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식사는 걸러도 영양제인 비타민제 한알은 필수’로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매스컴에서 비타민 C의 효과가 보도되자 약국의 비타민 C 제품이 모두 바닥날 정도로 많이 팔렸다고 한다. 감기에 걸렸거나 피부가 푸석푸석할 때는 어김없이 비타민 C를 권한다. 과연 비타민 C는 마냥 몸에 좋기만 한 것일까.
노벨상을 두번씩이나 수상한 미국의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1954년 화학상·1962년 평화상) 박사는 비타민 C의 열렬 옹호론자다. 비타민 C는 폴링 박사가 주창한‘비타민 C의 건강 요법’ 덕분에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문제는 그 비타민이 우리 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반드시 좋은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 비타민에 대해, 특히 비타민 C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자.
각기병 연구 과정에서 발견돼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오랫 동안 배를 타야 했던 항해사나 탐험가, 또는 군인들은 뼈가 약해져 쉽게 부스러지고 잇몸에서 피가 나는 질병에 시달렸다. 이 질병이 바로 괴혈병인데, 이로 인해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16세기 이전까지는 신선한 음식의 섭취 부족이 이 질병을 유발시킬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지만, 1747년에 이르러 레몬과 오렌지가 이 질병 예방에 필수적임을 알게 됐다.
1795년 영국 해군은 함대에 꼭 레몬을 공급하도록 했다. 비타민 C의 공급이 공식화된 것이다. 화학 분야가 점차 발달하게 되면서 과학자들은 레몬과 오렌지에 함유된 괴혈병 예방과 관련된 성분을 찾아내고자 노력했고, 1928년에 이르러 비로소 이 물질을 찾아내 비타민 C라고 이름지었다. 대부분의 비타민은 이런 식으로 발견됐다. 즉 어떤 영양소의 섭취가 부족해지면 건강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필요에 의해 그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비타민은 사람과 조류의 각기병(비타민 B1 부족으로 일어나는 영양실조 증세)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일본인에게 각기병의 발병률이 높은 이유가 고르지 못한 영양 섭취 때문이라는 것을 안 스즈키는 1911년 민간 요법에서 이용되던 쌀겨에서 각기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오리자닌’이라는 물질을 발견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풍크도 쌀겨에서 조류의 각기병에 효과가 있는 성분을 분리해 냈다. 이 물질의 분자에는 아민(amine, 질소를 함유하는 유기 물질)이 함유됐다고 해 비타민(vitamine)이라고 이름지었다. 라틴어의 비타(vita)는 생명을 의미하므로, 비타민은 ‘아민을 함유하고 있으면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질’이라는 뜻이다. 즉 비타민은 우리 신체의 세포 내에서 필수적인 생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량의 물질을 말한다. 그래서 비타민을 미세 영양소라고도 부르며, 오랜 기간 동안 이러한 미세 영양소가 부족할 때는 특정 질병을 유발하고, 다시 보충해줬을 때 회복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대부분의 비타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가장 진화된 동물인 인간과 가장 진화가 덜 된 무척추동물, 그리고 물고기는 체내에서 비타민 C를 만들지 못하는 반면 진화 역사상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양서류와 파충류는 체내에서 비타민 C를 합성할 수 있다. 인간은 일찍이 과일과 열매를 따먹으며 살다 보니 음식물로부터 온 비타민 C의 공급량이 충분해 자체 합성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음식이나 영양제 등에서 필요한 비타민을 보충해야만 한다.
감기 증상 완화에 도움
비타민 C는 매우 중요한 비타민으로 심하게 결핍될 경우 권태감, 쇠약감, 우울증, 식욕 감퇴 등을 유발한다. 또한 비타민 C는 상처 치유를 돕고 감염의 위험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철분의 흡수를 촉진하며 치아와 뼈를 형성하고 교원질(콜라겐, 뼈, 연골, 근육, 혈관벽을 구성하는 주요 단백질) 생산을 돕는다.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환이 괴혈병인데, 이것은 비타민 C가 완전히 없어진지 60-90일 이내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 몸은 1천5백mg 정도의 비타민 C를 체내에서 유지하려 한다. 만일 저장량이 감소하면 나른함과 피로감 등이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며, 체내 비타민 C의 저장량이 3백50mg 이하로 감소했을 경우 괴혈병으로 진행될 수 있다. 교원질의 합성, 신경전달 물질의 합성, 철분의 흡수, 상처 회복 등에 문제를 초래하고 심하게 결핍되면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사실 비타민 C의 효능은 의학자들 사이에서도 끝없는 논쟁거리이자 연구대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라이너스 폴링 박사의 주장이다. 그의 저서 ‘비타민 C와 감기’에 따르면, 하루에 1-5g 정도의 비타민 C를 섭취할 경우 감기의 발생 빈도를 줄일 수 있다.
의학계에서도 적절량의 비타민을 복용하면 비록 감기를 치료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저항성을 강화시키고, 경미한 항히스타민(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는 몸 안의 히스타민을 없애는 것) 작용이 있어 감기의 증상을 완화시켜준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폴링 박사는 비타민 C를 소량 복용하면 단순한 영양성분이 되지만, 일반적인 권장량의 수십배나 수백배를 대량으로 섭취할 경우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강력한 약리작용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의 학설에 따르면 비타민 C는 인터페론(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의 세포에서 생성되는 단백질), 면역 글로블린, 부신피질 호르몬 등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입에 대항하는 저항 물질의 합성을 촉진시키는 작용이 있어 암을 비롯한 감기 바이러스, 간염 바이러스 등에 유효하다.
또한 최근 발표되는 연구결과 중에는 비타민 C와 고혈압, 뇌졸중(뇌의 혈액 순환 장애로 급격한 의식 장애와 운동 마비를 일으키는 증상) 등 심혈관 질환에 대한 예방 효과를 다룬 내용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생화학과 교수이자 라이너스 폴링 연구소 이사인 발츠 프레이 박사는 “하루에 5백mg 이상의 비타민 C를 섭취하면 뇌졸중과 심장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타민 C가 뇌졸중과 심장질환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역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까지 발표된 몇몇 연구들에서 비타민 C의 섭취와 뇌졸중, 심장 질환의 위험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어, 향후 발표될 여러 연구결과와 종합해 의학계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대되는 부분이다.
위장암 발생률 높다는 의미
이처럼 비타민 C가 신체 저항력을 키워주고 피부를 보호함은 물론 암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다 보니 비타민 C가 일반인들에게 ‘만병 통치약’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위장관 계통의 암 발생 비율이 높기 때문에 비타민 C가 암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더욱 귀가 솔깃해진다.
비타민 C가 위장관에서 암의 발생을 감소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비타민 C와 E를 적게 섭취하는 나라에서 위장관 암의 발생률이 높다는 사실이 관찰됐기 때문에 퍼져나간 것이다. 서구에서는 훈제된 육류가 많이 소비된다. 즉 서구 사람들은 발암 물질로 생각되는 니트로소아민이라는 질산염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다량의 비타민 C와 E가 이 질산염이 발암성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연구들에 대해 학계에서 인정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암의 위험을 줄이려면 비타민 C와 E를 많이 섭취하는 것보다는 태우거나 훈제한 음식을 통한 질산염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정 섭취해도 좋다?
비타민은 그 구조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흔히 비타민 A, B, C, D, E, K 등으로 나누며, 비타민 B군도 B1, B2, B3, B4 등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들을 다시 수용성 비타민과 지용성 비타민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타민 A, D, E, K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수용성이다.
지용성 비타민은 지방에 용해되며 음식 안의 지질과 함께 장에서 흡수되는데, 수용성 비타민보다 더 오래 몸 속에 저장된다. 예를 들어 간은 비타민 A를 1년 동안이나 저장한다.
그런데 비타민 A가 여드름 치료제라고 해서 과량 섭취하면 피부가 비늘화되고 간과 비장의 부피가 커지며, 구토나 설사와 같은 중독증이 생길 수 있다. 또 비타민 D는 신장 결석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수용성 비타민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섭취된 것이 쉽게 배설되므로 심각한 독성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음식물로부터 계속 섭취해야만 한다.
비타민 C도 수용성이라 우리 몸에서 배출이 쉬워 다량으로 섭취해도 부작용을 거의 유발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비타민 C를 다량으로 섭취했을 경우 배뇨시 작열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보고하고 있다. 또한 폴링 박사가 주장한 것처럼 1-10g까지 보통 권장량의 1백배 이상 복용했을 때는 몇몇 사람에게서는 미식거림, 복통과 함께 설사를 유발할 수 있으며, 결핍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비타민 B12의 흡수를 방해할 수도 있다. 또한 비타민 C를 다량 복용했을 때 신장 결석 형성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다량의 비타민 C를 섭취해 왔다면 이에 대한 의존성이 생길 것이며, 나중에는 적은 양으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많으면 결핍될 위험
비타민 C는 하루에 얼마나 섭취하는 것이 적당할까. 과거 1일 권장량 설정은 비타민 C 결핍의 예방에 그 초점이 맞춰졌으며, 이를 위해 매일 30-40mg의 비타민 C를 섭취하도록 권장했다. 근래에 비타민 C의 기능이 점차 부각되면서 현재 1일 권장량은 50-60mg으로 상향조정됐다. 일부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비타민 C를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타민 C는 2백50mg 이상 섭취하면 흡수율이 감소하기 시작해 5백mg이 넘어가면 대부분 소변으로 배설되고 흡수율도 급격히 떨어진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하루 권장량을 60mg에서 2백mg까지 증량시킬 것을 제안했고, 미국 국립보건원 암연구소(NCI)도 이에 동의했다.
우리나라의 국민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평균 비타민 C 섭취량은 80-90mg 정도다. 그러나 조사 대상 가구의 22%는 40mg 이하로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 7차 개정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 권장량은 남녀 구분없이 하루 70mg이지만, 비타민 C의 중요한 기능을 고려해 볼 때 결핍을 예방하는 정도는 결코 바람직한 섭취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권장량의 2-3배 수준까지 늘리는 것도 고려해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비타민 C는 과일과 야채에 많이 함유돼 있다. 특히 감귤, 레몬, 수박, 오이, 딸기, 완두콩, 강남콩, 양상추, 고추, 무에 풍부하다. 사실 귤을 하루에 두개만 먹어도 현재의 하루 권장량 정도는 쉽게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비타민 결핍의 가능성이 커서 권장량보다는 많이 비타민을 섭취해야 한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경우, 신체적 외상이 있을 때, 임산부나 수유부, 병약자 등의 경우에는 비타민 C가 모자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비타민 C 약제나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으로 보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경우 비타민 C의 결핍 가능성이 큰 이유는 몸에서 더 많은 비타민 C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담배 하나를 피우면 대략 비타민의 25mg 정도를 파괴시키며, 이것은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대략 30-50% 정도의 비타민 C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또한 신체에 외상을 입었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동안에도 비타민 C가 많이 소실된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인지, 즉 비타민 C가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시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동물 실험에서 살펴보면 외부에서 스트레스가 가해질 때 뇌하수체 전엽을 자극해 부신 피질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이때 비타민 C와 같은 영양소를 다량 소모시킨다.
한편 조리, 가공, 저장 중 손실되기 쉬운 비타민 C를 효과적으로 섭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까. 우선 과일이나 야채는 되도록 조리하지 않고 섭취해야 하며, 데치거나 찜 등 물을 사용해 조리하는 경우에는 가능한 소량의 물을 사용한다. 또한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는 되도록 짧은 시간 동안 조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선한 주스는 냉장고에 보관하되 2일 이상 보관치 않도록 하며, 일단 자른 과일과 야채는 물과 닿지 않게 하고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비타민 C 자체로만 따져보면 약제로 복용하든지 천연 비타민의 형태로 섭취하든지 효과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과일과 야채의 형태로 섭취했을 경우 비타민 C뿐만 아니라 각종 무기질과 기타 비타민, 그리고 섬유소를 함께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타민 C가 아무리 건강에 좋다하더라도 무조건 다량을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천연 비타민의 형태로 충분한 양을 섭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약제로 복용한다면 상표에 표시돼 있는 비타민과 미네랄의 함량을 잘 읽어보고, 비타민 C뿐만 아니라 전 비타민의 종류가 1일 권장량에 맞는 비타민을 선택하도록 한다. 또한 대용량 비타민은 복용 전에 자신의 주치의와 함께 상의해보고 복용하는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