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름달이 뜨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모든 것을 풍요롭게만 느낀다.하지만 서양인들은 보름달이 나타나는 날에는 괜히 불안에 떤다.이상한 일이나 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하고.왜 서양인들은 보름달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다음에 열거한 공포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무엇일까.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늑대로 변하는 날. 뱀파이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냥감을 찾아나서는 밤. 드라큘라가 살고 있는 고성의 밤하늘 배경에 걸려있는 것.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항상 나타나는 천체가 있다. 바로 달이다. 그것도 보름달. 서양의 보름달은 악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소복입은 어여쁜 처자가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로 변하는 밤에도 보름달이 뜰까. 그렇지 않다. 구미호가 출현하는 밤하늘에는 그믐달이 낮게 걸리거나 달이 없다. 서양의 늑대와 달리 구미호는 보름달이 뜨면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다. 가끔 전설의 고향이나 우리나라 공포영화를 보면 그 배경으로 보름달이 떠있다. 이것은 스토리작가나 프로그램연출담당자가 서양의 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버린 탓이다.
왜 서양에서는 보름달만 뜨면 늑대인간, 드라큘라, 뱀파이어가 그 본색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에서는 악의 상징
달은 영어로 moon이다.달의 형용사는 lunar가 대표적이다.하지만 lunatic이라는 형용사도 달에서 파생됐다.그 뜻은 무엇일까.라틴어어원으로 luna는 '달'을 의미하고 lunatic은 '달의 영향을 받은'이라는 단순한 뜻에서 나아가 '미친,정신이상의'라는 뜻을 가진다.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lunacy라는 명사는 '간헐성 정신병, (백치를 제외한)정신이상,광기'를 뜻한다.
이렇듯 서양에서는 옛부터 사람이 달의 영향을 받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달에서 나오는 영기(靈氣)를 받아 미치는 일이라고 여겼다. 또 간헐성 정신병도 달이 차고 기우는 모양에 따라 병의 강도가 변한다고 믿었다. 특히 보름달이 되면 발작이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보름달의 영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보름달이 사람 안에 있는 사악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전설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믿음이다. 보름달이 나타나면 사람은 더 포악해지며 자살하는 사람의 수가 더 늘어나고 큰 재앙이 발생하거나 사건사고가 더 많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병원응급실과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빠진다고 서양인들은 흔히 생각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보름달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수정능력이 커져 출생률이 증가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고대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성은 달에 따라 수태능력이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아이를 갖기 위해 으슥한 들판에서 보름달빛을 받으며 남녀가 방사하는 일도 있었다. 교육을 많이 받은 현대 서양인들 사이에도 보름달에 신생아들이 많이 태어난다는 믿음은 널리 퍼져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보름달이 떠오른 날 대추나무를 시집장가보내는 의례를 행하면 대추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믿었다. 물론 양반집의 대를 잇기 위해 씨받이로 들어간 여인이 씨를 받는 우리영화의 한장면에서도 보름달이 배경으로 흐른다. 달은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요, 생산, 생명 창조 등의 상징으로 여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돼왔다.
심지어 미국의 일부 주식투자가들은 달의 위상에 따라 주식투자를 한다. 이들을 ‘문 트레이더’(moon trader)라고 하는데,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예를 들면 보름달 근처에서 황제주식을 샀다가 그믐달 무렵 팔 기회를 노리는 식이다. 주식투자를 하다가 반토막이 난 우리나라 개미들에게 솔깃한 얘기처럼 들린다.
살인사건 늘고 우울증 증가한다?
과연 달, 특히 보름달의 영향은 어디까지일까. 서양에는 보름달이 인간의 정신세계나 사건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리학이나 신경정신과적인 연구사례가 많다. 이들 연구항목은 주로 인간의 폭력성과 범죄, 인간의 불안심리, 우울증 및 정신이상, 자살, 응급실 전화와 방문횟수 및 입원횟수, 마약사용과 약물과용, 사고 등이다.
이중에 보름달의 영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예를 들어 1976년 미국 심리학 저널에는 1년 동안 일어났던 3만4천3백18건의 범죄를 조사한 결과 보름달이 나타날 때 평소보다 더 자주 범죄가 발생했다고 보고됐다. 이어서 1978년 미국 임상정신의학 저널에는 5년 동안 발생한 1만1천6백13건의 가중폭행죄(살인죄 포함)에 대한 연구 결과 폭행사건이 보름달 시기에 더 많이 나타났다고 발표됐다. 또한 1983년 미국 임상독물학 저널에는 1년 동안 독극물 센터에 연락한 2만2천79건의 전화통화를 살펴본 결과 자살이나 약물남용이 아닌 음독의 경우 보름달 시기에 더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어떤 연구에서는 보름달이 아닌 다른 시기에 달의 영향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1977년에는 4년 동안 일어났던 9백28건의 자살사건에 대한 연구 결과 특히 보름달 시기에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초승달 무렵에 자살사건이 증가했다고 한다. 같은해 11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1만8천4백95명의 환자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 정신병으로 인한 입원횟수는 초승달 시기에 가장 많았고 오히려 보름달 시기에 가장 적었다. 또 1978년 미국 임상정신의학 저널에는 13년 동안 2만5천5백68회의 정신과 응급실 방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보고됐는데 방문횟수가 상현달 근처에 증가하고 초승달이나 보름달의 경우 오히려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위에 언급한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보름달을 포함한 달은 인간의 정신세계나 사건사고와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달과 관련성이 나타나는 위의 사례들에도 문제가 있다.
먼저 동일현상에 대해서도 달과 관련성이 나타나는 연구가 있는가 하면 다른 연구에서는 관련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통계자료를 뽑을 때의 문제점과 연관이 있다. 사건사고의 경우 주중보다 주말에 더 많이 나타나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보름달이 나타났을 때가 우연히 주말인 적이 많았기 때문에 마치 보름달과 특정 사건사고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련성이 곧바로 둘의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보름)달과 인간의 특정행위가 관련이 있다고 해서 (보름)달 때문에 인간의 특정행위가 나타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농구팀이 획득한 점수와, 도서관에서 대출되는 책의 수 사이에 관련성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농구팀이 획득한 점수로 인해 도서관에서 대출되는 책의 수가 증가하는가. 그렇지 않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둘의 관계에는 아마도 날씨와 같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사람들은 도서관을 많이 찾을 것이고 농구팀 선수들은 열심히 연습하게 될 테니까.
사건 터진 날의 선택적 기억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병원응급실과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바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서양에서 전해내려오는 신화를 곧이곧대로 믿는 미신이 문제다. 그리고 이를 지속시키는 매스컴의 영향이다. 매스컴에서 보름달과 인간 행동의 관련성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에 그러한 믿음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자들은 보름달이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좋아한다. 달의 영향을 보여주는 일화를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발견된 일화가 둘의 관련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매스컴을 통해 비판력없는 일반인들은 쉽게 설득당한다.
달의 영향력을 믿는 두번째 이유는 일반인들의 과학적 오류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80%인 물에 나타나는 조석현상을 알고 있다. 조석현상은 달의 조석력 때문에 해안에서 밀물과 썰물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인체의 80%가 물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인체에도 조석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일부 사람들은 달의 영향으로 몸속에 있는 물이 균형을 잃게 될 경우 비정상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 이를 ‘생물학적 조석이론’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전제가 잘못된 과학적인 오류다. 그 이유는 규모가 틀리다는 점이다. 거대한 바닷물에 나타나는 조석현상도 3m를 넘지 못하는데 왜소한 우리 몸에 나타나는 조석현상은 어떨까. 당연히 무시할 만큼 작은 양이다. 달이 인체에 미치는 힘은 엄마가 아이를 안는 힘보다 무려 1천2백만분의 1만큼 작다. 그리고 밀물과 썰물은 한달에 한두번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하루에 한두번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굳이 보름달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끝으로 보름달의 영향력을 믿는 이유는 사람들의 ‘선택적 기억’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의 영향을 받아 보름달이 미치는 영향력을 믿고 있다. 미래에 어떤 사건이 터졌다고 하자. 보름달의 영향력을 믿는 사람은 만일 이 사건이 보름달이 떴을 때 일어났다면 쉽게 주목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주위하게 지나칠 것이다. 즉 보름달이 나타났을 때 발생했던 사건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또 이런 사건은 매스컴(옛날 같으면 입소문)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따라서 보름달의 영향은 과학과 비판에 무지한 사람들의 선택적 기억과 매스컴이 공조해 확대재생산한 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