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대표적 유체, 즉 흐르는 물질이다. 물이 특정 지역을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전산유체역학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금강산댐이 무너지면 약 8억t의 물이 평화의댐을 향해 흐르게 된다. 과연 어떻게 될까. 전산유체역학을 이용해 그 결과를 예측해보자.
우리 주위에는 흐르는 성질을 가진 물질, 정확히 말해 유체가 무수히 많다. 흔히 볼 수 있는 물부터 항상 마시는 공기, 몸 속의 혈액과 치약 등이 모두 유체다. 이런 유체의 흐름을 연구하는 학문을 유체역학(fluid dynamics)이라 한다. 최근에는 이런 유체의 흐름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상적으로 그 결과를 예측하는 전산유체역학(CFD, Computational Fluid Dynamics)이 각광받고 있다.
전산유체역학은 튜브형 용기의 지름과 압력에 따라 적당한 양의 치약이 나오도록 치약용기를 설계하거나 고속전차가 터널을 지날 때 공기의 압력분포를 계산해 소음을 줄일 수 있는 터널을 설계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또한 자동차 엔진의 가솔린 양을 전자식으로 적당히 조절해 최소연료로 최대효과가 나도록 설계하는데도 이용된다. 최근에는 인공장기 내의 혈액 흐름을 계산해 체내에 가장 적합한 인공장기를 만드는데 전산유체역학이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특히 외국의 경우는 댐의 수문이 열렸을 때 방류되는 물의 흐름을 예측해 댐 설계에 전산유체역학 결과를 이용하고 있다.
유체의 두가지 상태
움직이는 연속체, 즉 유체에는 일반적인 유체 이외에 ‘이상유체’(two phase fluid)와 ‘자유표면유체’(free surface fluid)가 있다. 이상유체는 움직이는 연속체가 서로 다른 연속체를 만났을 때, 예를 들어 물과 기름이 서로 다른 경로로 들어와 섞일 때, 또는 어떤 유체 내부에 다른 입자들이 떠다니며 이동하는 유체를 말한다. 즉 서로 다른 유체가 함께 존재하는 유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상유체는 일반적으로 한가지 상태의 유체(단상유체)에 비해 그 흐름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계산의 한계도 존재한다.
반면 자유표면유체는 이상유체 중 한가지 유체가 공기인 것, 예를 들어 음료수나 술을 잔에 따를 때의 경우에 해당한다. 즉 유체가 공기와 접하는 면을 형성하면 이를 자유표면유체라 한다. 여기서 자유표면이라는 이름은, 이상유체의 경우처럼 유체가 각자의 압력을 가져 두 유체의 경계 면에서 서로 영향을 주지 않고, 물의 흐름에 공기가 거의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유표면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유체의 표면장력과 공기 전체의 평균압력인데, 공기압력은 비교적 다루기 쉽다. 따라서 액체의 표면장력만 정확히 계산하면 유체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유표면유체는 이상유체에 비해 경계에 접하는 상대방 유체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주로 자신의 운동상태에 따라 유동이 일어난다.
평화의댐은 안전할까
지난 5월초 신문과 방송에는 금강산댐의 안전문제가 연일 보도됐고, 그 대책으로 평화의댐과 화천댐을 비우고 평화의댐 일부를 보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대책으로 평화의댐과 그 하류가 안전하다는 근거를 어떻게 계산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건설교통부와 신문·방송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금강산댐 저수량은 약 12억t이고, 댐 붕괴시에는 저수량의 2/3가 방출돼 약 8억t의 물이 내려오는데, 이미 비워둔 평화의댐 저수량이 5.9억t이고 수위를 낮춘 화천댐이 6.5억t이므로 금강산댐에서 내려온 물을 이 두 댐에서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댐에 물이 천천히 차오르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 일시에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내려 올 경우에는 단순히 수량만으로 계산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8억t의 물이 한꺼번에 내려오면, 이 물이 평화의댐에 부딪히면서 넘치게 되고 이때 작용하는 물의 속도나 압력은 완전히 동적인 작용이므로 정적인 가정에 의한 단순 수치계산으로는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교통부는 평화의댐으로 일부 물이 넘칠 경우를 대비해 댐 상부에 콘크리트를 덧씌우고 하류 사면에는 대형 돌 구조물을 설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준비로 금강산댐 붕괴시 평화의댐이 안전할 것인가. 또한 평화의댐으로 물이 넘칠 때 댐 상부의 콘크리트가 유실될 가능성은 없는가. 그리고 집중호우로 하천(금성천)에서 오히려 물이 유입되는 상황에도 평화의 댐은 안전할 것인가.
이런 궁금증과 걱정으로 필자는 CFD를 이용해 물의 흐름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금강산댐 붕괴시 흘러내려온 물이 평화의댐에 이르기까지 물의 유동을 자유표면을 고려한 3차원 유동해석기법으로 계산하지 않으면 정확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시뮬레이션 시작하기 위한 초기조건
가장 먼저 필요한 자료는 금강산댐과 평화의댐 사이의 지형이 담긴 3차원 디지털 맵이었다. 이를 위해 국립지리원에 의뢰했으나 북한 지역과 군사분계선 지형은 입력된 것이 없고, 지도 자체도 군사적 이유 때문에 구하기 어려웠다. 또한 미국 아이콘(icon)위성과 위성사진 계약을 맺고 있는 e현대(EHD)에 알아봤으나, 3차원 디지털 맵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에 찍은 스테레오 사진이 2장 이상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1장 밖에 확보하지 못해 맵의 작성이 불가능했다. 아쉬운 대로 여러 전문가에게 문의해 금강산댐 바깥쪽과 평화의댐 안쪽의 대략의 강폭, 두댐 사이의 거리와 표고차(해발고도차)를 알아냈다.
이 정보를 근거로 CFD를 이용해 금강산댐이 붕괴될 경우 평화의댐까지 흐르는 물의 움직임을 계산했다. 언론과 정부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금강산댐의 높이는 1백5m로 총 15억t의 물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에 의하면 댐 상부 일부가 파손돼 약 12억t 정도만 저장할 수 있다고 추정되므로 일단 총 저수량은 12억t으로 가정했다. 붕괴시 내려오는 물의 양은, 일부 댐 전문가의 지적대로 일단 붕괴되기 시작하면 댐의 2/3가 일시에 무너져내린다고 생각해, 12억t의 2/3 즉 8억t이 일시에 흘러내리는 것으로 가정했다. 금강산댐의 제원에 대해서는 각 언론매체마다 발표 내용이 다르지만, 일단 금강산댐 하부의 길이는 약 7백m에 이른다고 보고, 상부는 모 방송국에서 구한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해 약 3백50-4백m 정도로 예상했다. 또한 평화의댐 하부에는 직경 10m의 배수구가 4개 설치돼 있는데, 해석에서 댐 붕괴시 밀려오는 토사에 의해 배수구가 막히는 현상은 없다고 가정했다.
댐 지형 고려한 3차원 물의 흐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유체의 흐름을 해석하는데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우선 유체가 흐르는 유로(流路)의 형상을 입력하고 계산에 필요한 격자를 만드는 ‘전처리단계’(pre-processing), 그리고 각종 조건을 입력하고 정해진 기준까지 계산을 완료하는 ‘계산단계’(solvering), 마지막으로 계산된 결과를 분석하는 ‘후처리단계’(post-processing)를 거친다.
일단 전처리 단계로 금강산댐 유역과 두 댐 간의 유로, 평화의댐 유역 등을 3차원 캐드(CAD)프로그램으로 설계해 입력했다. 금강산댐 유역은 인공위성 사진을 참조해 설계했다. 총 저수량이 12억t이 되도록 한쪽 면이 기울어진 넓은 사면체 형태로 제작했고, 댐 붕괴시 흘러 내려가는 물의 양이 8억t이 되도록 댐의 2/3가 없어지고, 1/3이 남았을 때 고여 있는 수량이 4억t이 되도록 설계했다.
두 댐 간의 유로는 금강산댐 바깥쪽을 폭 50-60m, 평화의댐 안쪽을 1백m로 가정했으며, 강바닥에서 강기슭까지 유선형으로 설계했다. 초기 강기슭 기울기는 38°, 강을 벗어나면 약 10°기울기로 평지까지 퍼져나가는 모습으로 설계해 최대한 강의 단면에 근접하도록 했다. 총 유로의 길이는 초기에는 20km로 설정했으며, 두 댐 유로의 길이가 약 38km로 알려진 다음에는 40km로 계산했다.
금강산댐에 초기에 존재하는 물의 x, y, z 방향속도는 0으로 뒀고 계산이 시작되면 붕괴된 댐 상부로 흘러나가도록 했다. 이때 유체의 점성도는 일반적인 물의 점성도로 설정했고, 흐르는 물과 댐 주변 유로의 마찰을 고려해 일부 마찰조건을 사용했다. 해석에 사용된 프로그램의 기본 방정식은 물의 흐름을 3차원 연속체, 비압축성 유체로 가정했다. 또한 3차원 자유표면을 추적하기 위해 ‘개량 유체함수법’(Modified VOF법)을 개발해 수치해석에 적용했다. 이와 같은 수치해석에 있어 풀어야할 주요 변수들은 x, y, z 방향의 속도뿐 아니라 압력과 유체함수도 동시에 계산해야 한다.
뒷 물결이 앞 물결 타고 넘는다
방류된 물의 상층 면에는 많은 물결이 발생해 부위별 높이 편차가 수m에서 수십m까지 발생한다. 특히 평화의댐에 부딪힌 직후에는 뒤에서 흘러드는 물이 전체 물의 상면 위로 타고 흐르는 역류가 발생한다. 이는 댐 하부로부터 위쪽으로 전체 수면높이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증가된 수면이 댐 정상에 이르면 그때부터 월류가 일어난다. 월류 초기에는 댐 높이 80m에 해당하는 큰 낙차에너지를 가진 물이 댐의 바깥쪽 벽면과 충돌하면서 상당한 충격을 가한다. 또한 와류(물의 회전하는 흐름)가 일어나 댐 바깥벽면에 상당한 압력을 가한다. 평화의댐 바깥벽면에 공사예정인 60m 높이의 대형사석은 물이 넘치는 초기의 이런 충격파를 상당히 감소시켜서, 댐 아랫부분이 파이는 현상을 억제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월류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낙차에 의한 에너지보다는 빠른 유속에 의한 충격이 좀더 중요해진다. 월류가 거의 끝날 무렵이면 평화의댐을 중심으로 댐 바깥쪽 수위와 안쪽 수위가 비슷해진다. 이때 물의 흐름은 댐의 최정상 부위에서 가장 빨라진다. 물 흐름은 좁은 구간인 댐 정상에서 가장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대량의 유체에 의한 마찰이 발생한다. 이런 물 흐름은 댐 정상의 구조물을 쉽게 파괴할 만한 압력을 지닐 가능성이 높다. 이때의 압력은 댐 정상 위로 얼마만한 양과 높이로 월류가 일어나는가에 달려있다.
월류의 높이는 금강산댐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의 총량도 중요하지만, 평화의 댐에 부딪히는 순간 유속이 더욱 중요하다. 빠른 속도로 충돌할수록 상부로 물 흐름이 바뀌면서 급격하게 월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 댐 형상은 시뮬레이션과 달리 경사면이기 때문에 초기 월류의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난다.
또한 유속 문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은 두 댐의 표고차다. 금강산댐 정상의 표고는 해발 약 3백5m, 평화의댐은 약 2백25m로서 만수위가 됐을 때는 약 80m의 표고차가 존재한다. 더욱이 금강산댐 붕괴시의 물이 평화의댐에 진입하는 초기에는 댐이 비어있기 때문에 표고차가 무려 1백60m나 된다. 즉 금강산댐의 물이 흘러 내려오는 과정에서 유로와의 마찰에 의해 유속이 느려진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1백60m 높이에서 8억t의 물이 계속 낙하하는 충격을 받는 셈이다. 또한 중력으로 인해 유체의 흐름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가속받기 때문에 유로의 마찰에 의한 유속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댐 충돌시 상당한 속도를 지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뮬레이션 결과도 보완적으로 고려돼야
비록 정확한 초기조건 없이 계산한 결과였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금강산댐이 무너지면 약 8억t의 물이 흘러내려와 평화의댐을 최대 30m 높이로 월류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건설교통부가 예상한 월류 높이 7m보다 큰 값으로 예상 밖의 결과다. 물론 이번 결과는 금강산댐에서 평화의댐에 이르는 하천지형에 대한 정확한 자료 없이 계산한 결과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23m의 차이는 단순히 ‘오차’라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큰 값이다. 만에 하나 금강산댐이 무너지고 평화의댐이 넘친다면 그로 인한 엄청남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물론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결과가 실제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묘사하기는 불가능하다. 시뮬레이션이란 어느 정도의 부정확성을 감안하고 도입하는 것이다. 홍수와 지진 등 실제로 재현하기 어려운 현상이라든가,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부정확성을 감수하고라도 극단적 경우에 대한 결과와 어떤 변수에 대한 영향성 등을 분석함으로써 일정한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사용한다.
앞서 열거한 예상결과들은 3차원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된 내용이며 시뮬레이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비상시 넓은 지형에 걸쳐 일어나는 댐 간의 물 흐름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유체역학 시뮬레이션과 다년간의 오랜 경험에 의해 얻어진 계산식이 상호보완돼야 한다. 자유표면을 고려한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의 경우 그 결과를 얻는데 상당한 계산시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계산결과를 얻고 나면 시간과 공간에 따른 물의 속도와 압력, 구조물이 받는 수압과 충격치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결과는 갖가지 가능한 극한 상황에 대해 그 영향을 파악하는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자유표면을 고려한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이 향후 금강산댐으로부터 평화의댐, 화천댐에 이르는 전체 영역에서 물 흐름을 계산함으로써 댐의 안전성 분석과 대비책을 강구하는데 좋은 판단자료로서 사용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각종 교량과 댐의 정량적 설계와 안전성 판단에 이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