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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극한의 생존자 미생물 수색

남극 빙산부터 화성에서 온 운석까지

첫번째 미션.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 생명체를 수색하라.’지구 밖 우주에서 생명체를 찾으려면 먼저 지구 생명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지구에도 도저히 생명체가 살지 못할 것 같은 극한 환경 속에서 생명체가 발견된다.해저 열수구에서부터 남극 빙산에서까지 극한의 생존자 미생물을 만날 수 있다.


최근‘세균 화석’이 발견돼 과 학계를 들뜨게 하고 있는 화성 운석‘ALH84001’의 모습.


생명체란 무엇일까. 이것은 우주공간에서 생명체를 찾으려고 한다면 먼저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생명체가 어떤 조건에서 살 수 있는지를 안다면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곳을 수색하고 탐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제대로 아는 일이 중요하다.

지구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생명체가 발견된다. 도저히 생명체가 살지 못할 것 같은 극한 환경 속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햇빛도 닿지 않고 유해물질이 많은 고온과 고압의 해저 열수구, 저온의 남극 빙산, 염분이 포화된 염전 등에서 생명체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극한의 생존자 미생물이다.

외계에서 날아온 세균 화석

최근 들어 ‘ALH84001’이라고 불리는 감자 크기의 운석이 과학계를 들뜨게 하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 운석의 모체는 화성과 지구의 생성기인 약 45억년 전 화성에서 생성됐는데, 약 39억년 전 모체가 있던 근처에 소행성이 떨어질 때 충돌에 의한 충격 때문에 우주공간으로 퉁겨져 나갔다고 한다.

그 후 ‘ALH84001’은 우주공간을 떠돌다가 지구의 중력에 끌려서 약 1만3천년 전에 남극대륙에 떨어졌고, 한참 후인 1984년에야 지구인에 의해 발견됐다.

왜 이 1.9kg밖에 되지 않는 돌덩어리가 과학계의 주목을 받는 것일까. 이유는 운석의 내부에서 발견된 ‘세균 화석’ 때문이다. 이것은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데, 크기가 40-60nm(나노미터, 1nm=${10}^{-9}$m) 정도인 구형 자철광이 진주 목걸이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췄다. 먼 과거에 화성에서 이웃 행성 지구를 찾아온 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구에서 얻을 수 있다.

특이하게도 지구에 존재하는 세균 중 일부는 지구의 자기장을 인식하고 이를 이용해 자신의 방향을 잡는다. 이들을 ‘자기주성세균’으로 분류하는데, 세포 내에 ‘마그네토좀’이라 불리는 자철광의 결정을 가진다. 또한 이들 중 ‘마그네토스피릴럼 마그네토탁티쿰’(Magnetospirillum magnetotacticum)이라는 세균은 진주 목걸이 모양으로 사슬 형태를 한 마그네토좀을 가진다.

지난 2월 27일 미국 과학자들은 미국학술원회보를 통해 지구의 자기주성세균이 생성하는 자철광 결정과 ‘ALH84001’ 내부에서 발견된 자철광 결정의 화학적 성분과 물리학적 특성이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증거를 토대로 먼 과거에 화성에도 현재 지구의 미생물과 흡사한 생명체가 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현재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미생물 화석은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의 일종으로 약 36-37억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화성에서 온 ‘자기주성세균 화석’은 이보다 좀더 오래된 39억년 전의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지구는 수많은 생물이 번성할 수 있지만, 현재의 화성은 생명체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화성의 대기는 95%가 이산화탄소이며 극소량의 산소와 수증기를 포함한다. 표면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곳도 영하의 추운 날씨를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화성에는 생명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면 45억년 전 지구와 화성은 생성 직후 비슷한 조건을 가진 행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역시 생명체가 살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다. 초기의 화성과 지구에는 생명체에 필수 성분인 물이 있었지만 온도는 매우 높고 유해물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극한 조건에서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 역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 지구 생명체의 계통수^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리보솜 RNA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기초해 하나의 계통수로 표시하면, 고세균은 세균과 진핵생물군의 중간정도로 분류된다.


고대 지구에 살았을 법한 고세균

고대 지구와 비슷한 극한 환경으로 심해의 열수구를 손꼽을 수 있다. 열수구는 해저 화산 활동에 의해 광물이 녹은 고온의 물이 바다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지형인데, 그 모양이 뜨거운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과 같다. 열수구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 높은 수압, 중심이 3백80℃에 이르는 고온, 그리고 생명체에 해로운 여러가지 광물질 때문에 생물체가 살기 힘든 곳으로 보인다.

그러나 잠수정을 통해 태평양의 열수구를 직접 본 과학자들은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열수구 주변에는 마치 파라다이스처럼 다양한 생물 군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생물은 고무관 모양의 무척추동물, 새우와 같은 갑각류, 조개류 등이었는데, 이들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종류였다. 이와 함께 발견된 것이 바로 수많은 종류의 미생물이었다. 이들은 햇빛이 없는 이곳에서 주변의 모든 생물체에게 영양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1차 생산자의 역할을 한다(육지에서는 주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이같은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이곳의 미생물들은 주로 열수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황, 철, 망간 등을 산화해 에너지를 얻는다.

미국 일리노이대의 칼 워즈 교수가 열수구와 같은 고온에서 분리된 미생물을 연구하던 중에 지금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계통의 생명체를 발견했다. 뒤에 이를 고대 지구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다는 뜻에서 ‘고세균’(古細菌, Archaea, 옛날이라는 뜻)이라고 이름지었다. 고세균은 겉보기에 대장균과 같은 일반 세균과 구분하기 힘든 미생물이지만, 실제로는 세균 같은 하등 미생물과 동식물 같은 고등 진핵 생명체의 중간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독특한 부류의 생명체다(그림). 고세균은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여기기 쉬운 극한 환경에서 대부분 발견되는데, 이들은 가히 극한 환경의 군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까지 실험실에서 배양에 성공한 고온성 고세균 중에서 챔피언은 ‘파이롤로부스 퓨마리’(Pyrolobus fumarii)라는 고세균이다. 독일 레겐스베르크대의 스테터 교수팀은 대서양 한가운데 수면 밑 3천6백50m에 위치한 열수구의 벽면에서 이 미생물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배양에 성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세상 빛을 본 이 미생물은 놀랍게도 끓는 물보다 높은 1백13℃의 온도에서 활발히 자랄 수 있다. 뜨거운 온도를 좋아하는 이 미생물은 우리가 화상을 입을 정도의 온도인 90℃에서는 춥게 느낀 나머지 생장을 멈춘다. 대개의 생명체는 끓는 물에서 단백질이 변형돼 생장은 커녕 죽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계란이 끓는 물 속에서 어떻게 바뀌는지 생각해보라. 하지만 파이롤로부스 퓨마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압력솥과 비슷한 배양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견딜 수 있는 높은 온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열수구를 연구한 일본 연구팀에 의하면 4백℃에 가까운 열수구 중심에서도 수많은 종류의 고세균이 사는 것이 보고됐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이같은 극한 조건을 만들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고세균 배양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고세균으로부터 알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은, 다른 미생물들이 지구의 온도 변화에 맞춰 살아온 반면, 이들 고세균은 지구 생성 초기부터 지금까지 높은 온도에 적응해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지구의 고온 환경에서 번성했고 지금도 번창한다면, 생성 후 식어가던 고대의 화성에서 이와 비슷한 미생물이 살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점점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남극의 빙산 속에서도 다양한 미생물이 발견된다.


지하 2.8km에서도 생존

최근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그 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극한 환경에서 미생물을 찾는 일이 전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의 미생물학자들은 심해에 잠수정을 투입하고, 남극에서 빙산 속을 뒤지고 있다.

평균 1-2℃인 차가운 바닷물뿐만 아니라 남극의 빙산 속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발견된다. 미국 워싱턴대의 스탠리 교수팀이 남극 빙산 속에서 발견한 미생물 중 ‘폴라로모나스 바큐올라타’(Polaromonas vacuolata)라는 세균을 보자. 이 세균은 4℃에서 가장 활발하게 생장하며, 12℃가 넘으면 생장을 중단한다. 이 세균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4℃짜리 가정용 냉장고를 사용해야 한다.

한편 어두운 땅밑에서 생명의 자취를 찾기도 한다. 1987년 일단의 과학자들이 미국 남캐롤라이나주의 사바나강 주위를 굴착기를 이용해 파들어갔다. 무려 5백m를 파들어간 이들은 다른 극한 환경을 뒤지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세균을 발견했다. 지하로 내려감에 따라 압력이 높아지는데, 미세한 세균의 경우는 압력의 직접적인 영향보다 압력에 의해 생기는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과연 미생물이 살 수 있는 지표면 아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현재까지 이뤄진 연구에 의하면 미생물은 지표면 2.8km 아래에서도 발견됐으며, 영상 75℃의 고온 지표면 아래 토양에서도 발견됐다.

미생물은 이밖에도 강한 산성, 또는 알칼리성의 환경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놀랍게도 염분이 완전히 포화된 환경에서도 많은 미생물들이 서식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군산 지방의 염전에서 새로운 세균이 발견됐는데, 이 세균은 ‘노카르디옵시스 군산엔시스’(Nocardiopsis kunsanensis)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우주정거장 최초의 탑승자


우주정거장 최초의 탑승자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미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지구에 존재할까.

지난해 11월 미국 항공우주국의 과학자들에게 미생물의 놀라운 생명력을 일깨워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주공간에 건설중인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사람이 타기도 전에 먼저 그곳을 점령한 미생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들 미생물은 지구에서 우주정거장의 건설자재나 건설을 담당했던 우주인의 표면에 붙어 우주로 간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은 우주에서 생존을 위해 인간에겐 필수적인 우주복도 없이 최악의 조건인 우주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미생물이 인간보다 먼저 우주정거장을 차지했고, 아마도 인간이 떠나간 후에도 최후까지 남아 그곳을 지킬 것이다.

미생물이 다른 생명체와 비교해서 다양한 극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미생물의 다양한 유전방식에 있다. 미생물의 경우 동물이나 식물에 비해 매우 큰 유전적 변이를 보인다. 한 유전자(리보솜 RNA 유전자)를 예로 들면, 사람과 생쥐의 유전자 변이도가 0.7%밖에 안되는데 반해, 미생물의 일종인 세균의 경우에는 같은 종에 속하는 두 개체간의 변이도가 약 3%나 된다. 이렇게 높은 유전자 변이도가 미생물의 천부적인 환경 적응력과 직결된다.

​그렇다면 화성의 땅밑이나 목성 위성 유로파의 얼음표면 밑에서 미생물을 기대하는 일은 무리가아니다. 나아가 먼 외계에서도 적당한 조건만 주어지면 미생물은 존재할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구의 극한 지역에서 미생물을 찾아 연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미생물 사냥꾼들이 극한의 생존자 미생물을 찾기 위해 전세계의 땅과 바다를 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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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천종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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