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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읽었지만 좀처럼 아동용이 아닌 원본을 읽어보지 못했을 작품을 든다면 이솝우화나 파브르의 ‘곤충기’가 그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아동용 도서에는 책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교훈적 메시지가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원본이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많이 희석되기 마련이다. 책 속에 녹아있는 일생을 통한 치열한 과학자의 모습, 독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했던 집필 의도, 곳곳에 숨어있는 시처럼 아름다운 표현, 수많은 생생하고 정밀한 정보, 고전이 갖는 인류사에서의 역사적 의의 등이 빠져버리기 쉽다. 그래서 이런 책은 반드시 성년이 돼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가 되기도 한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던 사람들은 누구나 곤충에 대한 기억이 하나둘 남아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여름철 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머리나 목덜미로 떨어져서 기겁을 하게 했던 송충이에 대한 기억이나, 엉금엉금 기면서 잘 도망가지 못해 어린이의 놀이감이 됐던 땅강아지, 그리고 등판이 유난히 검게 빛나고 물 속을 잘 헤엄치던 물방개에 대한 경험이 남아있다. 이런 곤충들을 이제는 생활 주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으니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파괴됐는가.

현재까지 확인된 곤충의 종류는 약 80만종이고, 확인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약 3백만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전체 동물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곤충이 약 4분의 3이다. 이렇게 보면 분명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곤충임에 틀림없다.

파브르의 곤충기를 보면 다양한 종류의 벌, 파리, 매미, 나방, 개미, 거미 등 각종 곤충들의 먹이사냥과 종족번식 그리고 활동양식 등의 생활상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또 본능에 이끌려 만들어지는 곤충의 사회상과, 예술품을 능가하는 곤충의 놀라운 건축술이 독자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파브르는 곤충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놀라운 끈기로 관찰을 통해 치밀하면서도 화려한 시적 표현으로 곤충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가고 있다.


곤충을 통해 발견하는 자연의 신비

파브르는 다윈처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의 한사람도, 또 해마다 나오는 그 흔한(?) 노벨상 수상자도 아니었다.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대학교수를 지내지도 않았다. 단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어쩔 수 없이 자연과 벗삼아 살아야 했고, 각고의 노력을 통해 시골 학교 교사가 됐으며, 말년에는 인세를 받아가면서 살아야 했던 가난했지만 자연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곤충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느꼈던 즐거움과 자연에 대한 감탄은 또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쇠똥구리를 관찰하면서 그는 “나는 파헤쳐지는 지하실이 어떻게 배열돼 있고 칸막이 등이 어떻게 돼 있는가를 자세히 보기 위해 땅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온 신경을 눈에 집중시켰다. … 쇠똥구리가 만든 이 이상한 공을 처음 봤을 때의 감격을 나는 잊을 수 없다. … 파라오의 어느 무덤 속에서 죽은 왕에게 바친 에메랄드로 조각한 곤충을 캐냈다 할지라도 이보다 더한 감동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번득이기 시작한 진리를 맛볼 때 얻는 성스러운 기쁨, 이에 비할 만한 즐거움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라고 그 감동을 적고 있다. 새로운 발견을 이뤘을 때 과학자들이 느끼는 지적 즐거움 그 자체이다.

파브르에게는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었다. “오가는 사람의 눈에 띄지도 않고 집 가까이에 있으며 골풀 몇포기가 싱싱하게 자라고 부평초가 우거진 연못이나 하나 있었으면 … 동그라미를 멋지게 그리며 헤엄치고 돌아가는 물매미의 자랑스러운 모습,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스케이트 선수 소금쟁이, 직업이 잠수부인 물방개 … ”.  소박하지만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관찰자의 소망이 잘 그려져있다. 아마도 환경운동의 정신적 뿌리는 파브르의 곤충 관찰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의 관찰은 예쁜 곤충의 모습에 국한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지극히 역겨워하는 것으로부터도 자연의 진리의 한단면을 이끌어내고 있다. 구더기에 대한 관찰기록을 보자. “(죽은 두더지의 시체) 그 아래 썩은 액체 속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꿈틀거렸다 하는 구더기의 모습이 마치 가마솥에서 물이 끓는 것 같다. … (금파리의 구더기는) 길다란 원뿔모양을 하고 있으며 머리는 뾰쪽하고 꼬리는 잘린 듯한 … 숨을 쉬는 숨구멍인 두개의 작은 갈색점이 피부의 표면에 나타나있다. 앞쪽의 머리라고 불리는 곳은 두개의 집게 갈고리로 무장돼 있다”.

구더기 관찰에 대한 그의 의미부여는 자연관찰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더욱 잘 보여준다. “구더기는 우리들의 세계가 갖고 있는 하나의 위력이다.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생명이 다한 시체를 새로운 생명으로 만들기 위해 구더기는 시체에 화학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구더기는 그것을 엑기스로 분해해 자신의 양식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이 엑기스를 흙이 흡수케 해 토양을 살찌게 하고 식물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어찌 인간에게 아름다운 것만이 자연 사랑의 대상이겠는가. 한 생명체의 탄생이 축복할 자연의 한 모습이라면 또다른 탄생의 밑거름이 되는 죽음 또한 자연의 성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실제로 ‘곤충기(1권)’를 읽고 가장 감동을 받았던 사람 중 한명은 당대 최고의 생물학자였던 다윈이었다. 그는 파브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약 내가 본능의 진화에 대해 쓰게 된다면, 나는 귀하가 기록한 사실 가운데 몇가지를 활용하고 싶습니다. … 앞으로 귀하의 ‘곤충기’를 받아볼 수 있으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과학의 첫걸음은 자연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끈질긴 관찰과 기록 태도다. 이런 의미에서 파브르의 ‘곤충기’는 그 어느 과학고전에 비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11권의 자연 사랑을 엮어낸 가난한 관찰자

장 앙리 파브르(Jean-Henri Fabre, 1823-1915)는 1823년 12월 프랑스의 남부 생 레옹에서 출생했다. 집안이 어려워 3세 때 깊은 산골에 살던 할아버지 댁으로 옮겨가 그곳의 꽃, 풀, 새, 곤충들과 함께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줄곧 가난과 싸워가며 공부를 이어갔다. 파브르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된 후, 독학으로 대학입학자격시험(23세)과 수학과 물리학 독학사 학위(24세), 그리고 박물학 학사학위(31세)를 받았다.

31세였던 1854년 그는 당시 곤충학자였던 레옹 뒤프르의 책을 읽고 곤충학을 향한 삶의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됐다. 뒤프르의 논문을 감명 깊게 읽은 그는 이를 보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흑노래기벌을 관찰해서 쓴 논문을 1855년 ‘자연과학연보’에 투고해, 이 논문으로 프랑스 아카데미로부터 ‘실험생리학상’을 수상했다.

파브르는 과학 대중화에 관심이 많았던 출판사와 손잡고‘대지’‘하늘’‘식물기’등의 책을 출판했다. 그리고 20여년 동안 관찰하고 연구했던 곤충들의 생활상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1878년(55세)‘ 곤충기’1권을 발간했다. 이후 엄청난 열정으로 집필을 계속해 1907년(84세)에는‘곤충기’10권을 간행했고, 1909년에는 86세의 나이로 11권의 집필을 시작했다. 1915년 5월 파브르는 92세로 곤충 사랑의 긴 생애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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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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