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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 수준의 한국형 MEMS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 찾아

20세기 IT 산업과 같은 호황을 21세기에는 MEMS에서 맛볼 것이다. 이같은 프론티어의 꿈을 앉고 앞으로 나가고 있는 국내 MEMS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이다. 이 사업단을 찾아가 국내 MEMS 연구의 현황을 살펴본다.


“지난 2000년 세계적으로 IT 산업이 최고의 각광을 받으면서 급속도로 발전했을 당시, 가장 큰 돈을 번 곳은 인터넷관련 장비업체인 시스코였다. 그렇다면 21세기 바이오 혁명이 불어왔을 때 과연 누가 가장 큰 돈을 벌겠는가. 바로 MEMS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관련 장비업체다.”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장준근 교수는 IT 산업에 빗대어 MEMS의 응용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갖는지 설명했다.

실제로 MEMS 산업의 시장규모에 대한 지난 몇년 간의 해외 조사자료에 따르면, MEMS의 핵심소자만을 따졌을 때 최소한 2001년 약 50억 달러에서 2010년 약 2백억 달러로 증가해, 연간 2조원의 시장 증가율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MEMS 소자를 이용한 제품시장까지 고려한다면 규모는 어마어마해진다.


생명공학과 정보통신을 선택한 까닭

그렇다면 급성장하는 21세기 신제조기술 MEMS가 국내에서는 어떻게 연구·응용되고 있을까. MEMS와 관련된 국내 최대 프로젝트,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을 중심으로 국내 현황을 자세히 알아보자.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은 과학기술부가 추진중인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10개 세부사업 중 하나다. 이 사업은 1999년에 착수됐고 2010년에 종료되는데, 전체 사업규모가 1천2백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장기간으로 상당한 규모의 돈이 투자되는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은 현재 MEMS 관련 국내 핵심연구 프로젝트다.

이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이 종료되기 전까지 상용화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은 2010년에 어떤 제품을 선보일까.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과 마이크로 PDA가 그것.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은 캡슐모양의 먹는 약처럼 작은 내시경을 말한다. 사람이 입으로 삼키면 체내에서 스스로 이동해서 몸 밖으로 영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체내에서 직접 진단하고 처치하는 기능까지 갖는 놀라운 제품이다. 마이크로 PDA는 손목시계형 개인휴대 정보단말기로, 우리 몸에 부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는 제품이다. 기능적으로는 현재의 휴대폰이 갖는 통신능력과 고성능 PC가 합쳐진 것과 같다. 사업단은 MEMS의 초소형 기술을 이 두제품에 응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두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일까. 사업단이 MEMS를 응용할 분야로 생명공학과 정보통신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다른 궁금증이 생긴다. 왜 생명공학과 정보통신 분야로 MEMS 연구를 중점 투자하는지를 말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기술선진국에서는 자동차 에어백의 가속도 센서나 잉크젯 프린터의 헤드처럼 기존제품에 포함된 구성요소를 초소형으로 제작해 왔다. 그 결과 MEMS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 이미 시장에 출시돼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 뛰어든다면 토기를 쫓는 거북이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MEMS 기술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제 갓 출발한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생명공학과 정보통신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MEMS가 상당히 미개척된 영역은 생명공학 분야다. 생명공학은 기존 제품의 단순한 소형화가 아니라, 번뜩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존재하지 않았던 신개념의 시스템이나 제품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생명공학분야에 MEMS가 응용됐을 때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에 세계적으로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러기에 일반 기업이나 연구소 차원에서 연구를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이 정부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은 올 9월에 종료될 산업자원부 주관 G7 초소형정밀기계기술개발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더욱 MEMS 연구의 통합에 집중한다. 이제 3년차여서 성과를 얘기하기에는 급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나온 발자취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의 주요 성과는 스스로 움직이는 대장내시경과 주문형 일회용 플라스틱 마이크로칩의 개발이다.

현재의 내시경은 의사가 직접 손으로 밀어 넣어야 장기 내부로 들어간다. 때문에 장기의 굴곡부분에서 의사의 손재주가 그야말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굴곡부분을 통과할 때 내시경에 의해 내장이 압력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환자에게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 상례다.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에서 지난해 개발∙발표한 자율구동 대장내시경(앞)과 종전의 내시경(뒤).



해외와의 공동연구 통한 윈윈전략

그런데 내시경이 마치 작은 벌레가 움직이듯이 스스로 이동하는 능력을 가진다면, 환자의 고통이 사라짐은 물론 의사의 숙련도가 내시경 진단에서 중요한 점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자율구동 대장내시경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돼지 대장에서 실험이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는 점이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의 가장 큰 개가다. 자율구동 능력을 소유한 내시경 개발에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일본의 도시바 등 세계 유수 기관들의 노력이 있어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생물체 내에서 성공적으로 이동하지 못했었다. 장기가 너무 미끄럽고 부드러워서 개발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같은 자율구동 대장내시경은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 내 3개 연구팀이 공동연구한 결과다. 구동메커니즘을 담당한 팀은 이탈리아 성안나 고등기술원의 파올로 다리오 교수팀, 생체 실험은 연세의대 송시영 교수팀, 그리고 전체적인 시스템 통합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김태송 박사팀이 참여했다. 여기에서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은 국내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인 공동연구가 이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해외 연구팀과의 공동연구가 자율구동 대장내시경 개발에 어떤 도움이 됐을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태송 박사는 “이미 성숙된 기술을 소유한 해외 연구팀과 국내 연구진이 공동연구해 성공한 경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리오 교수는 사업단과의 공동연구 이전까지 발전시킨 그의 내시경 구동메커니즘을 우리와의 공동연구로 수정·보완해 성공을 거뒀고, 우리의 경우 그가 가진 지금까지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고 덧붙였다. 윈·윈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자율구동 대장내시경의 개발이 사업단의 최종목표인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 개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실 자율구동 대장내시경에는 MEMS 기술이 쓰이지 않았다. 둥근 긴 관 모양의 대장내시경은 지름 24mm, 길이 1백30-1백80mm로 아직 캡슐형태는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을 가졌을 뿐 전선을 비롯해 외부로 영상을 전송하는 장치 등 여러개의 선들이 대장내시경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은 그야말로 캡슐 약처럼 작고, 독립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율구동 대장내시경 개발의 의미는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의 가장 큰 연구파트 중 하나인 생체 내에서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첫단추을 끼운 셈이다. 하지만 아직은 가야할 길이 험난하고도 멀다.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의 구동메커니즘을 담당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김병규 박사에 따르면 내시경의 크기가 지금의 대장내시경에서 마이크로 캡슐형으로 바뀌면 대장내시경의 구동메커니즘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기기의 크기가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넓어져 유체 영향이 커진다. 그래서 김박사는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체내에서 이동하는 능력을 가질지 여러면으로 모색중이다.

이제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의 또다른 개가를 살펴보자. 지난해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장준근 교수와 디지털바이오테크놀러지사가 사업단의 지원을 받아 주문형 일회용 플라스틱 마이크로칩을 개발했다.

이 마이크로칩은 칩에 올려진 생화학 실험실, 랩온어칩(LOC)의 일종이다. LOC는 현재 BioMEMS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장교수팀이 개발한 이 칩은 신약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독성 테스트와 분석, 평가 등의 실험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일회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용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필요한 수량만큼 주문해 생화학 실험이나 신약개발에 사용할 수 있다. 이 칩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올 1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에서 열리는 ‘랩오토메이션 2002’(Lab-automation 2002)에 초청, 전시된다.
 

랩온어칩



다양한 분야들의 집합체

그런데 LOC의 경우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치하는 마이크로 캡슐형 내시경의 핵심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체내에 들어간 내시경이 스스로 체내 시료를 채취해 이를 LOC를 통해 분석해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그 결과로 약을 주입하는 것과 같은 처치도 LOC가 담당한다.

LOC를 개발하기 위해 장준근 교수의 연구팀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칩 자체의 제작에 기여하는 MEMS 전문가, 플라스틱과 같은 칩의 재료를 연구하는 소재 전문가, 칩에서 이뤄진 실험을 레이저로 관측하는 방법을 고안해내는 광학 전문가, 관측 결과를 컴퓨터에 보여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자공학 전문가, 전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기계 개발을 하는 기계공학 전문가, 그리고 LOC가 실제로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를 제시하는 생명공학자가 모였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팀을 이끌어나가는 장교수도 무척 이색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는 학부 때 기계공학, 그리고 석·박사로 인공심장 설계와 혈관 내피세포생리학 관련 의공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1995년부터 5년 간 그는 서울대 반도체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산업자원부의 G7 MEMS 과제를 수행한다. 여기에서 그는 MEMS를 처음 만났다. 기계공학, 생명공학, 그리고 MEMS를 모두 체험해본 셈이다.
 

랩온어칩을 연구중인 서울대 전 기컴퓨터공학부의 장준근 교수.


그러기에 장교수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의 집단을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다른 배경의 전문가들의 의사소통에 다리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는 “과학계에서 전문 사투리를 번역해주는 일을 하는 셈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장교수 연구팀을 통해 MEMS가 얼마나 복합기술의 특성을 갖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MEMS 전문인력 현황에 대한 한국과학기술원 조영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다양한 분야가 MEMS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국내 MEMS 인력은 현재 약 4백명 정도로, 전공별로 전자 43%, 재료 19%, 기계 18%, 화학과 화공 9%, 물리 7%, 그리고 생물 4%가 차지한다. 한편 조교수는 지난해 19개 MEMS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2010년에는 국내 MEMS 인력이 약 1천-2천명 정도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앞으로 MEMS 인력이 제대로 양성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MEMS 기술은 선진국과 비교 했을때 2-3년 정도 뒤떨어진다고 한다. 현재 진행중인 MEMS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의 기반기술을 갖게 되길 기대해본다.

200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미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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