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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미시세계에서 우주까지 설명하는 만물박사

양자론은 물질의 현상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과학이론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이 미친 영향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철학,논리학,수학,컴퓨터과학,경제학 등 많은 학문들이 양자론의 양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하지만 절대적 진리의 지위를 부여받은 양자론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아무리 인기있는 유행도 시간이 가면 좀더 세련되고 다양해진 새로운 유행으로 대체되듯이 과학이론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20세기 과학의 핵심이라고 일컬어지는 양자론은 ‘원자’라는 약 1억분의 1cm 정도의 작은 물체의 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체계였다. 그러나 실험과학의 발달은 원자보다 훨씬 작은 ‘소립자’라는 물질의 존재를 발견하게 됐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은 양자장론이라는 수학적으로 난해한 이론으로 발전한다. 또한 원자들로 이루어진 분자나 더 큰 물체에서도 양자론적 효과가 중요한 역할을 함에 따라 양자이론은 물리학뿐 아니라 화학이나 생물학 등 인접 자연과학에도 중요한 이론적 수단이 됐다. 한편 양자론에 의해서 반도체, 초전도체 등 현대 물질문명이 이룩됐으며 앞으로 더 발달될 과학문명도 양자론을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과학 등에 응용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어떤 과학이론도 절대적 진리일 수는 없다. 끝없는 실험과 관찰과정을 거치면서 예외가 발견될 수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더 새로운 이론이 탄생한다. 그렇다면 과연 양자론에도 한계가 있을까. 있다면 그 한계는 무엇일까. 이것을 간단히 살펴보자.

원자보다 작은 곳도 적용

엄밀히 말한다면 양자론은 원자보다 매우 작은 크기에서 우주전체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단지 양자론적 효과가 얼마나 눈에 띄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일상생활에서 양자론적 신기한 현상들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 효과가 너무 작고 다른 소음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양자론적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는 원자나 원자 속의 무한히 작은 영역이다. 원자는 모든 물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서 사람, 건물, 자동차 등 모든 물체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원자핵은 양의 전하를, 전자들은 음의 전하를 띠고 있어 서로 잡아당기고 있다. 만약 불확실성의 원리가 없었다면 전자들은 수조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에 핵으로 빨려 들어가서 원자들은 붕괴됐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삼라만상도 전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다. 전자가 핵에 빨려들어간다면 이것은 정지하는 것인데 이는 속도를 정확히 결정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원리에 어긋난다. 다시 말해 불확실성 원리에 의해 전자는 정지할 수도, 한 곳(핵)에 위치할 수도 없으므로 에너지를 완전히 잃을 수 없다. 결국 모든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양자론 덕분이다.

원자핵은 원자보다도 1천배나 작은 크기로서 더 작은 핵들로 분열하거나 다른 핵과 합쳐져 더 큰 핵을 만드는 핵융합을 하는데 이때 생기는 작은 질량의 변화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진다(아인슈타인의 유명한 E=mc² 공식 때문이다). 이 에너지가 핵폭탄이나 핵발전소의 원천이다. 만약 핵들이 비양자론적(고전물리학적) 법칙을 따랐다면 질량의 변화가 생길 수 없다. 당구공 10개의 질량을 재거나, 4개와 6개로 갈라서 각각 잰 다음 더하나 전체질량이 같음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양자론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고 질량의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인류는 태양빛과 같은 엄청난 에너지원을 얻게 된 것이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라는 입자들로 이루어진다. 양성자는 양의 전하를 띠고 있고 중성자는 전하가 없다. 매우 작은 크기의 핵 안에 여러개의 양성자들이 모여있으면 서로 강하게 밀치므로 핵은 금방 쪼개지고 원자들은 붕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공간에서 새로운 입자가 탄생해 서로 밀치는 양성자들 사이를 오가면서 더 강한 힘으로 꽉 붙잡아주기 때문이다. 이런 빈 공간에서 물체가 탄생하는 현상은 양자역학을 더 발달시킨 양자장론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양성자 속의 쿼크라는 소립자들까지 훌륭하게 설명됐다.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거대한 가속기를 통해 쿼크 등 소립자들의 성질을 알아본 결과 양자론이 인간이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까지 매우 잘 맞음을 알게 됐다.


초전도체가 가능한 이유는 양자론에 의해 모든 원자들이 하나의 운동상태를 갖게 되므로 저항이나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확률적 특성 때문에 가능한 초전도체와 반도체

그렇다면 양자론은 미시세계에서만 중요한 것일까. 양자론이 탄생한 후 곧 과학자들은 원자들로 이루어진 작은 분자들도 양자론으로 기술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로부터 양자화학이라는 분야가 발전한다. 양자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의 변화는 불연속적으로 일어나는데 이를 양자도약(quantum jump)이라고 한다. DNA와 같은 유전자분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 분자가 안정한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주위에서 얻는 열에너지 등이 다음 에너지값으로 도약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놈 등 거대 분자가 안정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양자론 덕분인 것이다. 만약 X선과 같은 강한 에너지를 받게 되면 유전자 분자는 다른 에너지값을 갖게 되고 이는 그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돌연변이가 생기는 이유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아무 저항없이 영구히 흐를 수 있는 물체로서 21세기에 유용해질 자기부상열차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물질이다. 초전도체가 가능한 이유는 무수히 많은 원자들이 ‘보제-아인슈타인 응축’(Bose-Einstein Condensation)이라는 현상을 통해 동일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저항이나 마찰이 생기는 이유는 전자나 원자들이 서로 제각각 움직이다 보니 서로 부딪히기 때문인데 양자론에 의해 모든 원자들이 하나의 운동상태를 갖게 되므로 저항이나 마찰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대문명을 가능하게 한 반도체 역시 에너지값들이 불연속적이라는 양자론적 특징 때문에 가능하다. 모든 물체 안에는 매우 많은 수의 전자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움직임이 전류다. 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면 전류가 잘 흐르는 도체가 되고 전자들이 원자들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면 부도체이다. 양자론적으로 보면 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들이 연속적이면 도체이고, 불연속적이어서 열에너지를 받아도 더 높은 에너지로 도약할 수 없으면 부도체가 된다. 반도체는 에너지값이 불연속적이지만 그 차이가 열에너지 정도여서 전자들 중 일부분이 도약해 움직일 수 있는 물질을 말한다. 따라서 반도체로 이루어진 모든 전자제품은 열에너지가 작아지는 매우 추운 곳으로 가져가면 부도체가 되어 작동을 멈추게 된다. 휴대폰과 같은 매일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가 사실은 양자론의 이상한 성질 덕분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대과학문명은 점점 더 작은 물체를 이용하는 추세에 있다. 머지않아 원자 10개 정도로 이루어진 소자들이 실생활에 이용될 예정이다. 이런 나노기술은 양자론적 효과가 매우 큰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며 이는 21세기 과학문명의 특징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끝까지 양자역학에 의심을 품었지만, 양자이론은 현재까지 최고의 물리학이론으로 대접받고 있다.


해커의 공격 막는 양자암호학

양자론은 비단 과학뿐 아니라 이와는 전혀 동떨어진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양자론의 확률적 특성은 물위에 떠있는 꽃가루의 움직임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작위적인 힘에 의해 생긴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바탕을 둔 이론이 최근 일기예보나 주식의 변동과 같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참 아니면 거짓’에 바탕을 둔 논리학은 ‘참과 거짓의 중첩’을 허용하는 양자논리학으로 발전하게 됐고, 수학에서도 양자기하학, 양자군이론 등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최근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 암호학은 해커들로부터 정보를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학문인데 기존에는 대부분 인수분해 방법 (예를 들어 333,333,331를 인수분해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17과 19,607,843를 곱하여 333,333,331이 됨을 확인하기는 매우 쉬움을 이용하는 방법)은 컴퓨터의 발달로 곧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되는 주요 대안이 양자암호학이다. 이는 양자론의 중첩성질을 이용해 어떤 해커도 정보를 중간에서 빼가거나 암호를 깰 수 없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반도체를 이용한 기존의 컴퓨터를 원자나 나노미터(1나노미터=${10}^{-9}$m) 크기의 소자로 대체하면 매우 많은 프로그램을 진정한 의미에서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이미 간단한 논리회로에 대한 실험은 성공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양자론의 한계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양자론은 이전의 어떤 과학이론보다도 정확하고 모든 실험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한 이론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양자론은 추호도 그 한계를 의심할 여지가 없는 완벽한 이론이다. 인류의 과학기술은 매우 작은 소립자의 크기에서 우주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양자론에 어긋나는 단 한가지 실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계는 없는가. 이론물리학자들은 양자론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비록 인간이 접근할 수는 없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극미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현재의 양자론은 이런 엄청나게 작은 영역에서는 이론적인 문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자론의 불확실성 원리에 의해 아주 작은 크기는 매우 큰 에너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매우 작은 크기를 살펴보고자 하면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앞에서 에너지로부터 입자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으므로 이 영역에서는 매우 많은 입자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입자들은 각각 또 다른 입자들을 만들게 돼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지고 이는 흔히 에너지나 질량 등을 무한대로 만든다. 과학자들은 ‘재규격화’(renormalization)라는 수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중력도 양자화해야 하는 크기(이를 플랑크길이라고 하는데 ${10}^{-24}$m정도이다)에 이르면 도저히 이들 무한대를 없앨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꿈이라고 하던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는 대통일이론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21세기의 과학은 물리학,화학,공학,의학 등으로 구분된 기존의 분류는 점차 무의미해지고 있다.그 대신 이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양자이론의 영향이 부각되면서 '양자과학'이라는 큰 테두리가 형성되고 있다.더 나아가 양자론은 철학,경제학 등 인문사회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런 경향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양자론의 중첩성질을 이용해 어떤 해커도 정보를 중간에서 빼가거나 암호를 깰 수 없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양자암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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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안창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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