만큼 머리가 컸습니다(현대인의 약 3분의 2). 그래서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가 됐고, 중국 역시 이를 바탕으로 ‘최초의 직계 조상이 중국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되던 초기 인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어떻게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했는지 연결이 잘 안 됐던 것입니다. 이 수수께끼는 1970년대 이후 동아프리카에서도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면서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베이징인만 한 머리에 현생인류와 맞먹을 만큼 몸집이 큰 이들은 무려 150만~200만 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이로써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뒤 큰 머리와 몸집, 우수한 사냥도구를 바탕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다는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베이징인과 자바인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거대한 물줄기의 하나일 뿐이었고요.







내 고향은 아프리카 vs. 아시아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1990년대에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자바인의 연대가 18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와 거의 똑같이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가 아시아에서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자바인 화석의 연대는 논란이 많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분명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다 확실하고 강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터키 북동쪽에 있는 나라, 조지아의 드마니시 지방에서 이상한 화석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화석은 머리도 몸집도 별로 크지 않았습니다. 함께 발견된 석기 역시 그다지 세련되지 않습니다. 고인류학자들은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큰 머리와 몸집, 뛰어난 사냥도구를 지닌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전세계로 확산했다는 가설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화석의 연대가 측정되자 시름은 더 깊어졌습니다. 아프리카의 에렉투스와 동시대인 180만 년 전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런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에렉투스 이전에 이미 작은 머리와 몸집을 지닌 인류 조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허술한 도구를 가지고 아프리카를 떠납니다. 도중에 조지아의 드마니시를 거쳐 인도네시아 자바까지 흘러 이주했습니다. 이후 이들 집단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 중 아시아 집단 하나가 살아남아 따로 진화합니다. 그게 바로 호모 에렉투스입니다. 이들 역시 아시아를 떠나 전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 역시 그 후손입니다.

아직은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바깥에서 에렉투스가 기원했다는 가설은 더이상 황당무계한 주장이 아닙니다. 그 중 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 맞을지, 우리를 포함해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201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윤신영 기자, 글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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