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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생명 탄생의 기원지 해저 열수구

자원부족과 환경오염 동시 해결사

약25년전 발견됐을 당시 지구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장소 중 하나에 불과했던 해저열수구. 그런데 현재 해저열수구는 인류가 당면한 식량, 환경, 산업문제들을해결할 생물자원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일까.


여러개의 굴뚝에서 열수가 솟아 나오고 있는 모습.


온천지대에서 간헐적으로 뜨거운 물이 솟구쳐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지상의 간헐천(geyser)처럼 해저에도 뜨거운 물이 솟아 나오는 열수분출구(hydrothermal vent)가 있다. 바로 해저에 존재하는 간헐천이라 불리는 해저열수구다.

약 25년 전 처음 발견됐을 당시 해저열수구는 지구상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매혹적인 장소 중 하나로 막연하게 인식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해양의 수온과 화학 조성을 조절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을 제공하고, 해양의 일반 미생물과 구분되는 다양한 미생물의 서식처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생명의 기원을 추적해 들어가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며 의학, 산업과 환경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생물자원의 보고로 평가된다.

인류의 호기심과 함께 다양한 연구 소재를 제공하는 장소, 해저열수구. 열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서부터 해저열수구의 신비를 밝히는 탐험을 떠나보자.

바다 밑바닥에 존재하는 틈새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에 높은 산들이 연결된 산맥이 존재하듯이 해저에도 산맥이 있다. 실제 지구에서 가장 긴 산맥은 해저에 있다. 중앙해령이라고 불리는 이 산맥은 길이가 약 5만6천km로 서울과 뉴욕 사이 거리(약 1만km)의 5배가 넘는다. 중앙해령은 각 대륙사이의 해저면을 따라 지구상 전역에 길게 뻗어 있다.

지질학적으로 중앙해령에서는 지각운동이 활발히 일어난다. 중앙해령이 뻗어 있는 축을 따라서 해저면이 양쪽으로 확장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벌어진 틈새로 지각 아래에 존재하는 뜨거운 맨틀층의 마그마(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암석이 녹아 만들어진 물질)가 해저표면으로 솟아 나온다. 이러한 지점에서 바로 해저화산이나 열수분출구가 발견된다.

열수가 솟아 나오는 곳에는 굴뚝과 같은 탑이 형성되는데, 열수에 녹아있던 금속들이 온도가 낮고 산소가 많은 해수와 만나 냉각되고 산화되면서 생긴 것이다. 이런 탑은 분출되는 열수의 종류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뉘어진다. 온도가 4백℃에 이르는 뜨거운 열수에는 철이나 황이 많이 포함돼 있는데, 냉각되면서 검은색의 철황화물(FeS)을 형성하기 때문에 이를 블랙 스모커(Black Smoker)라 부른다. 스모커란 말은 열수가 담배 연기처럼 보글보글 배출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한편 다소 낮은 온도(30-40℃)의 열수가 나오는 지역에는 주로 바륨, 칼슘 또는 실리콘과 같은 원소들이 많이 포함돼 있어 흰색을 띠는데, 이를 화이트 스모커(White Smoker)라 부른다.

해양 전체의 화학성분 조절

1977년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해역에서 이뤄진 최초의 해저열수구 탐사 결과를 바탕으로 오늘날 널리 알려진 열수순환 모델이 제시됐다. 열수순환 모델은 해저열수구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핵심 이론이다. 즉 지표면이 확장되면서 형성된 새로운 지층이 해저면 확대축에서 멀어지면서 차가운 해수에 의해 냉각, 수축돼 틈새가 나타난다. 이 틈새로 스며든 해수는 지각내부의 뜨거운 마그마층에 의해 가열돼 열수분출구를 통해서 다시 지표면으로 솟아나게 된다는 얘기다(그림1). 오늘날 과학자들은 연간 열수부근의 틈새로 스며들어가는 물의 양이 해양으로 유입되는 지구 전체 담수량(강물의 수량)의 약 20-25%를 차지하는 아마존강과 맞먹을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열수순환은 해양 원소의 화학 조성을 조절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바닷물에는 무기원소의 양이 일정한 농도로 유지되고 있는데, 이중 마그네슘과 황산염은 많이 녹아있으나 철이나 망간과 같은 금속원소들은 소량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열수순환과정을 통해 해수로부터 마그네슘이나 황산염이 지각 내부로 들어가고, 열수분출구를 통해 칼슘이나 칼륨이온, 황화가스나 메탄가스 그리고 철이나 망간이온이 해양으로 공급된다.

열수분출구의 발견 이전에 과학자들은 해양의 화학 성분을 조절하는 요인이 육지로부터 강을 통해 유입되는 원소들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해양의 해저화산대를 따라 수많은 열수분출구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열수의 분출과 강물의 유입에 의한 화학 조성의 조절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사는 미생물

발견 당시부터 해저열수구는 과학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열수분출구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저서생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해저는 빛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식물플랑크톤이 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표층에 비해 유기물이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유기물을 먹고 사는 저서생물의 양도 적어야 한다. 더욱이 열수 주변에는 황화가스나 중금속과 같은 독성물질들이 높은 농도로 분출되기 때문에 생물의 서식환경으로는 아주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열수 부근에 많은 저서생물들이 살 수 있는 이유가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미생물. 열수에 살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열수분출구 주변의 많은 저서생물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열수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미생물은 화학합성 독립영양균과 공생세균이다. 화학합성 독립영양균은 열수분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철과 망간 같은 금속이온들로부터 에너지를 생성해낸다. 또한 관벌레(tubeworm)와 같은 저서동물들은 황화가스로부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황산화세균을 체내에 보유하고 있다(그림2). 황산화세균은 독성이 강한 황화가스를 제거하면서 유기물을 만든다. 관벌레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배가 불러오는 셈이다. 사실 관벌레는 입이나 소화기관은 없지만 체내에 존재하는 수십억 마리의 박테리아와 공생관계를 통해서 삶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열수의 생태환경을 대표하는 또다른 미생물은 분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수에 서식하는 초호열성(고온을 좋아하는 성질) 박테리아다. 이들은 1백-3백℃ 정도의 뜨거운 열수에 서식하는 혐기성(산소를 싫어하는 성질) 박테리아로 메탄가스나 황이온 등을 생성한다.


(그림1)열수의 순환 과정


원시 생명체의 발생지

현재 과학자들은 최초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환경 후보지로 열수분출구를 주목하고 있다. 즉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지금으로부터 약 35-38억년 전 열수분출구 자체에서 살았거나, 외계로부터 날아온 운석에 붙어 지구로 온 후 열수 부근에 안착해 생명활동을 유지해온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실제로 고미생물(Archaea)이라 불리는 열수구 내부에서 발견되는 초호열성 메탄생성균은 산소가 존재하는 곳에 서식하는 일반 미생물과는 다른 세포구조와 유전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이들이 산소가 없었던 원시지구환경에서 생활했던 초기생명체라고 생각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과학자들은 열수분출구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바닷물이 만나면서 최초의 유기물이 형성됐으며 이로부터 생명체가 진화하기 시작했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또한 몇몇 과학자들은 열수분출구의 철과 황산으로부터 만들어진 황화철이 유기물 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해 궁극적으로 최초의 생명체를 탄생시켰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철황화물(또는 블랙 스모커)이 최초의 유기물 합성에 촉매로 작용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남아프리카에서 생성된 32억년 전의 열수화석에서 발견된 유기물과 오늘날의 열수구에서 발견되는 유기물의 구조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늘날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지구 외부에 존재할지도 모를 생명체 또는 흔적을 찾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우주과학자들은 열수와 유사한 환경이 최초의 생명체의 서식환경일 것이라는 전제 위에 화산활동의 흔적이 있는 외계로부터 생명체를 간직한 열수를 찾고 있으며, 그 대상으로서 액체상태의 물이나 화산활동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화성이나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를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앞으로 얼마나 성공적인 열매를 맺을지는 알 수 없으나, 열수가 지구에 존재했던 원시 생명체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연구재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림2) 관벌레 몸속의 황산화세균^심해에 있는 대표적인 저서동물인 관벌레는 입이나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그러나 몸속에 독성이 강한 황화가스로부터 유기물을 만드는 황산화세균을 보유하고 있다.관벌레는 공생하는 황산화세균 덕분에 먹이를 먹지 않아도 된다.


첨단과학기술의 경합장

해저열수구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심각한 의학, 환경과 산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해저열수구는 중금속이나 황화수소가스와 같은 유독성분이 많은 환경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 서식하는 생물은 독성을 제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해독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일은 우리가 겪고 있는 토양의 중금속 오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
또한 열수 미생물은 부가가치가 높은 의약과 산업에 사용될 천연재료로서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1백℃ 이상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열수의 초호열성 박테리아(Thermus균주)가 보유한 열에 강한 DNA 중합효소(polymerase)는 PCR이라 불리는 유전자 증폭기에 사용돼 분자생물학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에이즈나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의 치료를 위한 유전자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열에 강한 단백질 분해효소(protease)는 고온에서 난분해성 물질을 분해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유용한 아미노산까지 얻을 수 있어 환경정화와 자원재활용에 직접적으로 공헌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화가 가능한 자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소재와는 달리 환경친화적이며 오랜 기간동안 저장할 수 있고, 간단한 온도조작만으로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생물소재라 할 수 있다.

이제 해저열수구는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인류의 자원과 환경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장소로서 그리고 이러한 생물자원의 확보를 위한 국가간 첨단과학기술의 경합장으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현재 심해잠수정을 보유한 미국, 일본, 프랑스뿐 아니라 선진 각국은 앞선 해양생태환경 연구기술과 생명공학 분야의 폭발적인 발전을 바탕으로 무궁한 자원 잠재력을 보유한 해저열수구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의 자원확보와 환경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도 해양에 산재해 있는 생물자원의 획득과 이용을 위한 해양과학 분야의 기술경쟁력 확보와 연구개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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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현정호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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