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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싸라기 유전자 발굴하는 DNA칩

특수 운반임무 수행요원 박테리아

생명과학자는 이전에 없던 캐릭터를 식물에 부여함으로써 맞춤 작물을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첨단 방법은 무엇일까. 유용유전자 발굴에서 새로운 맞춤 작물이 개발되기까지의 면면을 살펴보자.


“만약 딸이면, 우리 딸이 김희선 같은 얼굴에, 이소라 같은 몸매면 좋겠다. 우락부락한 아빠 손을 제발 닮지 않아야 할텐데….”

“아들이라면 배용준이나 장동건처럼 윤곽이 뚜렷하고 멋있다면 좋겠지. 제발 엄마 닮아서 키가 작으면 안되는데….”

아기를 임신한 부모는 한번쯤 자신의 아기가 어떤 모습이기를 꿈꿔본다. 어떤 산모는 자신의 아이가 닮았으면 하는 인기 배우의 큰 사진을 벽에 붙여놓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유전공학 덕분에 조만 간에 좋은 유전적 특성을 갖는 ‘맞춤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 일이 실제로 실현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런데 생명과학자들은 현재 식물에서 이같은 일을 실제로 실현시켜가고 있다. 극심한 가뭄에도 끄떡없고, 다른 음식물을 섭취할 필요 없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포함돼 있는 ‘맞춤 작물’을 말이다.


종간 벽 허무는 캐릭터 전환법

맞춤 작물은 이전에는 없었던 강력한 특성을 갖는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없었던 유전자를 외부로부터 들여와야 한다.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가 작물에 생긴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벼는 키가 좀더 작아지면 태풍에도 잘 쓰러지지 않게 되는데, 다른 식물체의 작은 키 관련 유전자를 벼에 주입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새로운 벼는 ‘키가 작다’는 캐릭터를 갖게 된다. 이런 일을 ‘형질전환’이라고 한다. 맞춤 작물은 자신의 캐릭터를 바꾸는 형질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작물의 캐릭터(형질)를 바꾸기 위해 우선적인 일은 새로운 캐릭터를 결정하고, 이 형질을 나타내는 유용유전자를 발굴하는 것이다. 만약 가뭄에 잘 견디는 새로운 벼를 만든다고 가정하자. 그러러면 생명과학자는 벼가 갖고 있지 않았던 가뭄 속에서도 잘 이겨내게 하는 유전자를 찾아야 한다. 즉 식물의 형질전환을 위한 가뭄 저항성 유전자를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서 이 유전자를 찾을 수 있을까. 생명과학자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 미생물의 DNA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맞춤 작물은 식물뿐 아니라 동물이나 미생물의 특성까지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점이 바로 전통적인 방법이 따라올 수 없는 유전공학의 혁신적인 면이다.

실제로 동물의 유전자를 이용한 작물로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이식시킨 담배가 개발됐다. 이 담배를 통해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미생물의 DNA가 이용된 대표적인 예는 해충 저항성 GM 작물이다. 해충을 제거하는 독소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미생물로부터 이 유전자를 추출해 작물에 이식시켰다.

전통적인 형질전환 방법은 같은 종 내에서 다른 형질을 갖는 품종을 찾아 서로 유전자를 교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밥맛은 있는데 수확량은 적은 벼 품종과 반대로 밥맛은 없지만 수확량이 많은 벼 품종을 교배시킨다. 다른 품종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힌다는 말이다. 이를 통해 얻은 자손 중 밥맛 있고 수확량 많은 새로운 품종을 골라낸다. 이 방법으로는 같은 종 내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옮길 수 있을 뿐 다른 종이 갖는 좋은 형질을 이식시키지 못한다.

유전공학적으로 어떻게 다른 종의 유전자를 식물에 이식시킬까. 1930년대 생명과학자는 흙과 가까운 식물의 부위에 비정상적으로 자라나는 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치 사람의 암 덩어리 같아서 이를 연구하면 사람의 암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식물암’인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혹을 떼서 세포를 키워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뜻밖의 결과를 얻는다. 이 세포 안에 아그로박테리아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 박테리아는 흙 속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그로박테리아가 식물 속에 들어간 까닭은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식물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흙 속에 양분이 부족해지면, 식물에 침투해서 기생하는 것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식물에 넣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제쳐놓고서 아그로박테리아를 얘기하고 있는지가 의아할 것이다. 그 까닭은 아그로박테리아가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식물의 형질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그로박테리아는 자신의 특정 부위 유전자를 식물세포로 이동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양분을 식물세포가 생산해내도록 한다. 아그로박테리아의 유전자가 옮겨진 식물세포가 혹이 되는 것이다. 이런 아그로박테리아의 놀라운 특성은 1980년대 초에야 온전히 밝혀진다. 이는 생명과학자가 종의 벽을 허물고 식물에 새로운 유전자를 옮겨주는 운반자를 찾은 셈이다.

생명과학자는 아그로박테리아에서 전이가 일어나는 유전자 부위에 유용유전자를 우선 이식시킨다. 그런 후 아그로박테리아를 식물세포와 만나도록 한다. 실제로는 식물세포를 아그로박테리아가 있는 용액에 담그기만 하면, 아그로박테리아 속 유용유전자가 식물세포로 이동한다. 이 식물세포를 배양하면 새로운 캐릭터를 갖는 맞춤 작물로 성장하는 것이다.
 

생명과학자는 가뭄, 산성토양, 염분과 같은 다양한 환경 조건에 서도 잘 자랄 수 있는 GM 작물 을 개발하고 있다.



바나나 먹으면 전염병 예방

이같은 형질전환 방법으로 생명과학자들은 작물에 어떤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을까. 초창기 GM 작물은 주로 생산성을 높이는데 목적을 뒀다. 제초제 저항성 또는 해충 저항성 GM 작물이 대표적인 예다.

제초제 저항성 작물의 경우,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기 때문에 잡초만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잡초가 양분을 덜 빼앗아 제초제 저항성 콩은 수확량이 많다. 해충 저항성 작물도 마찬가지다. 해충을 제거하는 독성 단백질을 생산하는 미생물(Bacillus thuringiensis)의 유전자를 식물에 이식시킴으로써 해충이 먹지 않는 해충 저항성 작물이 만들어졌다.

작물은 기후와 자라는 환경에 따라 생산량이 민감하게 변한다. 그러나 야생 식물에는 가뭄, 저온, 또는 산성토양에서도 자라나는 종류가 있다. 극심한 외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야생 식물로부터 환경 극복 유전자를 발굴해 작물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염분이 있는 경작지에서 식물이 자라나도록 하는 유전자가 발굴됐다. 전세계 작물경작지의 약 1/3은 고농도 소금기 때문에 작물을 경작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대부분 작물은 염분이 존재할 때 나트륨 이온이 세포 속으로 유입돼 높아진 삼투압으로 수분 결핍을 겪게 된다. 때문에 작물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발굴된 유전자는 나트륨 이온이 세포 내로 들어와도 이를 액포로 보내 저장하는 능력을 갖는 단백질을 생산해낸다. 만약 이를 실제로 응용하면 고농도의 염이 함유된 용수지나 바닷물을 메워 개간한 간척지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내는 작물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추세와는 달리 최근 GM 작물은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2000년에 비타민A를 합성해내는 황금쌀이 개발되면서 기능성 작물의 개발은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가 주식으로 삼고 있는 쌀에는 라이신, 비타민A, 철, 요오드와 같은 물질이 미량으로 함유돼 있다. 때문에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 해당물질 결핍증으로 수십만명의 어린 아이들이 고통을 받아 왔다. 황금쌀은 비타민A의 공급원이 될 것이며, 이로 인해 매년 1-4세의 어린아이들 중 수백만명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에는 인슐린을 생산하는 쌀과 같은 기능성 맞춤 작물도 등장할 전망이다. 그러면 당뇨병 환자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을 필요 없이 밥만 먹으면 해결된다. 또한 어린이들은 머지않아 예방주사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전염병 백신유전자를 배추나 토마토에 넣으면 김치와 토마토만 먹어도 자동으로 면역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바나나에 콜레라 백신 유전자를 주입한 후 그 바나나를 돼지에게 먹였더니 콜레라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이 외에도 암에 걸린 환자가 복용할 수 있는 항암 치료제 쌀, 성장호르몬을 생산하는 상추나 배추 등 소비자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갖는 식품이 만들어진다.
 

유용유전자가 이식된 식물세포를 배양액 속에 넣고 식물체로 성장 시키는 모습.



맞춤 작물 경쟁의 승부수는 유용유전자

이같은 맞춤 작물이 실제로 개발되기 위한 가장 큰 관건은 유용유전자 확보다. 인슐린에 관여하는 유전자, 비타민A의 생산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우선적으로 발굴돼야 그 다음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유용유전자를 확보하느냐가 맞춤 작물의 경쟁에서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용유전자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에게 무기와 같은 셈이다.

그래서 현재 생명과학자들은 갖가지 최첨단 유전공학 방법들을 동원해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유용유전자를 발굴하고자 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처럼 식물에서는 애기장대와 벼의 전체 게놈이 해독됐다. 이는 유용유전자 발굴 연구에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다. 기존에는 모양을 알 수 없는 5만개의 구슬이 들어있는 자루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골라내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미리 알고 원하는 것을 찾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따라서 게놈이 해독되기 전에는 하나의 유전자 기능을 밝히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10개 또는 1백개 이상의 유전자 기능을 밝혀야 성공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유전자의 기능은 어떻게 밝혀질까. 우리는 누군가의 소중함을 그 사람이 사라진 후에야 느낄 때가 많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했던 역할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마찬가지로 식물에서 한 유전자의 기능을 마비시키면 그 유전자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서는 형질전환에 쓰였던 아그로박테리아가 필요하다. 아그로박테리아는 식물세포 DNA에 특정 위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DNA 단편을 옮긴다. 때문에 식물세포의 DNA에 무작위적으로 아그로박테리아로부터 옮겨온 DNA 단편이 포함되게 된다. 만약 특정 유전자 사이에 들어간다면, 그 유전자는 기능을 상실한다. 이같은 연구방법을 ‘유전자 적중기술’이라고 한다.

이 유전자 적중기술은 유전자 하나하나의 기능을 밝히는데 유용하다. 하지만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DNA칩 기술이 이용된다. DNA칩으로는 1백-2백개 유전자들의 기능을 한번에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DNA칩은 유리판이나 반도체 기판 위에 수만개의 유전자를 고밀도로 심어놓은 것이다. 이 칩 위에 유전자를 반응시키면, 상보적인 염기서열을 갖는 칩 위의 유전자와 결합한다. 이를 통해 특정 상황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상적으로 자란 벼와 가뭄 조건에서 자란 벼가 있다고 하자. 세포는 AGCT 네가지 염기로 구성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다양한 mRNA를 합성하고, 최종적으로 단백질을 생성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환경으로 인해 정상 벼 세포와 가뭄 조건의 벼 세포가 만들어내는 mRNA가 다르다. 즉 가뭄시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의 종류나 수에서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이 차이를 조사하기 위해 과학자는 각자의 벼 세포로부터 mRNA를 추출해낸다. 이를 역전사 효소를 이용해 DNA 정보로 번역한다. 그런 후 각 상황의 DNA를 다른 형광물질로 염색한다. 예를 들어 정상 벼의 DNA를 빨갛게, 가뭄의 벼 DNA를 초록색으로 염색할 수 있다. 이 DNA를 DNA칩에 반응시킨다. 만약 두가지 벼에서 모두 기능을 하는 DNA의 경우, DNA칩의 유전자와 둘 모두 반응하기 때문에 그 유전자는 빨강과 초록의 혼합색인 노랑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정상 벼에서만 기능하는 DNA는 빨갛게, 가뭄 벼만의 DNA는 초록으로 표현된다. 이를 통해 가뭄시 발현되는 유전자가 어떤 것들인지를 눈으로 알 수 있다.

한편 단백질 차원의 연구를 통해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기도 한다. 단백질은 mRNA의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아미노산이 결합해서 합성된다. 하지만 아미노산의 서열만으로 그 기능이 온전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단백질이 합성될 때 여러 변형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차원뿐 아니라 단백질까지도 연구돼야 한다.

단백질 차원의 연구에서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성된 단백질이 조사된다. 예를 들어 정상 벼와 가뭄 벼에서 단백질을 추출해서 각각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건이 달라지면 새로 생기거나 없어지거나 또는 변형되는 단백질을 알아내고, 이를 거꾸로 추적해서 유전자의 기능을 밝힐 수 있다.

사실 이같은 생명과학의 핵심 방법은 생명의 비밀을 벗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밝혀지는 유전자의 기능은 단지 맞춤 작물의 개발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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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주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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