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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축구장에 숨어있는 첨단기술

악천후 뚫고 야간경기 치르는 비결

다가오는 5월 31일, 서울 상암구장의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시작된다. 월드컵 경기장은 그 규모와 외양에서도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내부에는 더 신기한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첨단과학의 집약판이라고도 불리는 월드컵 경기장에는 어떤 기술이 숨어있는지 알아보자.


2002년 6월 14일. 인천 문학월드컵구장은 온통 ‘붉은 빛’이다.

월드컵 본선 D조의 1·2위를 가르는 한국과 포르투갈의 마지막 일전. 한국팀 응원단 붉은 악마는 붉은 색의 깃발을 나부끼며 연신 ‘코리아 파이팅’을 외쳐댄다. 한껏 푸르른 잔디 위로 붉은색 깃발은 그 힘찬 펄럭임을 더해가고, 한국 선수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연신 공격에 박차를 가한다.

경기 결과는 2대 2. “골 득실차로 폴란드를 누른 한국이 조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됐습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에 인천구장은 폭발해버린다. 터져나오는 함성, 쏟아지는 오색의 꽃보라….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 경기장은 한척의 범선이 돼 웅장한 돛을 편채 월드컵 16강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인천 문학월드컵구장의 붉은 악마들



월드컵 바다 항해할 범선 모습

인천시 남구 문학동에 자리잡은 인천 문학경기장은 언뜻 보면 한척의 범선을 연상시킨다. 지난 2001년 12월에 완공된 지하1층, 지상5층 규모의 이 구장은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야구장을 모두 갖춘 종합구장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의 월드컵 본선 3차전이 치러질 주경기장은 가장자리에 높이 솟은 기둥에 돛 형태의 차양을 달아 금방이라도 인천 앞바다를 미끄러져 나갈 것 같은 고풍스런 범선의 모습이다. 또한 한국적 곡선미를 살리기 위해 강철 사용을 최소화했고 대신 케이블로 전통적인 처마곡선을 표현했으며, 동시에 건물의 안정성을 추구했다.

일반적으로 지붕에 가해지는 압력은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에 제곱비례한다. 보통 축구장 같은 대규모 건물은 구조 전체를 지붕으로 덮지 않는다. 지붕 전체에 가해지는 압축력과 인장력(옆으로 늘어나려는 힘)이 대단해, 무너지지 않는 지붕을 설계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설사 기둥을 많이 세워 지붕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인다 하더라도 지붕 자체 무게가 굉장해 이를 지지할 기둥을 설계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까지 단위 부피당 가장 큰 힘을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철골구조다. 대부분 고층건물이 철골구조를 갖는 이유다.

하지만 축구 전용구장의 경우, 구조 전체에 기둥을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경기장 가운데 그라운드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 내부에 기둥을 세운다면 최적의 관람환경이 가장 중요한 전용구장의 특색이 무색해진다. 따라서 경기장 가장자리에 기둥을 세우는 수 밖에 없는데, 가장자리 기둥만으로는 전체 지붕의 하중을 견디기 힘들다. 이같은 딜레마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소의 기둥과 기둥을 보완할 구조, 그리고 가벼운 지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인천 문학경기장의 경우 기둥 수를 줄이기 위해 케이블을 적극 사용했다. 돛대를 상징하는 주기둥을 경기장 가장자리에 세운 후, 관람석 위로 링모양의 철골 지붕을 덮었다. 이 위로 차양막을 덮어 스탠드의 98%를 가렸다. 철골 구조와 차양막은 주기둥에서 나온 케이블에 연결돼 있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문학경기장의 구조를 설계한 독일의 슈라히와 버그만은 케이블 구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경기장의 주기둥조차 바닥에 연결된 케이블로 지지시켰다. 전체적인 모양은 복잡하게 얽힌 로프가 돛대와 돛을 지지하고 있는 한척의 범선이다.

케이블 속에도 첨단기술은 숨어있다. 케이블은 주기둥에 걸리는 막대한 하중을 이어받아 이를 분산시켜야 하기 때문에 매우 강한 인장력을 가져야 한다. 케이블이 단순한 철사같은 구조를 가진다면 이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케이블 단면을 보면 바깥은 z모양의 강철이 옆으로 이어져 링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이 안에 다시 고강도 철심이 수십개 박혀 있다. 최강의 인장력을 갖기 위한 구조다.
 

최근 축구 전용구장은 측면배치 조명을 많이 사용하는 추 세다.



자연광보다 편안한 조명 장치

2002 한일 월드컵을 상징할 우리나라 경기장은 아무래도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경기장일 것이다. 인천 문학구장이 범선을 본뜬 모양이라면 상암구장은 전체적으로 방패연을 연상시킨다. 지하1층 지상6층의 이 거대한 구조물은 문학구장과 마찬가지로 철골구조를 최소화하고 케이블로 전체적인 힘의 균형을 잡았다. 관람석의 90%를 지붕으로 가리는데, 지붕에 사용된 차양막은 태양광의 투과율이 높아 전체적인 분위기가 화사하다.

차양막은 일명 테프론이라 불리는 ‘폴리테레프탈산에틸렌’ 직물로, 탄성이 좋고 마모에 강하며 내열성이 뛰어나다. 특히 빛의 투과율이 좋기 때문에 축구 전용구장의 ‘덮개’로 많이 쓰인다.

상암구장의 가장 큰 특징은 조명방식이다. 주간이라면 별 필요 없겠지만 야간경기에는 조명 시설이 필수 요소다. 국제 경기용으로 정해진 조명 방식은 크게 코너배치와 측면배치, 두가지 방법이 있다.

코너배치는 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기장 네귀퉁이에 세워진 조명탑을 이용한 방식이다. 조명을 설치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눈부심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수평조도’와 ‘수직조도’라는 것을 측정하는데, 선수의 입장에서 수평시선이나 수직시선에서 측정한 밝기가 적당해야 한다.

코너배치의 경우 골키퍼를 방해하는 눈부심을 없애고 골포스트 뒤에 설치된 보조 카메라가 촬영하기 좋은 조도를 만들기 위해 조명탑을 지정된 지역 내에 설치해야 한다. 또한 경기장 중앙과 투광 조명이 수평면을 기준으로 25°각도를 유지하도록 조명탑과 조명의 헤드프레임을 조정해야 한다.

이처럼 코너배치 방법은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더구나 조명탑 설치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요즘에는 측면배치 방법을 많이 쓴다. 이 배치에서는 투광 조명을 터치라인과 평행하게 집단으로 설치한다. 조명은 스탠드 지붕 위나 아래의 프레임에 주로 설치한다. 이때 골키퍼를 방해하는 섬광을 없애기 위해 프리킥 지역에는 투광 조명을 설치하지 않는다.

상암구장의 경우는 총 2백68개의 조명을 지붕 속에 설치한 측면배치 방법을 사용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규정한 국제 경기장의 조도 규격은 1천5백 럭스(lux, 조명밝기의 단위, 보통 사무실의 밝기는 3백-5백 럭스 정도다)이나 상암구장의 경우는 2천 럭스 정도로 약간 밝은 편이다. 또한 정전 등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건설단 설비담당관 나용제 주임은 “상암구장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전력으로부터 별도의 전용선 2개를 확보하고 있으며 최첨단 무정전 전환장치(UPS)도 설치돼 있다”고 말한다. 무정전 전환장치는 대용량의 축전지를 예비로 마련해 정전 등의 사태에 축전지의 전력으로 조명을 밝히는 장치다.

상암구장 조명 장치의 또다른 특징은, 자연광과 가장 비슷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조명 하나하나를 컴퓨터로 제어한다는 점이다. 그때그때의 밝기와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제어되는 조명 장치는 가장 자연스런 빛을 연출해 선수와 관중들로 하여금 지금이 밤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게 해줄 것이다.


경기력 향상의 밑거름 잔디구장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경기 당시 우리 대표팀은 선취골을 넣고도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한 선수가 태클을 잘못해 퇴장을 당했고 그 결과 게임에서 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선수가 무리한 태클을 한 것도 잘못이었지만, 당시 한국 선수들이 프랑스의 잔디구장에 익숙하지 않아 이같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때까지 잔디구장은 우리에게 그리 흔한 시설이 아니었다.

잔디구장과 흙구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 선수들의 부상 정도가 잔디구장에서는 훨씬 줄어든다. 잔디 자체가 완충제 역할을 해 선수가 태클이나 슬라이딩을 할 때 발목과 다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잔디구장에서는 선수가 볼을 컨트롤하기 쉽다. 흙구장은 표면이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볼이 땅에 닿았을 때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튈 수 있다. 잔디구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잔디구장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드리블 능력의 향상일 것이다. 축구공의 드리블을 결정짓는 요소는 표면과의 마찰력. 잔디는 흙에 비해 공과의 마찰력이 작다. 마찰력은 맞닿는 면적의 수짓항력에 비례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마찰면의 마찰계수다. 잔디의 마찰계수는 흙에 비해 월등히 작기 때문에 그 만큼 마찰력은 줄어든다. 따라서 선수가 볼을 몰고 다니기 훨씬 쉽다. 마찰력이 작은 것은 선수의 축구화에도 똑같이 적용돼 같은 시간을 뛴다면 흙구장보다 잔디구장에서의 경기가 훨씬 덜 피곤하다. 경기력 향상의 또다른 이유다.


우리 기후에 적합한 서양 잔디

요즘 모든 국제경기는 잔디구장의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당연히 2002 한일 월드컵 모든 구장도 잔디구장이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개최구장 잔디의 질은 게임의 성패를 결정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떤 잔디를 써 구장을 꾸밀 것인가의 결정은 구장설계 초기부터 계획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월드컵 조직위원회 잔디자문위원인 김경남 박사는 “잔디구장 조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잔디종류의 결정”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0년부터 잔디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월드컵 잔디구장 자문위원단을 꾸려 어떤 잔디를 쓸 것인가를 논의해 왔다. 수차례의 연구와 토론을 거쳐 최종 낙점된 종류는 한지형 잔디인 ‘캔터키 블루그래스’.

잔디 종류의 결정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는 기후다. 캔터키 블루그래스는 서늘한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한지형 잔디의 대표종이다. 무덤이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디는 한국형 들잔디로 따뜻한 기후에서 잘자라는 난지형 잔디의 대표주자다.

여름에 고온다습하고 겨울에 한랭건조한 우리나라 기후에 가장 적합한 잔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양 잔디인 캔터키 블루그래스다. 이 잔디의 생육 최적온도는 15-25℃로 장마기간 중 고온다습한 기후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봄·가을의 서늘한 기후에 적합하다. 또한 난지형 잔디에 비해 성장속도가 빠르고 빠이거나 떨어져 나갔을 때 회복 속도도 빨라 축구경기 등의 격렬한 운동에 알맞다. 무엇보다 줄기가 부드럽고 유연해 선수보호의 측면에서 가장 유리하다.
 

단순해 보이는 그라운드 밑에는 최 상의 경기조건을 만들기 위한 첨단요소가 숨어있다. 특히 축구 전용구장의 배수 능력은 여러가지 실험과 토론을 거친 후 최적의 조 합을 찾은 결과다.



물과의 전쟁

전용 축구장이 가져야 할 조건 중 또하나는 좋은 배수성이다. 축구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웬만한’ 비에도 경기를 속행하기 때문에 우천시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그라운드의 배수성이 좋아야 한다. 또한 많은 양의 습기는 잔디의 생육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물은 잔디구장에서 없애야 할 ‘적’이다.

전용구장에서 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그라운드의 중앙부위를 가장자리보다 약간 높게 설계해 물이 자연스럽게 가장자리로 흘러내리도록 했다. 하지만 물이 흐르면 공도 구른다. 불편할 뿐더러 가끔 공이 저절로 굴러가는 우스꽝스런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상암구장을 보자. 윤기가 흐르는 잔디 밑을 파보면 물이 고이지 않는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라운드 밑은 단순한 땅이 아니다. 우선 맨위는 잔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가는 모래가 30cm 깔려 있다. 그 밑으로 굵은 모래와 가는 자갈이 순서대로 놓여 물이 순차적으로 스며들도록 돼 있다.

위로 갈수록 놓여 있는 입자가 가는 이유는 입자가 가늘수록 동일 면적으로 많은 양의 물을 머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자가 가늘수록 표면적은 늘어난다. 따라서 맨위 가는 모래층의 표면적이 가장 크고 맨아래의 자갈층이 가장 작다. 표면적이 클수록 물분자가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 더 많은 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양의 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위로 갈수록 머금은 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속도도 빨라진다. 제일 위층의 물 무게는 아래층을 누르고 아래층으로 내려올수록 입자가 커지기 때문에 물의 통과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맨 위층이 자갈층이라면 물이 통과하는 속도는 빠를 것이다. 하지만 아래로 갈수록, 속도는 점점 느려져 결국 아래층부터 물이 차올라 올 것이다. 더구나 자갈층은 모래에 비해 표면적이 작아 순간적으로 머금을 수 있는 물의 양도 적다. 결국 경기장은 물바다가 될 것이다.

굵은 모래층을 5cm, 가는 자갈층을 10cm로 설계한 이유도 다양한 실험 결과, 물이 가장 잘 흘러 내려가는 최적의 조합을 찾은 결과다.

가장 아래층으로 이동한 물은 어떻게 될까. 맨아래의 자갈층 밑에는 구멍이 수없이 뚫린 지름 10cm의 파이프가 있다. 자갈층까지 도착한 물은 이 파이프를 통해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 파이프는 그라운드 가장밑에 거미줄처럼 촘촘히 깔려있어 물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그라운드 가장자리에는 물이 최종적으로 모이는 지름 20cm의 파이프가 빙 둘러져 있어 물을 경기장 밖으로 배출한다. 물론 이 파이프는 구멍뚤린 파이프와 연결돼 있다. 평범해 보이는 그라운드 밑에는 사실 이처럼 복잡한 파이프가 촘촘히 연결돼 있어 최적의 경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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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대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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