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과학기술부 장관이 과학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별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기를 거쳐 현재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지위에 오른 김영환 장관.그동안 구호로만 그쳤던 과학대중화를 그는 어떻게 펼쳐나갈지 구체적인 포부를 들어봤다.
“집에서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중학생 아들과 같이 보고 있는데 온가족이 보기에 손색이 없는 잡지더군요.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잡지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던데요.”
김영환(46) 신임 과학기술부 장관은 본지에 대한 인상을 얘기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충북 괴산의 조그만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어릴적 반딧불이를 벗삼아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얼마전까지 아마추어 천문학회장을 지내는 등 과학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실제로 자연과학분야의 공부를 했고(연세대 치과대 졸업) 전기분야 기술면허가 6개나 있는 현장과학자 경력을 갖고 있다.
김 장관은 취임초기부터 외국에 비해 뒤떨어진 과학대중화를 위해 힘쓰겠노라고 공언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과학문화는 아직까지 대중과 동떨어져 일부 과학자와 과학에 관심 있는 소수만의 문화로 향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노벨상을 받은 한국과학자가 없는 이유를, 부족한 과학연구의 토양과 과학대중화의 부족이라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생후 7-9개월 아이에게 책 기증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총책임을 맡게 된 그가 생각하는 과학대중화란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과학대중화란 이제껏 인식돼 온 것과 같이 대중이 전문가에 의해서 제공되는 과학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환경오염과 방사능 누출 및 최근의 생명윤리 문제 등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반인도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위해 생활이자 문화로서 과학을 일상속에서 구현해나가야 합니다.”
정말 타당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얘기에 동의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영국 버밍햄에는‘Bookstart 운동’이라는게 있습니다. 지방도서관과 보건소가 합동으로 전개하는 운동인데, 7-9개월의 아이를 둔 부모에게 아이의 건강증명서와 함께 책을 나눠주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려서부터 책과 가까이 지내는 습관과 상상력, 창조력을 길러주자는 취지죠. 이 운동을 본 순간 번쩍하고 어떤 생각이 제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바로‘Science Bookstart 운동’이죠. 과학대중화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과학자가 낙도나 오지의 어린이에게 과학도서를 한권씩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미는 있지만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면이 있었다. 책보내기 운동 등 그동안 과학대중화를 위해 펼쳐온 여러 노력과 별 구분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구체적 설명 속에서 과학대중화를 위해 그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장관이 되기 전부터‘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했습니다. 학교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 시민단체와 뜻을 모아 경기도 지역 학교도서관에 책을 보내는 운동이죠.‘Science Bookstart 운동’은 사실 이때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교육붕괴라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21세기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는 독서교육을 통해서만 이룰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 학생들 방과후에는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도서관을 학생들이 오고 싶은 곳, 와서 즐겁게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다양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으로 바꾸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그 결과가 속속 나타나고 있죠.”
그의 말에 따르면‘Science Bookstart 운동’은 여·야와 정파를 초월한 범국민적 참여운동이다. 과학기술자들이 과학대중화의 주체로서 사회적 책임의식을 자각할 수 있는 운동이며 과학기술자들이 운동의 주체란 점에서 자생적이고 자립적 운동이다.
요리사에서 핵물리학자까지
그의 얘기는 과학자에 대한 평소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실 저는 실험실에서 흰가운 입고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만이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쇄소의 인쇄공, 요리사, 전기기술자, 컴퓨터 수리공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과학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Science Bookstart 운동’은 이른바 과학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만의 행동은 아니죠. 온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도 치과의사이자 1급 전기기사를 비롯해 기술자격증을 6개나 소유한‘과학자’며,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전파하는 전도사가 돼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과학기술자들은 연구실에만 안주해 있거나 과학대중화에 뜻이 있어도 힘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아이를 과학자로 만들 생각을 하거나, 자신이 과학자가가 된 처지에 대해 자부심이나 소명의식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는 현재 사회단체, 과학저술가, 과학자, 과학잡지 등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과학대중화의 노력을 총결집하는 구심점 역할을 자청했다. 이론가나 탁상공론 행정가로서의 장관이 아니라 현장을 뛰어다니며 과학대중화의 물결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겠다는 그의 눈빛은 어느 누구보다 빛나보였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곳에서 시작
현대는 어딜가나 인터넷과 다양한 영상매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의 초등학생과 중·고생은 문자세대와는 달리 영상매체에 훨씬 익숙해져 있다. 그가 계획하는‘Science Bookstart 운동’은 사실 이런 면에서‘요즘 누가 책을 보나’하는 의구심이 든다. 김 장관은 이런 질문에 대해 노파심일뿐이라며 한마디로 일축한다.
“사실 요즘은 인터넷, TV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과학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지요.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매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의 모든 과학기술자들이 도서벽지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어린이에게 과학도서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과학대중화는 시작됩니다. 사실 어릴때 읽은 한권의 책은 나중까지 큰 영향을 미치죠. 우리의 어린이들이, 창조적 발상과 상상력이 풍부한 유년기에 좋은 과학책 한권을 읽는다면 이것이 바로 과학입국의 든든한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라는 말이 있다.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컴퓨터나 인터넷 등 정보전달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가 사용자의 사회적 위치·빈부·거주 지역 등에 의해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디지털 격차와 비슷한‘과학 격차’(science divide)가 도시와 지방 간에 생길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Science Bookstart 운동’으로 이같은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관 10개 짓는 것보다‘Science Bookstart 운동’이 과학대중화를 위해 훨씬 중요하다는 그의 과학대중화론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그의 얘기가 허황된 말이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말속에 학생운동, 노동운동, 임상의, 벤처사업가 등 다양한 경험을 거친 이만이 풍길수 있는 강력한 실천적 흡인력이 깃들여 있기 때문일까.
온가족 함께 볼 수 있는 과학동아
그의 얘기는 미국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나 영국의 뉴사이언티스트와 같은 과학잡지 얘기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동아 같이 중·고생에서 일반인·온가족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수준높은 과학잡지가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런 잡지들이 많이 생길 때 과학대중화는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책을 보고 일반인들이 무엇을 궁금해하고 바라는 가를 알 수 있고, 일반인들은 과학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또한‘Science Bookstart 운동’의 내용을 충실히 하기 위해선 과학대중잡지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지역구인 안산지역과 경기도 전역의 학교도서관에 과학동아를 비롯한 각종 과학도서를 보내고 있다.‘정치인이 되기 전이나 후나 얼굴에 변화가 없는 몇 안되는 사람’이라는 황지우 시인의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그의 말에는 왠지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큰 성과없이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장관직을 무난히 수행하기보다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굳은 다짐 때문이다.
과학이 아직 일반인에게 딱딱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국내 현실에서 이론가나 정책가의 느낌보다는 실천가의 인상을 풍기는 그의 말은 무척 반가울 뿐이다. 국회의원에서 장관으로, 그리고 마침내 과학대중화의 전도사로 실천 영역을 바꾼 김영환 장관. 초∙중∙고등학생들이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사회가 돼야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가 계획하고 있는‘Science Bookstart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