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을 연구하면서 개인간 국적간에 그 차이가 의외로 크지 않은 데 놀랐다. 얼굴의 생김새가 각각 가진 유전자 또는 유전자 조합의 반영이라면 거꾸로 얼굴을 통해 그 사람 가족 사회의 유전적 특질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15년쯤 전이 일이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단체로 관광을 와서 거리 호텔 고궁 백화점마다 이들로 붐빌 때가 있었다.
내가 백화점의 상품진열장 옆을 지나려면 백화점 점원들이 대개 일본말로 나를 부르곤 했다. 나를 일본인으로 보는 것이었다. 나는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고, 일본제 옷을 입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점원들이 나를 일본인으로 본 것은 내 얼굴모습을 주요한 단서로 삼았을 것이라 짐작했다.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어서 내 얼굴의 어느 부분이 백화점 점원들로 하여금 일본인의 얼굴로 보이게 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뇌리에 남아 있게 됐다.
나를 일본인으로 보는 한국인, 중국인으로 보는 일본인
그 이듬해인가, 일본의 여러 도시를 들를 기회가 생겼다. 그때마다 일본의 백화점 점원에게 내 얼굴을 가리키면서 "내가 어느 나라 사람 같으냐"고 물어봤다. 대개의 점원들은 내가 중국사람 같다고 대답했다.
왜 하나뿐인 내 얼굴에 대해 같은 한국인중에 일본인 얼굴로 보는 사람이 있고, 일본인은 왜 중국인 얼굴로 보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 전 일본 국영방송사에서 출판한 문고판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읽었다.
'일본인들은 독일인 영국인 등에 대해 지적(知的)이다,신사적이다,친절하다,매너가 좋다는 등의 인상을 가지고 좋게 보고 있으며, 흑인들에 대해서는 무식하다, 추하다, 성적이다 등의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일본인들이 외국인에 대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얻은 판단이 아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선입견 내지 편견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판단의 자료로 삼지 않는 현명한 국민이 되자는 의도로 쓰여진 책이지만, 이 책의 내용중에서 특히 언짢았던 내용은 일본의 한민족관(韓民族觀)이었다. 일본인들은 세계의 여러 민족중 조선민족(일본인들은 한민족 전체를 말할 때는 조선인, 남한국적의 사람을 말할 때는 한국인, 북한국적의 사람을 이를 때는 북조선인이라고 한다)을 흑인 다음으로 싫어하는데, 그 이유로는 거칠고 교활하고 무례해서라는 것이었다.
거칠고 교활하고 무례한 사람이 환영받을 만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일본인들의 한민족에 대한 구체적 체험이 없이 형성된 선입견 편견이라면 우리의 어떠한 면이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선입견 편견을 형성하게 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얼굴인상에 대해 솔직히 말해 달라고 하면 표정이 딱딱하다든가, 얼굴이 평면적이라든가, 눈 코 입이 작다든가 등 형태상의 특징을 말하면서 '나이브 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얼굴은 DNA의 광고판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우리 한국민족, 특히 국제교류가 빈번한 국적상의 한국인은 총체적으로 외국인의 눈에 우리가 학교시절 국사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그렇게 좋은 인상으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식으로 산다는 배짱을 갖고 사는 태도야 용기는 있는 일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국제화시대이다 보니 싫든좋든 간에 우리 혼자서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이미 한국인은 국제사회에 노출돼 있으며, 또 태평양 시대를 맞아 더욱 더 주목받게 됐으니 외국인들의 이런 한국인관을 그저 우리와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고 마음 편히 있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올해는 '한국방문의 해'라지 않는가.
외국인의 대(對)한국인관이 이렇게 된 이유가 선입견과 편견이라면 그 선입견과 편견의 형성에 간여하는 요소중에 한국인의 얼굴모습의 특징도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 우리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라면 한국인을 그렇게 만드는, 그 생김새를 결정하는 요인 즉,유전인자는 어디서부터 흘러온 것일까? 실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국의 미술문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고, 또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한 미술학도로서 우리 한민족이 가진 본래의 미의식(美意識)을 찾아내기 위해 그동안 한국인 국민학생, 대학생, 일본인 대학생, 일본의 아이누족, 태국의 태국계 대학생과 중국계 대학생, 태국 치앙마이의 고산족, 중국 신강성의 위구르인 등의 얼굴에 대해 백수십인에서 때로는 수백명에 이르기까지 조사해 왔다.
왜 하필 얼굴을 통해 알아 내고자 하는가. 얼굴은 그 사람의 체표에 드러난 DNA의 광고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의 외형은 머리 속의 뇌나 뱃속의 장기, 또 체구성세포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10만을 헤아리는 유전자 중에 외부의 형태를 결정짓는 유전자의 수는 극히 적다고 알려져 있다.
예컨대 사람의 얼굴을 보면 눈썹은 색깔이 진하거나 흐리고, 눈동자는 크거나 작고, 쌍꺼풀은 있거나 없는 등 그 형태 결정요소가 의외로 단순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단순한 요소에 의해 구성됐지만, 개개인의 얼굴이 사람마다 서로 달라 보이는 것은 이 얼마되지 않는 형태구성 요소 간에 일어날 수학적 조합의 가능성이 훨씬 많기 때문이고, 그 조합에 의해 연출돼 나타난 얼굴의 형태차이를 우리의 눈이 예민하게 분석할 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을 연구하면서 개인간 국적간에 의외로 그 차이가 크지 않은 데 놀라게 되고, 아마도 개들은 사람의 얼굴 식별능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얼굴의 생김새가 각각 가진 유전자, 또는 유전자조합의 반영이라면 거꾸로 얼굴을 통해 그 사람 가족 사회의 유전적 특질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이라는 유전자 풀(pool)에서 저마다 골라 갖게 된 유전자의 조합으로 형성돼 있는 셈인데,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인상이 거칠고 촌스럽고 무례하고 교활하게 보인다면, 한국인 얼굴을 구성하는 유전자 조합상태가 그렇다는 말이다. 또 이것이 그들의 말대로 다분히 선입견이라면 얼굴에서 이렇게 부정적인 선입견을 형성케 하는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인 얼굴의 어떤 요소 즉, 어떤 유전자가 한국인의 얼굴을 부정적 인상으로 보이게 할까? 이것을 정량적으로 밝혀낼 수는 없을까?
얼굴 사진을 이용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접근을 시도했다. 설문에 이용한 사진은 지난 91년 5월 한국 여자대학 2학년생 60명과 일본의 동경소재 여대 2학년생 60명으로 직접 촬영해 수집한 것이다. 이들의 얼굴을 정면, 좌측면, 45도 좌측면에서 동시 촬영, 석 장의 사진을 한 장의 환등기용 슬라이드로 만들어 비추면서 미인형인지, 친근감이 있는지, 수수한지, 야한지, 청초미가 있는지 등의 5단계로 인상을 평정토록 하는 심리학적 실험방법을 택했다.
이들의 얼굴에 대해 70여 항목을 자로 측정하고 이 값들의 상대비를 50여항목에 걸쳐서 조사했다. 역시 같은 연령층의 한국과 일본의 대학교 2학년생들의 교차분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얼굴을 보고 느끼는 소감을 표현하는 한국말은 50여가지에 달했다. 그러나 본조사에서는 인상이 좋다는 등의 12가지와 그 반대의 개념으로 확인되는 12가지로 나누어 언어로 표현되는 한국인의 인상을 우선 미모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렇게 하면 한국인 얼굴의 어떤 요소가 부정적 인상으로 보이게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인형의 얼굴과 수수한 얼굴의 형태소
실제 한국인의 얼굴들 중에서 고른,이만하면 미인형이라고 응답한 얼굴(사진1)과 그저 수수한 얼굴이라고 응답한 얼굴(사진2), 그리고 별로 호감이 가지 않은 형이라고 응답한 얼굴들의 컴퓨터 합성 평균상(사진3)을 비교해 보면 얼굴 각부를 이루는 이목구비의 모양과 그것들 사이에 수치상의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표).
머리끝에서 턱끝까지 얼굴의 세로 길이(전두고)를 보면(사진 1·2·3)이 각각 2백35.44㎜, 2백34.29㎜, 2백32.89㎜ 정도로 점차 작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얼굴의 길이(전안고)는 각각 1백92.78㎜, 1백95.98㎜, 1백91.77㎜가 된다(표①).이를 세로로 크게 세 부분 즉, 이마의 맨위 발제선으로부터 미간까지의 상안, 미간에서부터 코밑까지의 중안, 코밑에서 턱끝까지의 하안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크기와 비를 보면 미인형은 61.58㎜, 66.09㎜, 65.11㎜로서 중안을 기준으로 보면 상·중·하안의 비가 93.18:100:98.52가 된다.
호감이 덜 간다고 응답한 형은 각각 60.35㎜, 64.69㎜, 66.73㎜로서 상·중·하안의 비인 93.29:100:103.15와는 서로 차이가 있다. 또 이를 얼굴의 가로폭과의 비로 산출해보면 미인형 1:1.36, 수수한 형 1:1.40, 호감이 덜가는 형 1:1.34로서 비록 근소하지만 서로 수치상의 차이가 보인다.
이를 같은 방법으로 얻은 일본인의 얼굴사진들(사진4·5·6)과 비교해보면 역시 한국인과 같은 경향의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얼굴의 가로·세로비가 일본의 미인형에서는 1:1.31, 수수한 형에서는 1:1.32, 호감이 가지 않는 형에서는 1:1.29로서, 얼굴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한국인보다 짧지만 세 타입의 비율의 경향은 한국인의 것과는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그림1).
이런 사실은 현대 한국·일본의 대학생들은 상안이 크고 중안이 길고 하안이 짧은 형의 얼굴을 미인형으로 보고 있으나, 하안이 큰 얼굴에 대해서는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세 타입 간의 형태구성에 나타나는 수량적 차이는 얼굴의 다른 부위에서도 찾기 어렵지 않다. 이마에 해당하는 상안부를 보더라도 이마의 가로폭의 넓이(全額幅)에서 미인형이라고 응답한 형에서는 호감이 가지 않는 형의 얼굴보다 큰 수치를 보이고 있고, 이마 앞부분의 넓이인 전두최소폭(前頭最小幅)의 값도 미인형에서 큰 측정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이를 일본인의 값과 비교해보면 한층 큰 값을 나타내고 있다(표②).
이것은 곧, 일본인의 얼굴이 한국인이 미인형으로 보고 있는 얼굴 형태 구성상의 요건을 더 강화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것은 또한 일본인들의 얼굴형태를 결정짓는 유전자에 그런 요소가 더 강하게 포함돼 있다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그림2).
한편 눈 주위의 측정값을 보면 동공과 동공의 거리, 눈의 길이, 그리고 눈동자의 직경에서 대개 미인형이 큰 값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경향을 일본인이 더욱 뚜렷하게 가지고 있음도 나타난다(표③).
그러나 코 턱 광대뼈 등은 넓은 편이 오히려 부정적 인상과 관계있는 것 같다. 코의 넓이인 비폭은 미인형에서 좁고, 호감이 덜가는 형에서 넓으며, 일본인은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는 달리 한국인보다 비폭이 넓지 않다.
광대뼈간의 거리인 권골간폭이나 하안부의 최대폭인 하악각폭도 미인형은 좁은 수치를, 수수한 형·호감이 덜가는 형에서는 점점 큰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그림 3, 표④).
얼굴의 인상형성에는 측면의 모습도 크게 간여한다. 측면에서 볼 때 얼굴의 중안부가 앞쪽으로 돌출한 감이 있는 얼굴과 중앙이 오목해 직선적으로 보이는 얼굴이 있다. 이런 형태 특징을 정량화하려면 귓구멍에서부터 얼굴 정중선의 윤곽선에 걸리는 중요한 곡각점의 위치, 이를테면 미간 코허리 코끝 턱 등에 방사성의 투영적 직선을 가상적으로 그어 그 길이를 측정해 비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삼을 만한 곳은 귓구멍에서 코 바로 밑까지의 투영적 직선거리(鼻下点放射徑)로서 호감이 덜가는 형에서 매우 작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그 차이는 한국인에서 한층 두드러진다(그림 4, 표⑤).
한국인은 미소로 호감가는 인상을
이상의 사실을 요약하면, 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개 얼굴이 갸름하게 길되, 중안이 길고 볼록하며, 하안이 짧은 편인 얼굴로서 이마는 좌우로 넓고, 눈이 될수록 동그랗고 큰 데다 눈동자 역시 크고 입도 약간 큰 편이되 코는 좁고, 광대뼈는 작으며, 턱이 좁은 형을 좋게 보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이마가 좁고, 중안이 짧고 오목하며, 눈이 작고, 코가 넓고, 입이 작고, 턱이 큰 얼굴에 대해서 크게 호감을 가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런 결과를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 나타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의 하나는 미인으로 보고 있는 얼굴형태구성의 유전자를 일본인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별로 호감있게 보지 않는 얼굴의 형태소(形態素)를 우리 한국인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미술작품상에 나타난 인상표현과 관련시켜 보면 동양의 인물묘사에 나타난 특징보다 서양의 것에 더 유사한 점이 많다. 이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미감이 서양 미의식에 치우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미의식이 치우친 결과 급기야는 우리 자신의 유전적 특질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지 않게 된 것을 뜻한다.
요컨대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인상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은 '한국인의 유전자 발현의 광고판'인 얼굴 즉, 이마가 좁고, 광대뼈가 크고, 눈 코 입이 작고, 턱이 큰 얼굴형이 우호적이지 않은 선입견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턱이 크니까 거칠게, 눈과 눈동자가 작으니까 교활하게, 얼굴이 오목하니까 촌스럽게, 이를 종합해서 다시 말해 무례하게 보이는 것이다.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오늘 당장 우리의 유전자를 고쳐 놓을 수도, 우리의 미의식을 되돌려 놓을 수도, 외국인들의 미의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외국인들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안면 미의식을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가장 손쉽고 경제적인 방법이라면 호감이 덜가는 한국인의 유난히 아래로 처져 있는 입술끝을 치켜 올리는 길-미소짓기-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