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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아있는 백신, 죽은 백신

약효와 안전성 두마리 토끼를 잡는길

백신은 일반적으로 몸 속에서 두가지 경로를 통해 병균을 파괴한다. 백신이 투여되면 몸 안에서는 두가지 종류의 방어군이 형성된다. 이 중 한가지는 병균이 세포 안에 숨어버릴 때 그 세포를 ‘폭격지점’으로 삼는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몸 속 방어군은 T세포(임파구)라고 불린다(세포성 면역).

또다른 방어군의 이름은 B세포다. 병균(항원)에 직접 결합해 조각내버리는 항체를 만드는 세포다(체액성 면역).

그러나 이 두가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고 해서 모두 좋은 백신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약효뿐 아니라 안전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백신이 제아무리 면역반응을 잘 일으킨다고 해도 몸의 입장에서는 낯선 이물질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효과를 최대화시키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다양한 백신을 개발해 왔다.

독만 제거한 생백신

가장 고전적인 형태는 ‘약독화’ 백신이다. 독성을 약하게 만든 백신을 몸에 투여함으로써 병은 일으키지 않고 면역력만 얻으려는 시도다. 바로 제너와 파스퇴르가 개발한 천연두 백신, 그리고 이후 개발된 소아마비와 홍역 백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약독화 백신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실험실에서 병균을 몇 세대에 걸쳐 기르다보면 독성이 약해진 돌연변이체가 발생한다. 요즘에는 인위적으로 병균의 유전자를 조작해 돌연변이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를 동물에 투여해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한 후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소아마비 백신의 사례를 살펴보자. 소아마비 바이러스는 195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으로 엄청난 사상자와 장애자를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1963년 새빈 박사가 입을 통해 주입하는 경구용 백신을 개발한 이후 세계적으로 발병률이 현저히 감소했고, 현재 구미 선진국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소아마비는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새빈 박사는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실험실에서 지속적으로 배양하면서 독성이 약해진 것을 골라 원숭이에게 투여했으며, 그 가운데 효과가 입증된 것을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적용시킨 것이다.

하지만 독성을 없앴다고 해서 그 병균의 수명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이런 의미에서 약독화 백신을 생(生)백신으로 부른다). 따라서 어느 순간 병균이 독성을 다시 얻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맹독성이 강한 병균의 경우 완전히 독성을 제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에이즈 백신이다.

에이즈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약독화된 생백신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원숭이 실험에서 해결의 단서가 발견됐다. 원숭이에게 에이즈 증상을 일으키는 면역결핍바이러스(SIV)에 유전자조작을 가해 돌연변이를 만들었다. 이들 가운데 독성이 약해진 것을 골라 원숭이에 주입한 다음 맹독성의 야생 SIV를 투여했다. 놀랍게도 이 원숭이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력화된 바이러스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하면 에이즈를 완전히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가능성이 실현될 것처럼 보인 사례가 발견됐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에이즈 감염자의 피를 수혈받은 10여명의 환자들이 15년이 지나도록 병의 증상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혈액에서 발견된 에이즈 바이러스(HIV)는 유전자의 일부가 결손돼 있었다. 약독화된 에이즈 백신 개발에 청신호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계속적인 실험 결과 이 희망은 사라졌다. 약독화된 SIV로 감염시킨 원숭이의 혈액을 정상 원숭이에 주입한 후 맹독성의 SIV를 투여하자 정상 원숭이가 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원인은 두가지였다. 우선 제아무리 독성이 약해졌다 해도 면역력이 약한 개체(특히 갓 태어난 원숭이)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약독화된 SIV가 세대를 거치면서 다시 야생형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발견됐다.

불행하게도 오스트레일리아 수혈환자에게서도 비슷한 결과가 발생했다. 몇년 후 대부분의 수혈자가 에이즈 증상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과학자들은 약독화를 통한 에이즈 백신 개발을 포기했다.
 

에이즈를 예방하는 백신이 원숭이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개발돼 왔다.하지만 현재까지 만족스러운 결과는 없다.


무늬만 병균, 사백신

생백신이 위험하다면 아예 병균을 죽여서 백신을 만들면 안전하지 않을까. 실제로 독감,콜레라, 백일해, 그리고 광견병 백신은 이런 형태로 만들어 지고 있다. '무늬만' 병균인 이 백신을 가리켜 사(死)백신이라 부른다.

올해 미국과 독일은 소아마비의 경우 생백신의 사용을 중단하고 사백신을 활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성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초기에는 생백신을 이용해 소아마비를 예방했다. 그러자 당시까지 매년 발생하던 1만여명의 소아마비 환자가 1천여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1년에 5-6건 정도 생백신을 맞은 아이에게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래서 효과는 떨어지지만 보다 안전한 사백신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사백신은 생백신에 비해 큰 단점을 가진다. 이미 생명이 다한 병균을 백신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백신을 사용할 경우 별도의 면역증강제를 함께 투여해야 한다. 또 면역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까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안전성만 충분히 입증된다면 사백신보다 생백신을 사용하기를 원한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경우는 어떨까. 워낙 치명적인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부활’할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고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다면 약효는 괜찮을까.

최근의 실험에 따르면 완전히 활동이 정지된 SIV를 투여한 원숭이가 야생형 SIV에 감염됐을 때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방어력의 ‘질’이 문제였다. SIV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면역력이 생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몸의 전반적인 면역력이 증가한 것이다. 심지어 SIV에 대해서는 효과를 보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SIV를 치료하려는 측면에서 볼 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사백신보다 더 안전한 백신도 있다. 단백질백신이다. 병균의 유전자를 떼내 실험실에서 대량으로 복제한 후 이들로부터 만들어지는 단백질을 백신으로 이용한다는 개념이다. 병균이 몸 속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며 활동을 벌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더욱이 현대의 유전공학 수준이라면 싼 값에 대량으로 단백질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사용되는 단백질백신은 B형 간염백신이다.

물론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안전성은 제일 높지만 면역효과는 가장 떨어진다. 즉 병균에 대한 항체는 만들어내지만(체액성 면역), 세포 속에 숨은 병균을 파괴하지는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세포성 면역).

일례로 에이즈 바이러스의 경우 실험실에서 외막 단백질을 만들어내 백신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이 진행돼 왔다.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는 이 백신을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에 투여하는 실험이 수행됐다. 하지만 여러차례 반복적으로 투여된 사람조차 이렇다 할 방어력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 국립보건원은 에이즈 예방을 위해 더이상 단백질백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항체 만드는 역할뿐

하지만 일부 중진 연구소와 기업은 현재까지도 단백질백신의 개발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무서운 한가지 이유는 평소에는 몸 안쪽에 가려 보이지 않던 특이한 부위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바깥으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만일 이 부위와 결합해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항체가 만들어진다면 에이즈 예방에 효과적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외막에 대한 3차구조가 상세히 밝혀지고 있어 그 숨겨진 부위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다. 만일 그 부위의 단백질을 이용해 백신을 만들어 몸에 투여한다면 항체가 잘 생성되지 않겠는가. 물론 세포성 면역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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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배용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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