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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본격적인 유전자 시대 개막 알린 영광의 주역들 : 4 다국적팀과 셀레라의 팽팽한 '신경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제각기 논문 발표한 이유

 


인간게놈프로젝트 완성을 발표하 는 자리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두 거물. 왼쪽이 다국적팀 대 표인 콜린스이고, 오른쪽이 셀레 라의 대표 벤터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을 두고 치열한 ‘속도전’을 벌이던 라이벌인 다국적팀과 셀레라가 한자리에 모여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월 12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팀과 미국 생명공학회사 셀레라는 워싱턴과 런던, 파리 등에서 일제히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마침내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됐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런데 이들은 연구결과를 각각 다른 과학지에 게재했다. 다국적팀은 영국의 ‘네이처’ 15일자에, 셀레라는 미국의 ‘사이언스’ 16일자에 연구논문을 기고했다.

아무리 연구주체가 다르다 해도 동일한 주제에 대한 연구결과가 같은 시기에 다른 과학지에 게재되는 일은 드물다. 현재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게놈에 대한 후속 연구를 수행할 때 과연 어떤 논문을 ‘원전’으로 삼아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과학전문지의 양대산맥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다국적팀과 셀레라는 기자회견에서 인간게놈지도의 99%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 자체로 분명 대단한 업적이지만 1백% 완성되지 않은 연구결과가 과학전문지에 게재됐다는 점은 다소 의아스럽다. 한편에서는 남아있는 1% 게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만큼 생명의 신비를 푸는 일이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10년 후를 기다려서라도 1백% 완성된 완벽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결과물이 과학지에 실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국적팀과 셀레라는 왜 이렇듯 서둘러 경쟁하듯이 연구결과를 발표했을까.

클린턴이 중재한 화해의 자리

다국적팀은 원래 2005년 게놈지도를 완성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98년 미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당초 예정보다 2년 앞당긴 2003년에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단지 과학기술 수준이 그만큼 발달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미국 정부가 서두른 이유는 생명공학회사 셀레라가 “미국 정부를 주축으로 한 다국적팀보다 앞서 3년 안에 끝내겠다”고 큰소리쳤기 때문이다. 정확히 올해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15년 계획으로 30억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고 있던 미국 정부로서는 무척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더욱이 1999년 셀레라가 “당초 예정보다 1년 빠른 2000년 중반에 완료하겠다”고 밝히자 미국 정부는 더욱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국적팀과 셀레라의 경쟁은 단지 ‘자존심 대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다국적팀은 프로젝트가 완료되는대로 그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유전자에 관한 정보는 그 누구의 소유물이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레라의 입장은 다르다. 셀레라는 일반적인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하되 상세한 정보는 제약회사와 대학 연구기관들에 돈을 받고 팔 계획이다. 자신들이 발견한 유전자에 특허권을 얻음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2000년 2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두달 이내에 내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발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바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이었다. 그 발언의 결과는 6월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다국적팀의 책임자 콜린스 박사와 셀레라 대표 벤터 박사가 ‘사이좋게’ 악수하며 인간게놈프로젝트 초안을 발표하는 장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당시 세상에 공개된 정보는 전체 게놈의 90% 정도에 불과한 27억개의 염기서열이었다.

학문적인 앙숙이었던 다국적팀과 셀레라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었을까.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끝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셀레라측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대외적으로 미국과 민주당의 이미지를 고양시킨다는 목적에서 볼 때 프로젝트의 완료 주체가 정부든 벤처사든 크게 중요치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당시 다국적팀과 셀레라는 최종 논문을 동시에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즉 셀레라는 사이언스에 논문을 보내기로 했으며, 다국적팀은 핵심 논문을 사이언스에, 그리고 더 축약된 논문들은 네이처에 보내기로 합의했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다는 말은 누구나 자유롭게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셀레라는 민간기업의 ‘본분’을 망각하고 자신의 연구결과를 공개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2000년 12월 셀레라는 사이언스와 조건부 게놈정보 공개협정을 맺었다. 당시까지 사이언스는 게놈에 대한 논문을 게재하는 동시에 자세한 DNA 염기서열을 미국 국립생명공학정보센터의 유전자은행(GenBank)에 등록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셀레라는 사이언스에 인간게놈에 대한 논문을 게재하면서 자세한 게놈정보는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셀레라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경우 1백만개 염기까지는 연구 목적으로 데이터를 자유롭게 이용토록 했으나, 그 이상의 연구 목적 데이터 이용과 기업의 데이터 이용은 비영리 목적이라는 각서를 제출토록 했다. 순수 학문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한 연구에 대해서는 정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기업의 경우 상업적 목적으로 자료를 받을 때 비싼 정보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셀레라와 사이언스의 협정에 대해 다국적팀은 무척 흥분했다. 하지만 별다른 저지 방법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연구논문을 사이언스의 경쟁지인 네이처에만 보내기로 결정하는 일이 최선이었다. 지난 2월 15일과 16일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논문발표는 이런 ‘신경전’의 분위기 아래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2월 12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다국적팀과 셀레라는 발표시간을 서로 길게 갖겠다고 실랑이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유전자 특허 새로운 과제로 부각

문제는 이들의 자존심 싸움과는 별도로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연구논문은 과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겨줬다는 점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대실박사는 “두 논문을 제대로 비교해 평가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양 논문을 비교해보면 염기서열 데이터의 0.14%가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전체 염기를 30억개로 볼 때 4백20만개의 염기서열이 다르다는 의미다. 이대실박사는 “얼핏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부위의 염기가 전체의 1.1%에 집약돼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다국적팀과 셀레라가 1백%가 아닌 99%의 데이터를 학술지에 발표한 것은 성급했다”고 말했다. 어찌보면 이번 발표내용은 ‘완성본’이라기보다 2000년 작성된 90% 유전자지도와 다름없는 ‘초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한편 이번 발표는 인간 유전자에 대한 특허를 급속도로 확산시킬 것이라는 또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셀레라처럼 유료의 형태든 다국적팀처럼 무상의 형태든 인간게놈의 99% 정보가 이제 공식적으로 세상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첨단 생명공학회사들이 서둘러 인간의 유전자에 특허권을 얻을 때를 대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가 세계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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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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