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러시아와 공동으로 러시아 북극 연안,바렌츠해와 카라해 탐사가 8월 1일부터 26일까지 이뤄졌다.지난해 국내 최초로 북극해 탐사를 일궈낸 한국해양연구소의 강성호 박사가 여기에 참여했다.그가 보낸 생생한 두번째 북극 탐사기를 들어보자.
국내 최초로 러시아와의 북극해 공동연구를 위해 2000년 7월 27일 오전 11시 30분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 9시간 걸려 도착한 우리 일행은 모스크바대학 근처의 한 호텔에서 첫날을 보냈다. 다음날 모스크바의 명소인 붉은광장, 크레믈린궁 등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치안 상태도 양호하고 언론으로만 듣던 러시아의 모습보다 훨씬 활기차보였다. 북극 탐사선이 정박해있는 알크한젤스크로 가기 위해 잠깐 들른 모스크바는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약 1천km 떨어진 알크한젤스크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맞는 이가 있었다. 그는 우리와 공동연구를 떠날 러시아 극지연구소의 유리 구도쉬니코브 박사였다. 이곳 기온은 15℃, 하늘은 청명했다.
8월 1일부터 26일간 러시아 바렌츠해와 카라해 북극지역을 탐사하기 위해 우리는 러시아 기상청 소속 1천t 가량의 쇄빙 연구선(R/V Evan Petrov)이 정박해있는 러시아 해군기지로 출발했다. 해군기지에 도착한 일행은 간단하게 짐을 풀고 세관과 짐 통관이 이뤄질 때까지 이 지역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북위 65도에서 만난 모기
알크한젤스크에서 남쪽으로 1시간 가량 버스타고 러시아 북부지방의 전통가옥 전시장을 방문했다.전형적인 러시아 목조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 모기가 엄청나게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숲속 늪지대 때문이었다.일행은 주위 구경보다 모기의 살인적인 공격을 막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써야만 했다.남극의 대한민국 세종기지(남위 63도)보다 극지에 더 가까이 위치한 이곳(북위 약 65도)에서 모기에게 봉변을 당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배로 돌아온 일행은 한국에서 보낸 연구 장비를 배에 장착하고 배 갑판 아래쪽 방을 배정 받았다. 배는 깨끗했으며 시설도 잘 정리돼 있었다. 드디어 러시아 북극탐사를 위해 배는 8월 1일 오후 9시 10분에 출항했다.
러시아 북극해 주변은 세계2차대전 후 냉전기간 동안 옛소련의 군사적인 이유로 전혀 개방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87년 10월 옛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무르만스크 선언을 통한 북극권 개방으로 인해 조금씩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제 공동연구가 잘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러시아 당국이 외국 연구원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이 지역 연구 문헌은 1990년대 초에 작성됐고, 최근에 와서야 연구 논문이 나오고 있다.
바닷물 온도가 높은 이유
8월 4일 아침 10시 와이트해에서 북위 67도 정도에 위치한 북극환을 지나는 지점에서 첫번째 채수(수온 8.5℃, 염분 29.2ppt=2.92%)를 했다. 위도에 비해 수온이 아주 높은 편이었다(대서양쪽 북극 이외 지역은 0-2℃, 남극은 -1℃). 서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무르만스크 연안 해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계속 동쪽 페초라 방향으로 이동했다. 8월 5일 4-9시 사이 와이트해를 빠져 나와 바렌츠해로 들어선 배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형성된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인해 많이 흔들렸다. 12시 북위 68도 동경 48도를 지났다.
수온은 여전히 섭씨 9℃, 염분은 32.3ppt으로 비교적 높은 온도를 나타냈다.
8월 6일 오후 4시 10분경 콜구예브 섬 남쪽에 이르렀다. 수심은 10m 이내. 바다의 수온은 9.6℃, 염분은 32.3ppt. 여전히 무르만스크 해류의 영향으로 높은 수온을 보였다. 이제야 왜 이 지역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 바다는 강물의 영향이 크게 미치지 않는 지역이나 서해안처럼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 폭풍우에 의해 저층수와 표층수의 혼합이 일어났거나 조류에 의한 해류의 수직적 순환에 의한 것으로 추측된다.
식물플랑크톤 채집을 위해 그물망을 해수에 담그는 순간 빠른 조류에 의해 멀리 흘러갔다. 2분 정도 해수에 담겨 있던 플랑크톤 그물망을 끌어올린 순간 그 속에 가득 찬 뻘로 인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큰 힘이 필요했다. 엄청난 양의 저층 부유물이 존재하는 듯하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저층 서식 규조류, 해양 규조류, 와편모조류, 해빙 주변 규조류 등의 규조류가 대부분이며 종 조성으로 보아 여러 환경의 규조류들이 함께 서식하는 것으로 생각됐다. 저서(저층 서식) 생물 조사와 퇴적물 채집을 위해 채집기를 이용해 저층 표층퇴적물을 채집했다. 표층퇴적물은 주로 모래, 자갈로 이뤄져있으며, 여러가지 저서 생물들이 존재했다.
지구 탄화수소화합물의 1/4 내장
8월 10일 계속 동북쪽으로 향했다. 외해로 나와서 그런지 배가 심하게 움직였다. 이럴 때 누워있으면 잠만 계속 오고 멀미를 더 심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3시간 간격으로 계속 채수하기로 결정했다. 동북쪽으로 가면서 수온이 7.6℃로 떨어지더니 다시 9.9℃로 올라갔다. 북위 70도에 가까워오는데 아직도 수온이 10℃에 가까운 것을 보면 고온의 무르만스크 연안 해류와 주변 페초라강으로부터의 고온 저염의 담수 유입이 이곳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8월 11일 7시 연안 생태계팀이 육상상륙을 위해 연안으로 접근했다. 수심이 5m 이내로 아주 얕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육상팀이 상륙하는 곳은 볼쉐제멜스카야 툰드라지역으로 석유가 시추되는 지역이었다. 저 멀리서 석유 저장 탱크와 시추탑이 보였다. 동행하던 유리 박사는 2년 후에 육상 툰드라 지역의 석유 시추가 이곳 해양까지 연장 개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이곳 북극해 지역은 생태적으로 두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첫번째는 이 지역에 형성돼 있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의 발견으로 인한 개발압력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극해 주변 대륙붕에 형성돼 있는 탄화수소화합물은 1조m3의 천연가스와 10억t 가량의 석유를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양은 전세계 탄화수소화합물의 1/4 가량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나다.
두번째는 이 지역에 잠재적인 생태계 파괴 요인으로 핵물질 오염이다. 특히 카라해 주변 해역은 핵실험과 핵폐기물의 방출로 인해 해양생태계가 심각하게 영향받고 있다. 이 지역에 잠재돼 있는 자원의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위해 우선 이 지역 환경의 생·지·화학적(生·地·化學的) 기초 연구가 우선적으로 수행돼야만 할 것이다.
수산자원의 보고
8월 12일 오늘은 바다 상태가 심상치 않다. 힘들게 해양관측 및 조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러시아 연구원들의 얼굴이 다들 우울해 보인다. 유리 박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배 주변에 러시아 핵잠수함인 쿠르스크호가 침몰했다는 것이었다. 빨리 이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는 바렌츠해에서의 연구를 마친 상태라서 다음 연구 지역인 카라해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이 핵잠수함의 원자로가 파열되면 방사능 오염물질이 해류를 타고 전 북극 지역으로 확산해 전체 북극 해양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유리 박사가 말했다.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8월 15일 페초라강 주변 해양에서 저층 지구물리, 지질과 해양 조사가 실시됐다. 앞으로 건설될 석유 시추탑과 파이프 설치를 위한 저층 환경 조사작업이었다. 특히 겨울 동안 해빙이나 빙하로 인해 저층 환경이 얼마나 얼음에 긁혔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겨울이 되면 바다가 얼어서 해빙이 바닥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저층에 파이프를 얼마나 깊게 묻어야 될지를 이번 조사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었다.
오후 6시경 첫번째 조사를 마치고 배는 카라해쪽 연안으로 이동했다. 수온은 4.3℃. 카라해의 찬 해류가 페초라 동쪽 연안으로 유입됐거나 저층의 찬물이 솟아오른 것으로 생각된다. 인공위성을 통해 카라해 해빙 상태를 보면 북쪽 카라해에는 아직도 해빙이 분포하고 있었다. 저녁 10시경 저서 어류 조사를 위해 저층망 트롤을 내렸다. 약 30분 가량 내려진 어망에는 넙치, 광어, 왕게, 불가사리 등의 치어들로 가득 찼다. 이 지역은 이들 어류의 산란 및 치어의 서식장소로서 수산자원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곳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에는 시베리아 연안에 형성돼 있는 강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담수와 빙하, 그리고 해빙이 녹아 형성되는 저염분 표층수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극지의 겨울에 해빙이 형성될 때 얼음 속의 염분이 물로 빠져나오는데, 이 때문에 얼음 주위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높아지면 밀도가 커져서 심층수로 가라앉게 된다. 이 극지의 심층수는 적도까지 흘러 다시 표층수로 올라오고, 이 표층수가 흘러 극지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극지의 표층수 염분이 감소하게 되면 극지역의 심층수 형성이 줄어들어 심층수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전세계 기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북극해 주변의 시베리아강과 주변 연근해 지역은 대륙과 해양 사이에 형성돼 있다. 이곳 생지화학적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식물플랑크톤의 서식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저층 퇴적물에 쌓여 있는 식물플랑크톤의 종 조성을 알아내서 과거 환경을 유추한다. 만약 강에 서식하는 담수 종의 비율이 해양성 식물플랑크톤의 비율보다 높으면 그 당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담수 유입이 증가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질학적 연구는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재 서식하고 있는 식물플랑크톤의 서식환경과 실제 이들의 종 조성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북극해 식물플랑크톤들이 지구 환경변화를 위한 생물학적 지표종으로 이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내고자 한다. 아직 실험실에서의 추후 조사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배 위에서 조사된 이곳 식물플랑크톤은 분명 남극의 종들과 달랐으며 강으로부터 유입된 종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됐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기대된다.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는 동토층
드디어 카라해 연구를 마친 8월 16일 새벽, 아주 깊게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러시아 해양학자 샤샤였다. 1시간 후 베이카쉬 섬마을을 방문할거라고 전했다. 북극의 툰드라 지역에 발자국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다들 들뜬 마음으로 서둘러서 짐을 꾸렸다. 한국해양연구소의 정경호 박사와 양영선 씨도 선잠에서 일어나 카메라, 캠코더 등을 챙기고 갑판으로 모였다.
10여명이 탈 수 있는 철선을 타고 약 10분쯤 달려서 드디어 연안의 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동네 아이들이 창문을 통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가 보자 고개를 감춘다. 다시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가 반갑게 손을 흔들자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손을 흔든다.
이곳 툰드라 지역은 나무는 없고 온통 자그마한 꽃, 풀, 이끼, 지의류 등으로 덮여있는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강한 바람과 추위를 견뎌내고 자란 생명체라 그런지 더욱 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빗물에 적셔 있는 진한 초록색 풀이 내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여러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바닷가로 발길을 옮겼다. 바닷가는 새롭게 침식돼 드러난 퇴적층이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듣던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의 효과를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현재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역의 동토층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녹아 내리고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동토층이 녹아 연안이 침식되고 있는 것이다. 동토층에는 많은 양의 유기물, 메탄이 함유돼 있어서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의 주요 유입원이 된다. 그래서인지 마굿간에서 느낄 수 있는 냄새가 났다.
현재 북극권 주변 국가들은 북극에 대한 자국의 영토 및 관할권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특히 시베리아 개발로 인한 항공 및 선박운항 통로개발 및 확대에 따른 권한 증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더군다나 북극해 주변 해역(무르만스크해,베링해,북태평양)은 전세계 주요 수산 어장의 하나이며,석유와 가스 자원의 엄청난 매장지이기도 하다.북극권에서 우리나라도 효과적인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경험을 갖춘 북극권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원탐사를 내세우는 진출보다는 남극에서와 같이 과학연구수행을 표방하는 선행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