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별자리점이 보편화된 요즘이다.이에 토대가 되는 별자리는 3천년 전 처음 정해졌던 황도 12궁.하지만 현재는 별자리 위치가 많이 달라졌는데….가을밤 황도 별자리가 들려주는 얘기에 귀기울여보자.
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넘겨보면 별자리운세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날짜에 해당하는 태양의 위치를 황도 12궁에 적용해서 자신의 별자리를 결정한 후 점성술로 점을 치는 것이다. 황도 12궁은 천구에서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 상에 위치한 12개 별자리를 말한다. 이들 별자리는 12개밖에 없는데 인류의 1/12이 모두 같은 운명이라는 것일까. 그렇게 잘 맞을 것 같지 않은데도 많은 사람들이 꽤 열심히 보는 것 같다.
가을밤하늘에서도 황도 12궁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때늦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맑은 밤하늘에서 황도 별자리를 찾아보자.
서양의 황도 12궁 vs 동양의 28수
태양, 달, 행성들은 언제나 같은 길, 즉 12개의 별자리 앞을 지나간다. 이 12개의 별자리가 황도 12궁이다. 황도 12궁은 황도대를 30°폭으로 12등분해 춘분점을 기점으로 양자리에서 시작해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궁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의 순으로 배열돼 있다. 춘분점은 황도와 하늘의 적도가 교차하는 점으로 적경 0h, 적위 0°가 되는 천구 좌표의 기준점이다. 이날에는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고 봄이 시작됨을 의미하며 이후 태양은 하늘의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올라온다. 중국 역법에서는 동지가 가장 중시돼 달력계산의 기준이었으나, 서양에서는 춘분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춘분점을 기준으로 별자리 순서를 정하고 있다. 황도 12궁은 순전히 서양에서 전래돼온 것으로, 중국에는 없었던 것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하늘의 북극과 달이 별자리를 정하는 기준이었다.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인 27.3217일 동안 하루씩 달이 이동해가는 천구상의 위치를 기준으로 28수가 정해져 사용됐다.
그런데 황도는 왜 12부분으로 나누었을까? 이것은 황도 상을 태양이 한바퀴 도는 동안 보름달이 12번 나타나기 때문이다. 1년이 12개월인 것도 같은 이유다. 또 태양이 낮에만 보이는데 그뒤의 별자리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태양은 황도 상의 어딘가에 위치하지만 그 방향에 있는 별자리는 밝은 대낮의 하늘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주 드물게 개기일식이 일어난다면 낮에도 태양 주위의 별자리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보통 달을 통해 간접적으로 태양의 위치를 파악해서 황도 상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보름달일 때, 특히 월식이 일어날 때 태양은 달과 반대 방향으로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천구에서 달이 움직이는 길인 백도는 황도와 약 5°기울어져 있지만 대체로 황도와 비슷하다.
해왕성 발견된 염소자리
이번 가을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황도 별자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제일 먼저 초저녁 남서쪽 하늘에서 역삼각형 모양을 한 염소자리를 볼 수 있다. 황도 12궁의 10번째 별자리인 염소자리는 3등성 2개와 4등성 10여개로 이루어지는데, 주위에 별이 드물기 때문에 가을 남서쪽하늘에서 의외로 잘 보인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1082년 음력 7월 16일 밤에 지은 적벽부 속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구가 나온다. “少焉, 月出於東山之上, 徘徊於斗牛之間”(소언, 원출어동산지상, 배회어두우지간)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응백의 번역에 따르면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서성이더라”이다. 하지만 시구에 나오는 ‘두우’(斗牛)의 실제 뜻은 이응백의 번역과는 다른데, 두(斗)는 28수 가운데 하나로 남두육성(궁수자리의 일부)을 가리키는 두(斗)수, 우(牛)는 역삼각형의 서쪽 끝에 있는 염소자리 알파와 베타별 지역에 해당하는 우(牛)수를 뜻한다. 따라서 위의 번역과 달리 소동파는 달이 황도에 걸쳐있는 두수(남두육성)와 우수 사이를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했던 것이다. 사실 중국에서 건너온 견우직녀 이야기에 등장하는 견우성은 보통 알고 있는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아니고, 별자리 우수(牛宿)나 그속에서 가장 밝은 염소자리 베타별을 나타낸다.
한편 염소자리 역삼각형의 동쪽 끝에 있는 델타별 부근은 1846년 9월 23일 독일 베를린 천문대 요한 갈레와 조수 하인리히 다레스트가 해왕성을 발견한 역사적인 장소다. 태양뿐만 아니라 태양계의 행성도 황도를 따라 움직이므로 행성은 황도를 이루는 별자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해왕성이 발견되기 전 태양계의 최외곽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천왕성의 궤도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섭동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843년 영국 캠브리지대 수학과 학생이던 22살의 존 애덤스가 천왕성 밖에 새로운 행성이 있다는 가정을 세우고 제 8행성의 질량과 궤도를 계산해냈다. 그는 1845년 9월에 염소자리 델타별 부근에 미지의 행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묵살됐으나, 1년 뒤 프랑스의 르베리에가 같은 계산 결과를 얻자 베를린 천문대에 연락해서 해왕성이 발견됐다. 이번 가을에도 염소자리에서 천왕성과 해왕성을 볼 수 있다.
또한 ‘남회귀선’(Tropic of Capricorn: 염소자리의 회귀선)에는 염소자리의 명칭이 남아있다. 3천년 전에는 태양이 가장 낮게 뜨는 날인 동짓날에 태양이 염소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짓날이 지나면 태양은 고도가 높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태양이 당시보다 한달 늦은 1월 20일-2월 17일 사이에 염소자리를 통과하고, 동지점도 서쪽으로 이동해 궁수자리 M8과 M20 사이에 있다.
우주 평화시대 열 물병자리
염소자리를 지난 황도는 동쪽에 있는 물병자리로 이어진다. 물병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페가수스 머리 아래에 Y자 모양으로 모인 작은 별무리를 찾아야 한다. 별자리는 Y자의 서쪽과 남쪽으로 3등성들이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놓여져 지평선 위에 빛나는 남쪽물고기자리 1등성 포말하우트까지 이어진다.
공자가 지은 서경(書經) 요전(堯傳)에는 ‘허(虛)성은 추분때의 기준별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허성은 지금의 물병자리 베타별과 조랑말자리 알파별로 이루어진 별자리인데 고대부터 추분을 정하는 기준으로 중시돼왔다. 물병자리도 태양이 2월 17일부터 3월 12일 사이에 통과하는 황도 별자리인데, 점성가들은 춘분점이 물병자리에 오면 예술과 과학이 함께 번성하고 인간성과 과학이 조화를 이루어 ‘우주 평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략 6백년 뒤인 서기 2620년 태양이 봄의 첫날 물병자리에 들어가면 물병자리 시대가 시작된다. 정말로 평화의 세상이 올까.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이는 세차운동 때문에 춘분점은 매년 약 50″씩, 1백년에 1.4°씩 서쪽으로 이동해서 2만6천년이 지나면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 세차운동의 영향으로 서기 2620년에는 춘분점이 물병자리에 위치한다. 1만2천년 뒤에 춘분점은 다시 황소자리로 옮겨지는데, 이때는 직녀성이 북극을 나타내는 별이 되고, 오리온자리가 여름철 남쪽 밤하늘을 차지하며 전갈자리는 겨울 별자리가 된다.
황도 제1궁은 양자리인가 물고기자리인가
물병자리를 지난 태양은 안드로메다자리 남쪽에서 황도 12궁의 마지막 별자리인 물고기자리와 첫째 별자리인 양자리로 올라온다. 물고기자리는 가장 밝은 알파별도 4등급에 지나지 않아 달빛이 없고 맑은 날에만 겨우 보이는데, 페가수스자리 사각형을 ‘ㄴ’자 형태로 감싸고 있다. 물고기자리 동쪽에 이웃한 양자리는 무엇보다도 황도 12궁의 첫째 별자리로 유명하다. 3천년 전 황도대가 처음 정해질 때 춘분점이 양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분점’은 ‘양자리의 원점’(the first point of Aries)을 의미한다. 점성가들은 아직도 양자리를 12궁의 첫번째 별자리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27년 경 이래 춘분점은 지금의 물고기자리 영역으로 옮겨와 있어 실제로는 물고기자리를 황도 제1궁으로 봐야 한다. 현재 춘분점은 오각형 모양의 서쪽 물고기 꼬리에 해당하는 오메가별 아래에 있다. 태양이 매년 3월 21일 춘분날 이 점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제 양자리는 태양이 머무는 황도의 마지막 별자리로 물러난 셈이다.
기원전 2세기에는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별자리와 점성가들이 말하는 황도12궁이 서로 일치했다.하지만 점성술사들이 세차운동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춘분점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져왔기 때문에,지금은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황도 12궁이 점성가들이 말하는 것과 큰 차이가 생겨버렸다.그 결과 현대인들은 엉뚱한 날짜와 시각으로 사주를 본 별점의 점괘를 읽고 있는 중이다.따라서 자신의 운세를 보고 낙담하거나 너무 기뻐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