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만드는 역법의 1차적인 목적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시간과 날짜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날짜를 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임의로 약속을 정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당장 오늘을 2000년 1월 1일이라고 약속한 후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생활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일주일을 5일로 해도 되고, 일년을 10달이나 20달로 정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계절의 변화 등 자연세계의 모습과 잘 들어맞지 않아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날짜를 정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지구 운동에 맞춘 자연의 시간
자연의 시간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의 주기적인 운행에 따라 생기는 현상이다. 즉, 1일은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회전(자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며,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회전(공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물론 달력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은 지구가 자전하거나 공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과 반대로 해가 하루에 한 바퀴씩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천구가 1년에 한 바퀴씩 회전한다고 생각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력이나 양력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자연의 시간을 반영해 만들어진 달력이다. 그것은 음력과 양력 모두 1년의 길이를 365일 또는 366일 정도로 정한 것에서 쉽게 드러난다. 오늘날 1년의 길이는 약 365.2422일로 알려져 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이미 기원전에 이와 근사한 값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으로 1년의 길이를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달의 길이를 정하는 방법에서는 음력과 양력이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먼저 양력의 경우를 살펴보자. 양력은 해의 운행만을 고려하므로 자연의 시간에 따라 1달의 길이를 정한다면, 1달은 해가 황도 위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2로 나누어서 그것을 1달의 길이로 정하면 된다.
이를 수식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즉, 1년의 길이를 365.25일이라고 한다면 1달은 365.25일 12 = 30.44일로 정하면 되는 것이다.
2월의 해가 가장 빨리 움직인다?
처음에는 이런 원칙이 대체로 지켜졌다. 따라서 큰달을 31일, 작은달은 30일로 정하여 그것을 교대로 배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양에서는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이런 원칙은 무너지게 됐다. 시저와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생일달을 기념하기 위해 7월과 8월을 임의로 날짜를 늘려 버렸다. 그 결과 2월은 28일 또는 29일밖에 되지 않으며, 7월과 8월은 연속해서 큰달로 배치됐다.
이를 해의 운행에 적용해 설명한다면, 1월달의 경우 해는 31일 동안 황도의 1/12 만큼 운행해야 되므로 비교적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2월달이 되면 28일 동안 똑 같은 거리를 운행해야 되므로 상당히 빨리 움직여야 되는 것이다. 이런 모순으로 양력은 1달의 길이를 정함에 있어서 천체의 운행에 따른 자연의 시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음력은 원칙을 보다 철저하게 지켰다. 1달의 길이를 정할 때 양력은 일년을 12로 나눈데 비해, 음력은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삼았다. 즉 음력에서는 달의 모양이 날짜가 지나면서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로 바뀌는 것을 보고 그 주기 약 29.53일을 1달의 길이로 정했다. 이에 따라 음력에서는 1달의 길이가 29일 또는 30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음력은 양력보다 천체의 운행을 보다 더 정확하게 반영하려고 했던 달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양력에서는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값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년의 정확한 길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력에서는 계속해서 이 근사값을 사용했을 뿐이다.
천문학 발전에 따라 정확도 증가
그러나 음력에서는 보다 정확한 1년의 길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그 결과 얻어진 새로운 값은 곧바로 새로운 달력에 반영됐다. 과거 동양에서 나타났던 몇 가지 대표적인 역법과 이에 쓰인 1년의 길이를 보여주는 (표 1)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달력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양력은 몇 차례 바뀌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음력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역법이 제시됐으며 그 종류는 지금까지 거의 1백여 가지에 달한다.
이것은 동양인들이 달력이란 항상 실제 천체운행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천체운행에 관한 새로운 천문학적 지식이 얻어질 때마다 그 내용을 음력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음력의 24절기에 대한 표시에서 나타난다. 계절이 변하는 이유는 지구의 회전축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공전하기 때문인데, 이런 현상을 달력에서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 등의 24개의 절기로 표시했다.
양력에서는 해의 운행을 가지고 날짜를 표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짜만 보아도 해의 위치를 어림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양력에는 따로 24절기를 표시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음력에서는 계절의 변화와 관계 없는 달의 운행을 보고 날짜를 표시하기 때문에 음력 날짜만으로는 계절의 변화, 즉 해의 위치를 알 수 없다. 음력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날짜와는 별도로 24절기를 따로 표시해 주었다.
처음에는 1년을 24등분해 24절기를 표시했다. 즉 1년의 길이가 365.25일이라고 가정하면, 24절기는 365.25 24 =15.218일마다 하나씩 배치했던 것이다. 그러나 6세기 무렵 장자신(張子信)이라는 천문학자는 오랜 천문관측을 통해 해의 운행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해의 운행속도는 겨울에는 평균값보다 조금 빠르고 여름에는 늦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이에 따라 24절기 사이의 간격도 항상 같은 것이 아니고 계절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두어야 했으며, 이런 사실은 8세기 경 일행(一行)이 만든 대연력(大衍曆)이라는 달력에 반영됐다.
달의 운행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해의 경우보다 더 일찍 발견됐다. 달의 운행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기원전 전국시대부터 지적됐으며, 2세기 말 유홍(劉洪)이 만든 건상력(乾象曆)이라는 달력에 반영됐다.
오행성도 대접한 음력
동양의 음력에서는 해와 달의 운행에 관한 매우 정확한 내용을 직접 달력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동양의 역법에서는 달력을 만드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을 듯한 행성의 운행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법이 달력만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그 안에는 해와 달의 운행만을 고려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역법에는 이미 기원전부터 오늘날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라고 부르는 진성(辰星), 태백(太白), 형혹(熒惑), 세성(歲星), 전성(塡星) 등 5개의 행성들의 운행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것은 동양에서 역법을 만들 때 단순히 달력만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천체들의 모든 운행모습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림 1)을 보면 옛날 동양의 달력에서 (1)해의 위치와 그에 따른 계절의 변화, (2)달의 위치와 모양, (3)각 행성들의 위치관계 등을 모두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력 달력을 통해서는 해의 위치와 계절만을 알 수 있는 것과 커다란 차이라 할 것이다. 양력은 해의 운행만을 고려하고 그 밖의 세부적인 모습은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임의적으로 날짜를 정한 달력이지만, 음력은 항상 천체들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달력이었던 것이다.
만약 음력과 양력 중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인 것인가하고 묻는다면, 실제 천체들의 모습과 그에 따른 자연의 시간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음력이 더 과학적이라고 할 것이다.
윤달이 만드는 음력과 양력의 조화
계절은 태양의 남중고도가 변하면서 지면에 입사되는 태양의 복사에너지가 변하고, 낮의 길이가 변하면서 생긴다. 태양의 남중고도와 낮의 길이 변화는 태양이 황도상에서 어느 위치에 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계절 변화는 태양의 운행이 1태양년 동안 주기적으로 변하는 현상이므로 달의 운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런데 음력에서는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날짜를 매기므로 양력과 음력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1태양년의 길이가 12삭망월의 길이와 같다면 태음력은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1태양년의 길이는 12삭망월의 길이보다 10.9일 정도 길다. 따라서 약 3년이 지나면 음력이 한달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음력달과 계절은 현격한 차이가 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느 해의 음력 2월 초에 있었던 춘분날이 약 10년이 지나면 6월로 옮겨지고, 34년 정도 지나면 다시 2월로 되돌아 온다. 여름의 달인 음력 7월은 겨울이 되기도 하고 봄이 되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와 음력 달의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춘분을 항상 2월달에 오도록 하고, 추분은 8월달에 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먼저 몇 태양년의 길이와 몇 삭망월의 시간 길이가 일치하는지 그 주기성을 찾아야 한다. 이 주기성을 찾아 태양년의 몇년 기간 동안 몇 개월의 윤달을 넣게 되면 계절과 음력 달의 명칭이 어느 정도 일치할 수 있다.
이 주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태양년과 삭망월의 날짜수 정수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사값을 쓰는데, 첫번째 근사값은 8태양년과 99(8년X12월+3윤월) 삭망월이다. 이는 8년 동안 3삭망월을 윤달로 넣는 것이다. 두번째 근사값은 19태양년과 235(19년X12월+7윤월) 삭망월로 19년간 7삭망월의 윤달을 두는 것이다. 그 길이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8태양년 = 365.24219일 X 8년 = 2921.9375일
99삭망월 = 29.53059일 X 99달 = 2923.5282일
19태양년 = 365.24219일 X 19년 = 6939.6017일
235삭망월 = 29.53059일 X 235달 = 6939.6882일
앞의 것을 8년법(八年法)이라 하며 8년 동안 3달의 윤달을 두면 1.6일 정도의 날짜가 차이가 생긴다. 반면에 뒤의 것을 19년법(十九年法)이라 하며 이는 19년 동안 윤달을 7달을 두면 거의 날짜 차이가 없게 된다. 고대 바빌로니아력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8년법을 쓰고, 기원전 4세기에는 19년법을 썼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19년법을 써서 태음력에 계절을 맞추었다.
19태양년과 235삭망월의 길이가 같아지는 주기인 6940일을 동양에서는 장주기라 하는데 춘추시대에 발견됐으며, 서양에서는 메톤주기라 하는데 기원전 433년경에 아테네의 천문학자 메톤(Meton)에 의해 발견됐다. 이 주기는 태음태양력이 계절에 일치되는 주기인 동시에 달의 삭망이 태양년에 복귀하는 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음력은 19년법으로서 19태양년 동안 7삭망월의 윤달을 넣는다.
달력과 범죄 - 1분 차이로 형량 달라질 수 있어
매년 천문대에서 펴내는 역사서에는 날짜뿐만 아니라, 매일 일어날 중요한 천문현상들이 총망라돼 있다. 여기에는 음력날짜, 일진, 월령, 일출일몰시각, 남중시각, 낮의 길이, 월출월몰시각, 아침저녁의 박명시각 등이 모두 들어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양력 날짜와 낮의 길이 정도만 필요하지만, 가끔 박명시각이나 월령 등이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느 날의 박명 시간이나 달의 모습 때문에 법정에서 피고의 형량이 달라지고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 벌어진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는 야간에 일어난 범죄의 경우 가중처벌되는 조항이 있다. 폭행, 체포, 감금, 협박, 주거침입, 손괴, 공갈 등의 범죄는 야간에 일어난 경우 주간에 일어난 경우보다 피해자에게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더 엄중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또 야간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범위가 넓어진다. 예를 들어 범인이 흉기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를 물리치기 위해 범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을 때, 과잉방위의 소지가 있지만, 야간에는 주간보다 공포나 불안이 더 커지므로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
때문에 주간과 야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계시각에 범죄가 생기면 1분 1초 차이로 형량이 달라질 수 있다. 또 보름달일 떴을 때라면 범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야간이라 하더라도 정상참작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고 알려주는 달력의 편찬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생활속에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