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전자제품 개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성능을 발휘하고, 잔 고장 없이 일정 기간 동안 수명이 보장되는 제품을 생산한다고 해도 소비자의 집 앞까지 안전하게 배달되지 못한다면 도루 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따라서 배달과정에서 아무 탈이 없으려면 제품을 잘 포장해야 한다. 때문에 제품 포장이 얼마나 견고한지에 대한 테스트는 전체 평가과정에서 중요한 항목에 속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포장을 무조건 튼튼하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제품을 포장할 때 안전성도 중요하지만, 비용과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쓸데없이 과대하게 포장하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배달 후에 쓰레기로 전락하는 포장지가 오늘날 환경문제에서 골치 덩어리다. 따라서 제품의 특성에 따라 적당하게 포장돼야 한다. 그런데 적당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맞은 포장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데이터다. 공장에서부터 소비자의 집 앞까지 배달과정에서 제품이 겪는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제품이 소비자의 집까지 배달되는 과정은 빤해보인다. 우선 공장에서 트럭과 같은 운송수단에 실리게 되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집까지 이동한 후 최종적으로 운반자가 집 안으로 옮겨놓는다. 이 과정에서 서투른 운반자가 제품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 외에는 특별히 심각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국내 전자제품 회사에서 먼 나라로 수출할 경우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인도로 수출하는 냉장고를 생각해보자. 우선 공장에서 차량으로 선착장까지 제품을 이동시켜야 한다. 이때 도로를 달리는 차량 속에서 제품은 진동을 겪게 된다. 배에 실린 후에는 인도까지 가는 동안 바다의 끊임없는 출렁거림과 고온 다습한 인도양을 만날 것이다. 인도에 도착한 후 비포장도로를 며칠 동안 지나갈 수도 있다.
포장재 줄이기 위해 제품의 견고성 조사
또 겨울철에 러시아로 수출되는 제품은 어떨까. 시베리아 철도로 운송된다면 제품은 기차의 진동과 영하 40-50℃의 혹독한 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이처럼 제품이 어디에 사는 소비자에게로 팔릴 지에 따라 온도, 습도, 진동, 충격과 같은 환경적 요인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실제 데이터를 얻기 위한 방법은 진짜 제품이나 크기와 무게가 같은 제품의 모형을 직접 배달해보는 것이다. 이 내부에 온·습도, 진동, 충격 센서를 넣은 상태로 말이다. 이를 통해 얻은 실시간의 변화가 바로 포장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된다.
제품의 견고성에 대한 데이터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제품은 몇가지 테스트를 받는다. 제품을 수십cm의 높이에서 떨어뜨리고선 어느 부분이 잘 파손되는지를 조사한다. 이때 집중적으로 조사되는 높이는 최종적으로 배달하는 사람이 실수로 땅에 떨어뜨린다고 했을 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비디오 플레이어를 배달할 때 운반자는 비디오 플레이어 상자를 대략 배 쯤의 높이로 들 것이다. 이 외에도 제품을 여러 방향으로 강력한 프레스로 눌러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충격까지 이겨내는지를 파악한다.
제품의 견고성이 조사되는 까닭은 포장재만으로 모든 운송 상황을 이겨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제품이 배달중에 견뎌내야 하는 충격량이 70G(G는 중력가속도를 의미한다. 70G는 중력가속도의 70배다)라면 포장재 자체를 이 값에 맞도록 설계할 때 아주 두꺼운 스티로폼이나 충격 흡수용 포장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제품이 30G를 견뎌낸다면, 포장재는그 나머지인 40G를 이겨내도록 설계할 수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품의 견고성 테스트 결과에서 파악된 약한 부위가 특별히 보호되도록 포장설계된다. 한편 제품의 포장설계에서 운송 시 얼마나 많은 칸으로 제품을 쌓을 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점이다.
포장설계가 끝나면 각종 장치에서 제품을 포장된 상태로 진동, 온·습도, 낙하, 충격 시험을 치른다. 아예 시베리아 철도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장치 내에 집어넣고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이제 제품이 새로 배달됐을 때, 새 제품에만 혈안이 되지 말고 한번쯤 이를 보호해줬던 포장에 대해 눈길을 보내보자. 제품마다 다른 포장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