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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등대 변광성

거꾸로 나는 가을밤의 천마 페가수스

밤하늘 머리 위에 떠오른 '페가수스 사각형'이 계절을 알린다.요란하지 않아도 신화 속의 여러 주인공이 밤을 수놓는 가을.맑은 가을밤 페가수스를 길잡이 삼아 변광성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무더위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푸른 하늘이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가을의 밤하늘은 여름밤보다 밝은 별이 적어 별자리 찾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가을밤하늘에는 머리 위로 고개를 들면‘가을의 대사각형’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거꾸로 날고 있는 천마 페가수스자리다. 페가수스를 길잡이 삼아 별들을 찾다보면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들을 만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최초 기록


고래자리의 변광성 미라(원)의 밝기 변화.3백32일의 주기 동안 2등급에서 10등급까지 밝기가 변한다.


옛날 사람들은 천체를 위치도 밝기도 변하지 않는 완전한 존재로 생각했다. 따라서 갑자기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신성은 고대인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다. 기원전 134년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가 밝은 신성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별목록을 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596년 독일의 목사이자 관측천문학자였던 파브리치우스가 고래자리에서 최초의 변광성을 발견했다. 이 별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관측했던 것인데 이 사건이 별의 밝기 변화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는 시작이 됐다. 뒤에 독일의 천문학자 헤벨리우스가 이 별을 놀라움, 기적을 의미하는 ‘미라’로 이름지었다. 완전하다고 믿었던 천체 가운데 미라와 같이 밝기가 변하는 현상은 기적처럼 놀라운 대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가을밤하늘에서 미라를 찾아보자. 페가수스 대사각형의 동쪽 변을 2배 정도 연장하면 동남쪽하늘에서 고래자리의 가장 밝은 베타별(2등성)을 찾을 수 있다. 고래자리에서 중간쯤에 있는 별이 역사상 처음 발견된 변광성 미라(오미크론별)다. 이 미라는 전형적인 맥동변광성으로 밝기 변화의 주기가 비교적 긴 3백32일이고 한 주기 동안 2등성까지 밝아졌다가 다시 10등성까지 어두워진다.

맥동변광성의 밝기 변화는 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모든 별은 수소를 핵융합으로 태워 헬륨을 만든다. 그 헬륨은 다시 핵융합해 탄소나 질소, 규소 등의 더욱 무거운 원소로 바뀐다. 핵반응 뒤에 남은 재인 탄소와 질소는 차츰 별의 중심부에 모인다. 재의 양이 늘어나면 별의 중심부는 스스로의 무게로 불안정해진다. 아직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소는 별의 표면 가까이에서 타는데 이때 별의 바깥층이 차츰 팽창한다. 그리고 불안정해진 별의 바깥층은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밝기가 변한다. 바로 ‘맥동변광성’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별의 밝기 변화는 진화 단계의 후반에서 거치는 과정이다.

한편 미라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사실 파브리치우스보다 4년 앞서 조선시대의 관상감 관원들이 미라를 먼저 발견했다. 조선왕조실록과 문헌비고에는 선조 25년 10월(1592년 11월 23일)에 지금의 고래자리에서 객성(신성이나 초신성)이 나타났다는 기록과, 다음해 3월 4일 맨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매일 관찰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뒤 문헌비고에 1594년 2월 20일, 왕조실록에는 1594년 11월 2일에 다시 이 별이 나타난 것으로 적고있다. 이들은 이전까지 알려졌던 객성과 달리 같은 별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아쉽게도 이 기록들은 식민지 시절 일본 천문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국제학회에 발표됐다. 하지만 조선시대 천문 관측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9월 26일에 미라가 가장 밝아진다.


세페우스자리의 델타(δ)별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원형이다.평균밝기와 변광주기 사이에 일정한 관계를 가진 세페이드 변광성은 외부은하의 거리지표로 사용된다.


외부은하의 거리지표, 세페이드 변광성

다음에는 가을철에 가장 찾기 쉬운 M자 모양(W자가 거꾸로 걸린 모양)으로 걸려있는 카시오페이아자리로 눈을 돌려보자. 카시오페이아자리 중앙에 놓인 감마(γ)별은 현재 밝기가 2.2등급으로 알파(α)별과 비슷하다. 하지만 1937년에 1.6등급으로 갑자기 밝아진 뒤 1940년에 3등급으로 서서히 어두워졌다가 1975-6년에는 지금의 밝기로 되돌아온 특이한 변광성이다. 이번 가을 이 별의 밝기가 알파별과 다르게 보인다면 또다시 변광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카시오페이아의 서쪽, 북극성에 인접한 곳에는 아이들이 그리는 집 모양과 같은 세페우스자리가 보인다. 세페우스는 가을의 밤하늘을 차지하는 왕실가족의 가장이지만 뚜렷하게 잘 보이는 편은 아니다. 여기서 가장 잘 알려진 별은 델타(δ)별로 주기가 5.37일이고 밝기가 3.48-4.34등급으로 변하는 맥동변광성이다. 세페이드형 변광성의 원형이 되는 별이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빠르게 밝아졌다가 천천히 어두워지는 노란색의 변광성인데, 본래 밝기가 밝을수록 변광주기가 긴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페우스자리 델타별의 변광 특성은 청각 장애자이던 영국 아마추어 관측가 존 구드릭이 그의 나이 19살 때인 1784년에 발견했다. 그뒤 하버드대학 천문대에서 남천 하늘을 찍은 사진 건판에서 변광성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던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가 1908-1912년에 걸쳐 소마젤란 성운속에서 약 2천4백개의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더 찾아냈다. 그녀는 이들의 평균밝기와 변광주기 사이에 일정한 관계(주기-광도 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 관계를 이용하면 세페이드의 변광주기를 관측해 별의 본래 밝기(절대등급)를 알 수 있다. 이것을 겉보기 밝기(등급)와 비교하면 그 별까지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은하에서 세페이드를 찾아 변광주기를 관측한다. 세페이드의 주기-광도 관계를 통해 그별의 실제 밝기와 거리를 계산해낼 수 있다. 물론 세페이드의 거리는 세페이드가 속한 은하까지의 거리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세페이드 변광성은 외부은하의 거리를 구하는 우주의 등대 역할을 한다. 1920년대 초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이 윌슨산 2.5m 반사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성운’ 속에서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 관측해 안드로메다은하가 우리은하 밖에 있는 독립된 외부은하임을 증명했다. 이것은 우주의 규모가 순식간에 확장되는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그뒤 1952년 독일계 미국 천문학자 월터 바데가 세페이드 변광성의 거리척도 오차를 바로 잡아 안드로메다은하의 거리를 2백20만광년으로 밝혀냈다. 한편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은하를 처음 보면 사진에서 보는 모습과는 달리 흐릿한 구름 조각처럼 보여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예사롭게만 느끼지진 않을 것이다.

악마의 머리, 알골

가을밤 변광성여행의 끝으로 카시오페이아의 동쪽에 있는 페르세우스자리로 가보자. 페르세우스는 북쪽 밤하늘에 동서로 흘러가는 가을 은하수 속에서 2-3등급의 별들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선으로 이어져있는 별자리다. 이 별자리에서 두드러지는 별은 알파별 ‘미르파크’와 베타별 ‘알골’이다. 미르파크는 밝기가 1.8등급이고 거리가 6백20광년으로 태양보다 6천배나 밝은 빛을 쏟아내고 있다. 악마의 머리라는 뜻의 알골은 2.1-3.4등급으로 밝기가 변하는데, 사실 두개의 별이 식(蝕) 현상을 일으켜 겉보기 밝기가 변하는 대표적인 식변광성다.

알골은 1667년 이탈리아 볼로냐의 천문학자 제미니아노 몬타나리에 의해 밝기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됐다. 그뒤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던 존 구드릭이 18살이던 1783년에 알골의 정확한 변광주기를 측정했고 변광의 원인을 어두운 별이 밝은 별 주위를 도는 식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같은 별을 ‘식변광성’, 또는 ‘식쌍성’이라고 한다. 존 구드릭은 이 공로로 영국왕립학회 최우수상 메달을 받았지만 3년 뒤 21살에 죽었다.

식변광은 맥동변광과는 달리 쌍성계에서 우연히 공전궤도면이 우리 시선방향과 일치해서 어두운 반성이 밝은 주성 앞이나 뒤를 통과할 때 일식과 같은 원리로 겉보기밝기가 변하는 현상이다. 주성이 반성을 가릴 때도 밝기가 조금 변하지만 밝기차이가 적어서 맨눈으로 알아챌 수는 없다. 알골의 경우는 변광주기가 2일 20시간 48분 56초이고 태양보다 1백배나 밝은 주성이, 주성보다 약간 더 크지만 어두운 반성에 의해 76%가 가려진다. 두별은 지구와 태양 거리의 1/15정도로 너무 가까이 붙어있기 때문에 망원경으로도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알골은 변광주기가 짧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카시오페이아 베타별(2.3등급)과 델타별(2.7등급) 등의 밝기를 익혀놓고 서로 밝기를 비교해보면 변광 과정을 알아챌 수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밤하늘에는 지금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그중에는 밝기가 변하는 별들이 있다.그러나 그들은 하늘을 보고 꿈꿀 수 있는 이들에게만 자신의 비밀을 속삭인다.

200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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