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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청각 장애아들을 위한 작은 잔치가 열렸다.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학생부터 어느 정도의 소리는 들을 수 있으나 청각이 정상이지 못한 다양한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과학 놀이 한마당을 펼쳤다.

올해로 제5회를 맞는 학생과학탐구올림픽대회는 일반대회를 마치고 축제 형식의 ‘장애아를 위한 한마음 과학 싹 잔치’를 준비했다. 지난 10월 2일 국립 선희학교에서 서울지역의 4개 청각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이 행사는 1부와 2부의 행사로 진행됐다. 1부 행사는 운동장에서 벌어진 ‘멋지게 날려보는 과학탐구놀이’, ‘신비한 빛을 만들어보는 과학탐구 놀이’와 강당에서 진행된 ‘자석이 들어있는 과학완구로 배우는 과학탐구놀이’, ‘힘을 주어 돌리고 움직여 보는 과학탐구놀이’로 운영됐다. 2부 행사는 학교별 대항으로 ‘물로켓 쏘아보기’ ‘낙하산 만들어 달걀 떨어뜨리기’ ‘굴렁쇠 굴리기’ ‘빨대로 튼튼한 다리 만들기’ ‘제기 만들어 차기’가 있다.

기존의 과학 행사들이 보다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경쟁적 형식이었다면, 이번 행사는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과학을 즐길 수 있는 비경쟁적 형식의 놀이에 가까웠다. 각 마당의 주제가 심오하고 높은 수준의 지적 탐구심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교과서만으로 과학을 대하던 학생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선 것 같다.

본 대회의 취지에 대해 박승재 교수(과학교육단체총연합회 회장)는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고, 자신들의 장애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고 극복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며, 2차적으로는 과학을 탐구하고 즐기면서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이번엔 여러 모로 준비가 미흡하지만 연구를 계속해 장애 학생들이 과학을 즐기며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면서 “우수한 학생과 보통 학생, 장애 학생 모두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임을 잊지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이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빨대 피리 만들기’와 ‘비눗방울 만들기’. ‘빨대 피리 만들기’는 청각 장애 학생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김명환(KIM연구소 소장)박사는 지적했다.

빨대 피리를 불면서 학생들은 혀끝의 진동을 느낀다. 이 진동에 대해 교사들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와같은 진동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음파의 공기 진동을 예로 든다. 학생들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공기의 진동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 소리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즉 자신들의 장애 원인을 직접적으로 알게되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 직접 참여한 이순희(선희학교 중등부 과학담당)교사는 학생들이 귀로 듣지 못하는 만큼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일반 학생들보다 과학에 대한 지적 성취가 미흡할 지는 모르지만, 이 학생들에게도 과학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재미있고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장애아를 위한 한마음 과학 싹잔치'는 '모든 이를 위한 과학교육'의 가치가 문헌이나 논문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이 존중되는 시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성실하게 임할 때 과학적 소양을 갖춘 시민들의 민주사회가 이뤄질 것이다. 과학교육자들의 실제적인 연구와 정책 책임자들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경기고등학교에서 열린 '과학 싹 큰 잔치'전경.


푸른 가을 하늘과 어우러진 '과학 싹 큰 잔치'

학생과학탐구올림픽의 마무리 행사인 '과학 싹 큰 잔치'가 1997년 10월12일 경기고등학교에서 단위대회 수상자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한 초중고등학생, 그리고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열렸다. 작년까지 서울중심의 이벤트성 행사로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렸던 것과는 달리 학교에서 마무리 행사를 하게 된 것이 큰 특징. 행사의 규모가 작아진 것에 대해 대회장인 정완호(한국교원대학교 과학교육과)교수는 "과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즐기는 행사로서 의미를 찾고 싶다"며 "서울에서 열리는 이 행사와 더불어 지역 과학 싹 잔치도 각각 개성을 갖고 운영되고 있어 오히려 잔치가 전국적이 됐다"고 밝혔다.

공교육의 시작 단계인 유치원의 교사에서 대학생까지 참여한 야외 실험 시범은 태양 전지로 움직이는 자동차 시범에서 재생종이 직접 만들어 보기까지 50여 종류의 부스로 이뤄졌다.

야외 실험 시범이 진행된 운동장은 교과서 속의 과학이 일상적으로 들를 수 있는 슈퍼마켓으로 옮겨져 있는 분위기였다. 물유리와 염이 반응해 결정이 만들어지는 '화학 정원'을 준비해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했던 이강진(관악고2학년)학생은 인문계 학생.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처음에는 물유리의 농도를 조절하지 못해서 결정이 작거나 자라지 않았다. 농도를 변화시키고 염도 여러 종류로 다르게 넣어 보면서 결과로만 외우던, 물유리의 농도가 진할수록 결정 생성 속도가 빠르고, 결정의 크기가 굵어진다는 것을 알게됐다. 학교 특활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험한 내용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니 더 재미있다."

과학의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개념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는 이런활동들이 과학교육이 지항해야 할 바이다. 단지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과학 싹 잔치에 참가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초등학교 학생들이라는 점. 아무곳에나 주저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이건 왜 이래요? 한 번 해보세요!"하며 운동장을 누비는 이들은 초등학생들. 반면 직접 만들기보다 기웃 기웃 수줍어하며 부스를 그냥 슬쩍 보고 지나가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며, 이 학생들도 몇 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들처럼 과학에 적극적이었으리라는 생각이 스친다. 과연 무엇이 이런 '돌아올수 없는 강'을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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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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