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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는 밝혀졌지만 형태는 불확실

구조적 증거

경락(經絡)이라는 단어는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의 소문·영추를 비롯, 많은 고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인체의 생리적 기능 및 치료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인체를 순행하며 생명현상을 발현시키는 물질을 기(氣)와 혈(血)로 보았으며 그 순행통로를 경락이라 불렀다. 그 중 큰 줄기는 경(經), 이들을 연결하는 작은 모세관같은 줄기를 락(絡)이라 한것.

그렇다면 과연 경락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조직일까, 아니면 공중의 기류처럼 보이지는 않고 현상만 있는 어떤 흐름일까.


(그림) 혈수도(穴樹圖) 단면


순환계·신경계는 경락과 사촌

경락이론은, 체표에 나타나는 특이한 반응점을 살피고 동시에 어떤 일정한 자극을 가한후 감응경로를 추적하면서 얻은 지식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치료의 점(點)들이 장기간의 경험을 거치면서 점차 경락이라는 선(線)의 개념으로 발전됐고, 치료효과의 귀납을 통해 각 경락은 해당 장부에 배속된 것이다.

경락이 형태가 있다면 체내에서 어떤 맥관계(순환계)의 형태로 확인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중추신경계통을 중심으로 한 그물망(신경계)같은 존재일까. 한마디로 현재까지는 경락구조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연구는 확실한 정설을 얻지 못한 채 의견들이 분분한 실정이다.

경락을 따라 신경, 동·정맥, 임파관 등이 주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신경계와 맥관계를 경락에 연결시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행이 경락과 모든 부분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어느 학자는 경락의 분포와 순행하는 현상을 그림(혈수도, 穴樹圖)으로 나타냈다(그림). 혈수도는 인체를 하나의 거대한 나무로 보고 나무에 영양을 수송하는 통로를 경락체계로 파악한다. 또한 곳곳에 그 통로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는 미세한 연락망이 형성돼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붉은 동맥, 푸른 정맥 및 신경 가지가 경락체계에 포함돼 있는 것. 즉 이 학자는 경락시스템을 신경 혈관 등의 집합체인 '포괄적' 맥관계로 이해한 것이다.

또 경락을 연구할 때, 피부표층과 심층에 존재하면서 혈관을 연결하는 각종 관통혈관이 몸 표면의 통전(通電)을 돕고 자율신경과도 관련됨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혈액이 흐르는 선을 따라 피부온도를 재면 온도측정기 사진에 고온점이 많이 나타난다. 이 고온점이 바로 경락 경혈의 분포와 일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해도 혈관이라는 한정된 체계만으로 경락에 대한 이해가 끝날 수 없다. 우리가 침을 놓는 장소는 사혈(瀉血)을 목적으로 자침할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혈관을 피한 근육층이기 때문이다.

한편 생리식염수나 기타 주사약재를 피하에 주사할 때 결합조직의 능동적 수송통로를 통한 흡수현상이 생기는데, 그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부분이 경락과 일치한다 해 결합조직 내 조직액의 흐름을 경락전도현상이라 보기도 한다. 만일 그 흐름에 이상이 생기면 세포활성이 변하거나 조직세포의 공간적 배치가 조절되지 않아 구진, 검은 사마귀, 혈관종 등의 현상이 발현될 수 있다.

사실 내부 장기의 변화가 경락을 통해 외부에 발현되고, 그 발현된 부위의 색깔, 윤택, 경결도, 피부융기·함몰상태 등을 고려해 병증을 진단 치료하는 한의학적 방법을 생각하면 이 설명이 크게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실험들

경락은 인체에서 보다 특이한 반응을 가지고 경혈이라는 작은 점들로 구성된다. 경혈은 해당 경락을 통해 오장육부와 연결되므로 오장육부의 질병을 치료할 때 침을 놓고 기를 얻는 목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혈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일까.

프랑스의 한 학자에 따르면 토끼와 인체의 경혈은 종 모양으로 몸의 약간 깊숙히 위치하는 콜라겐 구조이며, 여기에 나선모양의 혈관망과 콜린 동작성을 갖는 무수신경섬유가 여러겹 둘러싸고 있고, 주변에 유수신경섬유와 림프관이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1961년 북한 학자 김봉한은 자칭 '봉한소체'라 이름지은 경혈이 '봉한관'이라는 경락에 연결돼 있음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 팔에 청색세포액을 바른 다음 얼마후 이를 닦아내면 군데군데 검은 사마귀모양의 반점이 남는다. 이 때 반점에 침을 찔렀더니 침의 두부가 미세한 원을 그렸고, 또 이곳을 절개하니 봉한소체가 발견됐다는 것. 이 이론은 한때 일본어로 번역될 정도로 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재현성과 신뢰도 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현재까지 의문으로 남겨져 있다.

요즘 새롭게 대두되는 경락연구방법론으로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화학적 추적법이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산양의 경혈에 주입하자 해당 경맥을 따라 분포한 경혈들의 방사선량이 다른 경맥의 경혈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또한 방사성 물질은 규칙적으로 양방향으로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색소와 방사성동위원소를 동시에 신선한 사체의 경혈에 주입, 오토라디오그램에서 선 모양의 음영이 나타난 부위를 해부하자 염색 부위가 임파관의 분포에 따라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필자는 침자극의 감응이 전파되는 현상을 신경계의 전도기능과 연결시켜 연구를 진행했다. 즉 신경을 따라 움직이는 성질을 지닌 동위원소물질을 동물의 경혈부위에 주입한 것. 같은 경혈에 일정기간 침자극을 실시해 치료효과를 확인했으므로 그 경혈이 특이성을 갖는다는 점은 이미 파악된 뒤였다.

실험결과 동위원소는 척수의 특정 영역에서 발견됐다. 또한 그 부위를 미루어 뇌의 중추성지배영역이 추론됐다. 즉 경혈부위에 분포하는 특정 신경가지를 따라 경락 기능을 내포한 전도가 발생, 해당 중추신경 영역이 자극된 것이다.

경락은 인체 기혈순환의 통로로서 생명현상을 영위시키는 수송체계이고, 침자극이 전도되는 길이며, 오장육부의 이상현상이 발현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락현상이 동양의학에서 정교하게 발달하고 체계화되기는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그 존재자체가 의심받거나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침 놓는 장소는 대부분 근육층이다.


해부학적 접근, 한계 크다

해부학을 중심으로 발달되어온 서양의학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인 경락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 현상을 담당하고 있는 구조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 결과 혈관계 신경계 임파계 결합조직 등이 등장했고, 부분적이나마 이들은 타 조직과 경락의 차이를 알아내고 기능이 특이함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학 자체의 한계나 인식방법의 차이로 인해 그 성과가 미미하거나 노력 자체가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첫째 경락현상이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명현상에 근거해 발당됐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의학의 해부·구조적 접근은 사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생명현상의 기본은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구조들의 유기적 상호 작용인데, 그 상호작용의 관계가 깨진 사체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인 것이다. 이는 물질만을 알 뿐 그 본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살아있는 대상을 순간촬영으로 찍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 서양의학의 해부·구조적 인체관은 사람의 몸을 나눌 수 없을 때까지 나누었다. 그 결과 혈관 신경 림프관 피부 등이 각각 경락현상을 설명하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이 설명은 의미가 있다. 가령 혈관의 관점에서 본 설명은 경락의 자양기능을 잘 보여주고, 신경 측면에서의 설명은 침자극의 전도를 잘 표현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그러한 구조들이 하나의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엮어진 경락의 기능 전체를 모른다면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연구의 접근방향이 다르다. 한의학에서 인체를 바라보는 구조적 측면은 비교적 간단하다. 즉 피(皮) 맥(脈) 기육(肌肉) 근(筋) 골(骨) 오장육부(五臟六腑) 경락(經絡)이 그것. 여기서 경락은 나머지 구조들을 연결해 생명의 틀로 엮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몸에 대한 인식론과 이에 따른 방법론의 차이로 신경이나 혈관의 구조·해부학적 지식들은 경락개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한의학은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사상에 기초, 나무 생태나 물 흐름 등에 유비시켜 몸의 기혈순환에 관한 사고를 전개시켰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방법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 서양의학의 구조·해부학적인 접근은 큰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결국 경락현상에 대한 구조·해부학적인 탐구는 생명현상을 나타내는 인체의 복잡한 기능을 얼마나 생동감있게 그 상호작용을 탐구해 내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문헌에서 본 경락의 개념

'황제내경' 소문의 피부론(皮部論)을 보면 "외부의 사기(邪氣)가 피부에 이르면 주리가 열리고 그 후 사기가 락(絡)을 침범하며 이어서 경(經)으로 들어간 후 장부로 침입한다"고 했고, 영추의 해론(海論)에서는 인체와 자연계를 비유하며 "무릇 오장육부와 십이경수(十二經水)는 각각 밖으로 원천(源泉)이 있고 안으로 연결되는 바가 있으니 안팎이 서로 관통해 마치 고리처럼 끝이 없다. 사람의 경락 또한 그러하다"고 했다. 피부 아래에 존재하면서 지하수맥 역할을 하는 경락과, 외부로 드러나 연결돼 원천으로서 기능을 갖는 경혈의 개념을 위치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영추의 경수편(經水篇)에서는 "경맥(經脈)은 혈을 받아 운영한다"고 하여 경맥을 인체 혈관순환의 개념으로 표현했고 그 밖에 근육 골격 내장 등과 직접 연계한 하나의 조직계통으로서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총체적으로는 영추 해론(海論)에서 "무릇 12경맥은 안으로는 장부에 속하고 밖으로는 전신 사지 관절에 연결된다"고 했다. 즉 경맥은 유형 무형을 포함한 인체의 내외 상하로 연결된 기혈순환의 통로로서 인체 각 조직, 기관에 필요한 영양수송과 원할한 생체기능 유지를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단위임에 틀림없다.

199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혜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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