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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기계공학부의‘창의적 공학설계’는 롤러코스터 강의로 더 잘 알려진 수업이다. 높이 1.5m의 미니 롤러코스터를 제작하기 위해 한학기 동안 수강생은 수많은 밤을 지새며 온갖 정성과 땀을 쏟아 붓는다. 어찌보면 단순한 롤러코스터뿐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공학설계의 기초부터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엔지니어링의 진수가 들어있다.


“자! 준비하시고∼, 롤러코스터 출발!”

잡고 있던 손을 놓자, 골프공은 눈앞에 펼쳐진 까마득한 내리막 궤도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급경사의 레일을 따라 흐르던 골프공은 연속 두바퀴를 회전하더니 마지막 트위스트 레일을 지나 도착점에 무사히 당도한다.

대부분의 1학기 강의가 끝나 한적하기까지 한 6월 중순의 대학 캠퍼스. 수원에 위치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는 초여름의 더운 바람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듯한 뜨거운 함성이 일었다. 함성의 주인공은 최재붕 교수(기계공학과, 38세)의 ‘창의적 공학설계’를 수강하는 공학도들.

지난 6월 15일, 이 강의의 수강생은 그동안 수많은 밤을 지새며 흘린 ‘땀’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모였다. 4-5명이 팀을 이룬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열정’과 ‘혼’이 듬뿍 담긴 거대한 구조물을 손에 들고 강의실로 향했다. 바로 미니 롤러코스터. 최교수 강의의 수강생은 한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미니 롤러코스터 경진대회’에 참가해 성적을 평가받는다. 오늘은 바로 롤러코스터 경진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20초를 사수하라!

경진대회가 열리는 강의실 안은 수강생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15개 팀으로 나뉘어진 수강생은 발표 차례를 기다리며 자신의 롤러코스터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라 분주했다.

미니 롤러코스터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롤러코스터를 축소해 놓은 것이다. 급격한 경사 궤도와 3백60°회전 등 스릴을 위한 요소는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궤도 모양은 다소 ‘파격’적이다. 올해의 가장 인기있는 롤러코스터 디자인 컨셉은 역시 축구였다. 롤러코스터 주위에 ‘붉은 악마’의 깃발을 내건 팀부터, 롤러코스터 받침대가 아예 축구장 형태인 팀도 있었다.

대회에 참가하는 미니 롤러코스터는 높이 1백50cm, 길이 80cm, 폭 45cm를 넘을 수 없다. 팀마다 허용되는 재료비는 8만원으로 전액이 기계공학과에서 지급된다. 대회의 포인트는 출발점에서 자유낙하를 시작한 골프공이 제작된 레일을 따라 내려가 도착점에 정확히 20초만에 도착할 수 있도록 궤도를 설계해야 하는 점이다. 또 레일에는 최소 2회의 3백60° 회전부와 3회 이상의 교차부가 포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수강생은 같은 팀원끼리 숱한 밤을 새며 독특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가능한 구조를 계산하며 실제 롤러코스터로 작동하는지 수없이 테스트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자신들만의 롤러코스터가 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수강생은 프로젝트의 기획과 개념설계, 구체설계, 그리고 상세설계 등 공학설계의 기본 절차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대회 성적은 골프공의 도착 시간과 롤러코스터의 독창성, 미적감각, 골프공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신뢰성과 안전성, 그리고 롤러코스터 제작과정을 발표할 때의 발표력 등의 점수로 결정된다. 올해의 우승은 비교적 정확한 시간(19초09)과 현란한 회전부, 탁월한 디자인과 안전성을 선보인 ‘부실공사’팀에게 돌아갔다. 최종 보고서만 잘 작성한다면 A+는 따놓은 당상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한 공학설계



과학적 사고와 창의적 아이디어

‘창의적 공학설계’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어떻게 공학적으로 실현하는가를 배우는 강의다. 수강생은 이 강의를 통해 언뜻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모아 하나의 제품으로 만들기까지 몸소 익혀야 할 여러가지 공학적 기술을 배운다. 미니 롤러코스터 테스트는 이런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서 수강생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데 안성맞춤이다.

수학과 물리를 바탕으로 한 공학기술, 특히 공학설계는 복잡한 수치계산과 어려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능숙히 다뤄야 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공학설계 강의는 CAD나 CAM같은 어려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쉽게 풀이하고 반복적으로 연습시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최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그런 기술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좀더 중요한 점은 엔지니어로서 기본 자질과 밑거름을 충실히 쌓는 것입니다.”

미니 롤러코스터의 레일은 제한된 공간에서 주어진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매우 복잡하게 꼬여있다. 이런 궤도를 설계하려면 컴퓨터 기반의 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능력이 필수다. 하지만 최교수 강의에서 이런 기술은 그다지 필요치 않다. 수강생 대부분이 공학도로서 첫걸음을 막 떼기 시작한 신입생인 탓도 있지만, 최교수가 수강생에게 이런 능력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학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공학적으로 안정된 구조물을 설계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기획과 팀 운영, 공학도로서 구조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엔지니어링 센스’와 소비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성설계 등은 앞으로 공학도로서 더 커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밑거름이다. 이 때문에 ‘창의적 공학설계’는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적극 추천하는 명강의 1순위다.

최교수는 ‘설계는 창의적 사고와 연역적 사고의 반복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 인간의 두뇌는 크게 좌뇌와 우뇌로 나눌 수 있는데, 이중 좌뇌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 원리의 사고를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과학자나 공학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이다. 이에 비해 우뇌는 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부분으로, 소설가나 작곡가, 화가 등 예술가에게 발달돼 있다.

지금까지의 공학설계 수업은 수강생의 좌뇌에서 나오는 과학과 공학적 사고를 중시했다. 반면 학생들의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는 주어진 텍스트와 정해진 관습에 의해 무시당하거나 묵살되기 일쑤였다. ‘교과서에 의하면’‘선배들의 선례에 의하면’이라는 말 한마디에 참신한 아이디어는 기존의 규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변형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폐기됐다. 최교수는 학창시절부터 이점이 무척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자라는 후학들의 ‘재능’을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아이디어가 아직은 미숙하고 모자라는 점이 많지만,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을 생각해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최교수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공학설계는 공학적으로 가능하고 합리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이와 함께 설계자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동시에 담고있는 통합적인 기술이다.


각양각색 적성따라 팀 구성

‘창의적 공학설계’ 수업은 철저히 팀 위주로 진행된다. 중간고사를 대신하는 ‘자유 프로젝트’ 수행은 물론이고, 기말고사격인 미니 롤러코스터 대회도 팀 단위로 진행된다. 중간고사인 자유 프로젝트는 공학 이론이나 실현가능성 등에 상관없이 말 그대로 자유롭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상품화시키는 절차를 보고서 형식으로 제출하는 것이다. 평가도 팀 단위로 이뤄져, 팀의 성적이 곧 구성원의 성적이 된다. 개인이 아무리 혼자 잘해봐야 소용없다.

최교수는 “엔지니어로서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적성과 특성을 확인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며 “팀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최선을 다해 성과물을 평가받는 과정은 공학설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말한다.

팀 기반의 프로젝트 위주 수업을 진행하려면 팀을 구성하는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 최교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팀 구성법을 도입했다. 바로 ‘인성에 따른 팀 구성법’이다.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떤 이는 전략가로서 적당하고 다른 이는 개발자로서 적당하다. 또한 시장 분석가도 있어야하며 팀원 간의 갈등을 중재할 중재자도 필요하다. 이 모든 능력을 한 개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각기 다른 특성과 능력을 가진 개인을 팀 전체에 골고루 배치해, 팀 전체가 이 모든 특성을 발휘하게 하는 방법이 최상의 선택이다. 즉 인성에 따른 팀 구성법은 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팀을 구성할 때, 구성원 각자의 특성과 능력을 고려해 팀 전체가 최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창의적 공학설계’를 수강하는 학생은 강의가 시작되면 이색적인 적성평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공학설계 연구센터 웹사이트(http://me210.stanford.edu/00-01/me310-web/public-index.html)에 접속해 자신의 적성을 평가한 뒤, 그 결과를 제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팀원으로서 자신은 어떤 역할에 적당한지, 공학설계자로서 자신은 어떤 특성이 뛰어난지를 평가할 수 있는 항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글쓰기 스타일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화려하고 묘사적이다’ 또는 ‘정확하고 엄밀하다’의 보기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런 질문들을 하나하나 대답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적성이 도표로 정리돼 나온다. 수강생은 이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하는 것이다. 최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각각 다른 특성과 인성을 가진 수강생을 팀 전체에 골고루 배치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팀 전체는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골프공은 설계된 레일을 따라 정확히 20초만에 도착점에 도착해야 한다.



공학수업의 ‘파워 프로그램’

지난 5월말 ‘창의적 공학설계’를 수강하는 모든 학생은 에버랜드로 현장학습을 나갔다. 다가오는 경진대회를 대비해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공학적 센스’를 찾기 위해서다. 현장으로 나간 수강생은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인 ‘독수리 요새’ 담당자가 준비한 1시간 가량의 특강을 들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에 교실에서 배운 이론을 합치면 프로젝트 결과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교수는 “외국의 경우 학계와 산업계의 연계는 당연”하다며 “우리의 공학수업도 강의실에서 이론만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현장과의 끝없는 연계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최교수는 다음 학기부터 현장의 전문가를 아예 학교로 초빙해 특강을 개최할 계획이다.

한국 축구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처럼, 최교수는‘창의적 공학설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그만의‘파워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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