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발견된 중앙투시 원근법은 원근법의 토대가 되는 수학의 원리를 잘 이용하고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 곧 시각 주체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고 공간적 좌표를 정했다. 나무 한그루를 보면서도‘내가’나무를 본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는데….
어린 요한은 예수가 제일 아끼던 제자였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늘 예수 옆자리를 차지하는 수염 없는 제자가 바로 요한이다. 그러나 예수가 처형된 다음, 요한은 곡절을 많이 겪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미움을 받아 로마의 성문 포르타 라티나에서 끓는 기름통에 던져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순교할 뻔했다. 그러나 덴 흉터 하나 없이 살아났고, 곧 파트모스로 추방됐다. 황제가 암살된 후 원로원 결정으로 복권돼서 에베소로 가는데, 거기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며 평생 살았다고 한다.
요한이 에베소에 들어섰을 때였다. 사람들이 웬 시체를 떠메고 오며 살려내라는 것이었다. 죽은 이를 보니 드루시아나였다. 요한과 알던 사이로, 그가 없을 동안 가난한 이웃에게 음식을 베풀고 곤경을 위로하며 올바르게 살던 여인이었다. 죽기 전에 요한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었다는 말을 듣고 요한은 마음이 움직였다. 기독 성자전 ‘황금전설’은 이 대목을 짤막하게 설명한다. “그러자 요한은 관을 내려놓게 하고 시체를 감았던 수의 자락을 풀라고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깨우십니다. 드루시아나,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먹을 것을 좀 준비해 주십시오” 드루시아나는 곧 일어났다…”
르네상스 조각가 도나텔로는 요한이 드루시아나를 죽음에서 깨우는 장면을 둥근 벽부조에 재현했다. 낮은 부조 복판에 검은 옷을 입고 반쯤 몸을 일으킨 사람이 드루시아나다. 요한은 왼쪽에 섰다.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기적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다른 사람들한테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걸음을 급히 재촉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배경 건축이다. 앞이 트여 있고, 반원통형 천장으로 덮은 이층 구조인데, 내부가 무척 넓어서 시장이나 법정으로 사용하던 바실리카 건축방식을 닮았다. 그런데 천장과 중앙 아래쪽 계단, 그리고 측면의 아치 회랑들이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한방향으로 나란히 줄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보는 이의 눈길도 자연스레 줄거리의 중심인 부조 한 복판, 드루시아나의 부활 장면으로 끌려간다. 조각가는 이런 시각 현상을 미리 염두에 두었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첫 원근법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발견된 중앙투시 원근법(central perspective)은 보는 이의 시점을 재현대상으로부터 분리했다.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 곧 시각 주체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고 공간적 좌표를 정했다. 나무 한그루를 보면서도 ‘내가’ 나무를 본다, 저 나무를 보는 주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미술 이론을 정리했던 알베르티는 이 문제를 창문 원근법 이론으로 정리했다.
보는 사람과 보이는 대상 사이에는 시각 피라미드가 형성되는데, 화가가 그리는 그림은 그 사이에 놓인 투명한 창문과 같다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면 도나텔로의 드루시아나 부조도 꼭 동그란 창문을 통해 창문 저쪽 광경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알베르티가 제안한 창틀을 만들어서 갖고 다니며 실제 작업을 할 때 긴요하게 사용했다. 마치 카메라 파인더에 피사체를 띄워 보듯이 그리려는 대상이나 공간을 향해 네모꼴로 짠 나무 창틀을 들이대는 식이었다. 창틀은 가로 세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굵고 가는 줄을 쳐서 촘촘한 모눈을 만들었다. 이런 모눈 창틀은 원근법 도구로 쓸만했다. 도나텔로가 만든 부조에서도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다들 체구나 키가 달라 보이는데, 알베르티의 모눈 창틀을 사용하면 이처럼 정해진 단위 공간 속에 비슷비슷한 크기의 소재가 여럿 등장할 때 비례가 어긋나지 않게 맞출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림이나 부조를 완성하는 방식을 ‘중앙투시 원근법’이라고 부른다.
중앙투시 원근법은 르네상스 첫 원근법이자, 원근법의 토대가 되는 수학의 원리를 잘 이용하고 있다. 먼저 용어의 뜻을 풀어보자. 르네상스 화가 뒤러의 글을 보면 원근법은 라틴어로 ‘투시하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적어도 그때는 그런 뜻으로 쓰였다. 투시법, 투시도법, 투시 원근법은 조금씩 듣는 맛이 다르지만, 현재는 별다른 구분 없이 한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투시’는 말뜻 그대로 ‘통해서 본다’라는 의미다. 회화나 부조 같은 평면 재현이란, ‘투명한 창문을 통해 투시했을 때, 창문 위에 떠오르는 그림’이 된다. 이때도 물론 앞서 나온 대로 보는 이의 시점, 곧 시각주체와 보이는 대상, 곧 재현 대상의 관계가 따로 떨어져서 대상화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그 다음은 ‘중앙’이다. ‘중앙’이란 표현은 공간 속의 평행선들이 중앙의 한점을 향해 모여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인데, 이를테면 나란히 달리는 철길이나 포플러 가로수가 마치 저 멀리서 한점으로 수렴돼 보이는 현상을 생각하면 쉽다. 따라서 ‘중앙’은 ‘중심점을 향해서 모이는’을 줄인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중심점은 무엇일까. 그건 보는 이의 시점이 화면과 마주치는 대응점을 말한다. 보는 이의 시점이 고정돼 있고 화면이 평면일 때 화면, 또는 화면의 수평 연장면 어느 한곳과 시선이 수직을 이루면서 만나는 지점이 중심점이다. 중심점을 다른 말로 원점, 무한 원점, 소실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중앙투시 원근법’을 의미에 맞춰 풀자면, ‘그림이나 부조를 투명한 창문이라고 보았을 때(투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공간 속의 평행선들이 보는 이의 시점에 대응하는 화면 위의 중심점으로 모여 보이는(중앙)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적 원리에서 출발
중앙투시 원근법은 수학적 원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람이 눈으로 실제 보고 느끼는 체감 공간과 달라 보이기도 한다. 왜 그럴까. 먼저 사람은 대개 두눈으로 보는데, 중앙투시 원근법은 하나의 시점, 곧 한눈으로 보는 광학 원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작품을 아주 멀리서 보면 무엇이 달라 보이는지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가까이 눈을 대고 볼 경우에는 두눈으로 보는 그림과 한눈으로 보는 그림이 전혀 다르게 보일 때도 있다. 심지어 그림이 두장처럼 겹쳐 보이는 수도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문제를 두고 적어도 작품 크기의 열곱쯤 뒤로 물러서서 보면 괜찮다고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기도 했다.
두번째는 투시 평면, 곧 화면이 반듯한 평면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화면이 안팎으로 휘거나 굴곡이 있으면 공간 속을 달리는 평행선들이 한점으로 모이지 못하고 제멋대로 춤을 추게 된다. 수학적 원리가 일관되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앙투시 원근법을 일점투시 원근법, 수학적 원근법, 소실선 원근법, 선형 원근법이라고도 부른다. 마지막 선형 원근법과 소실선 원근법은 같은 뜻으로, 평행선들이 중심점을 향해 정렬한다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또 공간 속의 평행선들은 ‘종선’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도나텔로는 ‘드루시아나의 부활 기적’을 다루면서 중심점을 원형부조의 배꼽에서 조금 위로 올려 잡았다. 그래서 드루시아나의 머리 위쪽, 일층과 이층이 만나는 테라스가 보는 이의 눈높이에 맞는다. 왜 그랬을까. 조금 위에서 내려보는 시점을 취하면 바실리카 안에 운집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읽을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도나텔로는 또 미리 중심점을 정해두고 건축부를 완성한 것 같다. 원형부조의 허리와 머리 부분은 평행선들이 모두 같은 중심점으로 수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래쪽 계단 좌우와 난간을 두른 널찍한 연단 좌우의 평행선들은 정확하게 한점으로 모이지 않는다. 아마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이라서 눈어림으로 줄을 친 모양이다.
단순명료한 구성 덕에 줄거리 쉽게 읽혀
도나텔로와 친하게 지냈던 기베르티도 비슷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 만나는 주제였다. 건축물의 생김새는 다르지만, 건축 배경을 한점을 향해 정렬시키고, 주인공들 머리 위에다 중심점을 두어서 인물 구성을 일목요연하게 짠 것, 사람들 무리를 둥글게 배치하고 부조 앞쪽 한복판에다 계단을 설치한 것 모두 도나텔로의 구성을 그대로 베꼈다.
기베르티 부조에서는 도나텔로보다 건축 소재가 훨씬 정교하고 등장인물의 머릿수도 많아졌다. 그러나 단순명료한 구성 덕에 줄거리가 쉽게 읽힌다. 기베르티의 청동부조는 중앙투시 원근법이 처음 발명된 다음 피렌체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실행됐나를 보여주는 좋은 보기다. 기베르티는 늙어서 쓴 자전 기록에서 이 작품에다 자신의 혼신을 쏟았노라고 고백했다. 미술사학자 크라우트하이머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 만나는 장면을 두고 그 당시 피렌체에서 있었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만남을 기념한 정치·종교적 사건의 기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 대표가 이곳을 방문한 시기가 1439년 7월 6일인데, 청동 부조를 구운 것은 두해 앞선 1437년이니까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두어 세대 뒤에 화가 라파엘로도 중앙투시 원근법을 실험했다. 이때는 이미 여러 다른 원근법들이 활발하게 실험되고 있었지만, 라파엘로는 전통적인 수학적 방식을 다시 끄집어냈다. 주제는 아테네 학당. 배경 건축은 브라만테가 막 짓고 있던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이번에는 중심점을 위로 띄우지 않고 두 주인공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 대신 건축 전면부를 계단으로 짜서 인물 구성을 위 아래로 나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일목요연한 느낌을 준다. 전기 작가 바사리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이 그림에서 플라톤은 화가 레오나르도의 초상으로, 맨 앞자리 복판에 비스듬한 탁자에 기댄 철학자는 미켈란젤로의 초상으로 그렸다고 한다. 존경하는 두 선배 화가에게 붓의 영광을 바친 셈이다. 그러나 원근법의 원리 속에 인물들을 쓸어 담아 깔끔한 구성을 짜는 방법은 도나텔로와 기베르티한테 배워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중앙 투시 원근법은 성서와 역사, 부조와 회화를 가리지 않고 무슨 주제, 무슨 형식이라도 보기 좋게 담아내는 미술의 새 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