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많은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뉴턴, 노벨, 퀴리 부인 등의 서양 과학자들과 함께 장영실, 허준, 우장춘 박사와 같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들이 어린이들의 꿈 속 깊숙이 자리잡는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고 나면 장래희망은 과학자와 거리가 멀어진다. 심지어 대학 진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과학을 공부하는 처지로 바뀐다. 과학이 점차 학생들로부터 어렵고 따분한 과목으로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은 과학이 머리는 좋지만 고지식하며, 자신과 같은 보통 사람과는 뭔가 다른 소수의 특이한 사람들만 하는 특별한 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과학이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는 반면 과학적 내용을 상상력으로 포장한 공상과학(SF)은 20세기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아 대중문화의 한 축이 됐다. 특히 SF영화는 오늘날 대중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여가생활의 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동시에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져다주는 산업이 됐다.
SF영화는 그 성격상 무수히 많은 과학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주제도 다양하다. 우주전쟁과 시간여행을 다루는 천문학과 물리학에 관련된 것으로부터 유전자 조작과 인간복제를 다루는 생명공학과 생명윤리를 다루는 것까지 과학의 모든 분야와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학교 과학교육을 위해 SF영화의 장점들을 과학학습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SF를 과학교육에 응용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당시에는 주로 SF소설에 나타난 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분석하거나 정리해 과학학습이나 토론의 소재로 활용했다. 그에 비해 최근에는 특정 SF영화들에서 보여지는 비과학적 장면들을 예시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SF영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책들이 국내외에서 여러 권 출판됐다.
어떻게 학교 과학수업에서 SF영화를 활용할 수 있을까. 1998년 개봉됐던 대표적 SF영화인 딥임팩트(Deep Impact)와 아마겟돈(Armageddon)을 예로 들어보자. 딥임팩트와 아마겟돈은 혜성과 유성이라는 지구 근접 물체(NEOs)와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라는 동일한 문제를 다뤘던 영화다. 딥임팩트가 보다 과학적으로 기술됐고 휴머니즘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반면, 아마겟돈은 비과학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됐지만 액션이 많이 등장하고 극적으로 전개된다. 이 두 영화를 예로 들면서 SF영화를 학교 과학수업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6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 영화 속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토의
영화에서 보여진 각 현상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지와 영화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들을 토의할 수 있다. 두 영화에서는 지구로 접근하는 혜성과 유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핵폭탄을 사용해 이것들을 쪼개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 이것은 얼마나 가능성 있는 일인가. 또 딥임팩트에서 혜성을 파괴하려던 첫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신(新)노아의 방주인 동굴대피소에 들어갈 수 있는 시민들을 주로 추첨을 통해서 선발한다. 이러한 방법이 정말 바람직한 것일까.
2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수치들을 직접 계산
영화에서 보여지는 각종 물리량의 값을 계산해본다. 또는 과학 개념들에 기초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볼 수도 있다. 아마겟돈에 등장하는 유성은 미국 텍사스주의 크기다. 이 정도의 크기면 그 질량은 얼마나 되며 그 표면에서의 중력가속도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또 딥임팩트에서처럼 혜성을 두 개의 조각으로 쪼개더라도 그 조각들이 혜성의 진행방향으로부터 1° 정도만 벗어날 수 있다면, 지구로부터 최소한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을 때 이를 쪼개야 할 것인가. 또 이를 위해서는 NASA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3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개념과 원리를 설명
영화에서 등장하는 과학과 관련된 용어와 개념들을 설명하거나 영화 장면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혜성과 유성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태양계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아마겟돈에서는 석유시추공 전문가들이 우주선에 승선하기 전에 거대한 물탱크 속에서 무중력 상태에 대한 적응 훈련을 받는다. 왜 이러한 수중 훈련이 필요하며 어떤 측면에서 이것이 무중력 상태가 유사한지를 중력과 부력 등의 개념을 사용해 설명한다.
4 영화에서 비과학적으로 묘사된 장면들을 조사하거나, 영화 속 장면을 실제 실험으로 연결
아마겟돈에서는 우주왕복선에 인공중력이 존재한다. 이 장면이 부적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구에 충돌하는 혜성의 질량과 속력은 그것이 바다에 일으키는 충격파의 세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설계해본다. 또 충격파의 세기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 등을 탐색해본다.
5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을 가정하고 다양한 인물의 입장을 대변
다른 SF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아마겟돈과 딥임팩트에서도 다양한 의사결정 상황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제시된 상황에 대한 역할극(role play)을 설정한다. 과학적 자료와 윤리적 판단에 근거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럼으로써 영화에서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입장과 역할을 이해하고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이해한다.
6 인터넷을 통해 영화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수집 분석
인터넷 등을 통해 영화와 관련된 과학적 내용과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 또 영화 속에 등장한 사회적인 쟁점들에 관해 네티즌들의 의견을 조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룡의 멸종과 지구근접물체의 관계는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조사한다거나, NASA와 같은 과학연구기관들이 엄청난 국가예산을 사용하면서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수집해 분석할 수 있다.
SF영화는 학교 과학교육이 갖지 못하는 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다. 최근 SF영화를 과학수업에 적용하기 위한 여러 차례의 예비 연구를 통해서도(구미 진평중학교 최원석 교사), 이러한 접근법에 대한 학생들의 호응은 놀라울 정도로 컸다. 하지만 SF영화를 활용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즉 SF영화를 교실 수업에서 활용하는 것은 일단 교사에게 별도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영화를 보고 편집해 필요한 자료를 개발하는 것은 과학교사 개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SF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와 내용 그리고 그와 관련된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교사들과 학생들이 손쉽게 학교 수업에 사용할 수 있는 ‘SF영화로 보는 과학’과 같은 교재가 등장한다면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새롭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SF영화를 과학적인 안목으로 다시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