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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기름과 달군 쇠로 병원균을 죽여라!

독자 앞에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본 타임머신 자동차가 놓여 있다고 가정하자. 호기심이 발동한 독자는 시간을 5백년 전으로 맞추고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잠시 충격에 휩싸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영화에서나 본 듯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진짜로 5백년 전으로 날아온 것인지 의문을 가지며 자동차에서 내리는 순간,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이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리에 생긴 큰 상처에 통증을 느끼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특이한 모습의 사나이가 뭐라고 소리를 치며 독자의 다리에 펄펄 끓는 기름을 부으려고 한다. 상처 부위에 왜 끓는 기름을 부으려고 하는 것일까.

중세사회 몰락시킨 페스트

전염병이 크게 유행해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은 일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역사서에 나타난 기록으로는 기원전 430년경 아테네에서 유행한 전염병이 최초이며, 다른 자료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 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페스트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며, 2세기 로마에서는 두창으로 의심되는 발진성 열병이 유행했고, 5세기 터키에서는 페스트로 의심되는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성경에도 등장하는 한센병은 중세 시대에 많은 환자들을 양산했으며, 1348년부터 약 3백년 동안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크게 유행해 결국 중세사회가 몰락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15세기 말부터 16세기에는 매독이 인류를 위협했고, 17세기와 18세기에는 두창과 발진티푸스가 유행했다. 에스파냐 군대는 두창의 힘으로 멕시코에서 아즈텍 문명을 물리치고 남아메리카를 차지하는 발판을 이루었고, 나폴레옹 군대는 발진티푸스에 의한 전투력 손실에 의해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의학이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 이후에도 전염병은 계속돼 콜레라, 인플루엔자, 에이즈 등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끓는 기름과 달군 쇠로 병원균을 죽여라!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

전염병을 계속 경험하면서 전파속도가 사람의 이동속도보다 늦다는 점에 착안해 전염병은 신이 내린 벌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전파되는 질병임을 알게 되지만 해결책이 없었다.

십자군 전쟁으로 외상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상처 부위를 그대로 두면 새로운 병(미생물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 중세인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처 부위에 끓는 기름을 붇기 시작했다.

우유 광고에 나오듯이 병원성 미생물을 살균하는 방법에는 고온살균법과 저온살균법이 있는데, 이 방법이 개발되기 전부터 끓는 기름을 상처 부위에 부으면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 없듯이 끓는 기름은 그 자체로 신체에 해를 입힐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이 아니었지만 돌팔이들이 판치던 상황은 이를 묵인하고 있었다. 외과와 산부인과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파레가 16세기에 이 방법을 사용하지 말자고 외쳤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파스퇴르가 ‘미생물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병원성 미생물이 전염병의 원인임을 알아내고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1885년 광견병 백신을 개발하기는 했지만 감히 임상시험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광견병이 걸린 개에 물린 어린이 한명이 찾아 왔다.

그 어린이의 어머니는 광견병에 물린 사람들에게 행해지고 있던 방법을 자신의 아들에게 도저히 적용할 수 없어서 다른 치료를 해줄 의사를 찾았고, 이미 닭 콜레라와 탄저병을 해결한 적이 있는 파스퇴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파스퇴르는 자신이 개발한 광견병 백신이 잘못하면 환자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 후 치료에 응했고,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어 바이러스성 질환인 광견병을 해결할 수 있었다.

어린이의 어머니가 거부했던 당시의 치료법은 개에게 물린 부위를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것이었다.물론 개에게 물린 직후 그 부위를 완전히 지져서 광견병 바이러스를 몰살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한가지 치료법이 되기는 했겠지만 사실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별로 가치가 없는 치료법이 수 백년 동안 계속 행해진 셈이다.

200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예병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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