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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오징어를 먹거나 양치질 대용으로 껌을 찾는 경우가 흔하다.그런데 이 기호식품들이 턱의 관절에 무리를 주고 있다.하품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턱에 통증이 오면 얼마나 불편할까.증상이 심해지면 관절염이 발생해 얼굴 한쪽이 삐둘어질 수도 있다.

갑자기 턱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나고, 입을 벌리거나 씹을 때 통증을 느낀 L군(19)이 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비인후과를 갔다. 그러나 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뼈에 이상이 생겼을까? 정형외과에 들른 L군은 지시대로 물리치료를 받고 진통제를 복용했다. 그러자 통증이 약간 줄어들었다. 그런데 소리는 변함없이 계속해서 나는 것이 아닌가.

L군이 결국 찾은 곳은 치과였다. 방사선 촬영을 비롯한 몇가지 검사를 받은 L군은 여기에서 비로소 정확한 설명을 들었다.

오징어가 원인

L: 선생님 제 턱에서 왜 소리가 나죠?

의사: 턱에 있는 디스크(관절원판)의 형태와 위치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L: 형태와 위치 이상이라니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의사: 우리가 흔히 말하는 턱관절은 전문용어로 ‘측두하악관절’이라고 부릅니다. 두개골에서 측두골이라는 뼈가 턱뼈인 하악골과 만나서 이루는 관절이죠. 이 관절에는 관절원판이라고 불리는 디스크가 들어있습니다. 이 디스크는 하악골과 측두골에 부착돼 있으면서, 우리가 입을 벌리고 다물 때 같이 움직입니다. 디스크는 주변 부분이 두껍고 가운데가 얇은 아령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두꺼운 부분이 얇아져서 앞쪽으로 빠져나오면 입을 벌릴 때 걸려서 소리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L: 아, 그렇구나! 이제 제 턱에서 소리가 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 디스크는 왜 앞으로 빠져 있는 것이죠?

의사: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턱관절 장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해서 딱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 외상, 나쁜 습관, 교합 부조화, 스트레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다른 이유로 턱관절에 문제가 있을 때 장애를 일으키도록 촉발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 그 자체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건강한 턱관절을 가진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장애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환자는 언제부터 소리가 나기 시작했죠?

L: 오징어를 먹은 후인 것 같아요. 한번은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오징어를 두마리나 먹은 적이 있어요. 그 다음날 아침에 턱이 뻐근하고 입을 벌릴 때 소리가 난 것 같습니다.

의사: 병의 원인을 좀더 상세히 나누어 보면 병을 직접적으로 시작시키는 ‘유발요인’이 있고, 발생된 병이 쉽게 낳지 못하도록 만드는 ‘지속요인’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보다 병이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소인’이 있어요. 환자의 경우에는 오징어를 먹은 것이 유발요인에 해당됩니다. 지속요인과 소인은 차차 찾아보도록 하죠.

입이 안벌어져 식사 곤란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L군은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오징어를 먹은 사람들은 모두 턱관절에 문제가 생겨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 오징어 외에도 껌처럼 일상생활에서 턱을 ‘줄기차게’ 사용하는 음식이 있는데, 모두가 턱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일까? L군의 궁금증을 눈치챈 의사가 말을 이었다.

의사: 같은 오징어를 먹어도 병에 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소인과 지속요인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밤에 이를 간다거나 평소에 이를 악물고 있는 습관이 그것입니다. 이 경우 병이 더욱 쉽게 생기겠지요. 이 외에도 턱을 앞으로 내미는 습관, 딱딱한 음식을 즐겨 먹는 일, 턱을 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불량한 수면자세, 손톱이나 연필 등을 깨무는 버릇, 식사할 때 좌우 어느 한쪽으로만 음식을 씹는 일 등도 고쳐야 할 습관에 해당됩니다.

L: 저는 처음에는 소리만 났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가끔 통증이 느껴집니다. 소리만 났을 때 턱이 제위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껌을 많이 씹었습니다. 하루에 한통씩 몇달간 씹은 것 같아요. 남녀공학이라 입냄새도 신경이 쓰이고요. 껌을 씹는 것도 턱에 좋지 않은가요?

의사: 좋은 지적입니다. 껌을 씹는 것은 치아건강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입냄새를 없애기 위해 또는 양치질 대신으로 껌을 씹는 사람들이 많은데 턱관절에는 오히려 해로운 일이죠.

L: 선생님 그러면 저와 같은 경우에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의사: 어떻게 된다고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나쁜 습관이 없는 사람보다 악화될 가능성은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현재 상태를 전문용어로 ‘정복성 관절원판전위’라고 부르는데, 이 상태가 악화되면 ‘비정복성 관절원판전위’에 이릅니다. 턱에서 소리가 오히려 나지 않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는 상태죠. 입이 3cm 정도밖에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식사를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억지로 입을 벌려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또 통증이 더욱 심해지고, 관절염으로까지 진행되기도 합니다.

L: 관절염이요? 턱에도 관절염이 생기나요? 그리고 관절염은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에게만 생기는게 아닌가요?

의사: 턱에서도 관절염이 생깁니다. 노인의 경우에 관절염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10대에서도 환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턱에 관절염이 생기면 식사 때나 입을 벌릴 때 거친 소리가 나고, 평소에도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심한 경우 뼈가 많이 녹아 없어져 얼굴 형태까지 변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한쪽 턱관절에 관절염 증상이 생기면 그쪽으로 턱이 비뚤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갑자기 얼굴이 비뚤어지는 일을 당하면 일단 턱에 관절염이 걸렸는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쪽 턱에 관절염이 발생해 얼굴이 삐뚤어진 환자


통증을 제거하는 법

L군은 그저 가볍게만 여기던 턱의 통증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심하면 얼굴까지 비뚤어지다니! L군은 다급해진 마음에 치료방법을 질문했다.

의사: 먼저 나쁜 습관을 없애는 행동수정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습관이 나쁜 영향을 주는지 환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이때 일단 통증을 없애기 위해 진통소염제를 투여합니다.초기 상태에서는 이처럼 단순히 약만 먹어도 증상이 없어져요. 하지만 환자처럼 이미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L: 다른 방법이라니요?

의사: 입안에 장치물을 끼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장치로 근육이완교합장치와 전방 재위치장치가 있는데, 근육이완교합장치가 비교적 부작용의 위험이 적습니다.

L: 말이 어렵네요. 그 장치가 어떤 효과를 내는 것입니까?

의사: 우선 이를 갈거나 악무는 습관을 차단해줍니다. 우리가 이를 악물도록 만드는 신호는 치아의 뿌리를 싸고 있는 치주인대의 ‘고유수용기’를 통해 뇌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치아와 치아 사이에 적당한 장치물이 들어가면 고유수용기에서 뇌로 전달되는 신호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 결과 이를 악무는 빈도와 시간이 감소하죠. 장치물을 낀 채 이를 갈거나 악무는 경우에도 나쁜 효과가 치아나 턱관절에 전해지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L: 이런 장치물을 끼면 빠져나간 디스크가 원래의 위치로 들어가게 되나요?

의사: 불행하게도 한번 빠져나간 디스크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소리가 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 원래 위치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나 장치물을 사용하면 빠져나간 부분이 단단한 살로 변해 통증이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L: 그럼 얼마 동안 장치물을 끼고 있어야 빠져나온 부분이 딱딱하게 변하나요?

의사:무거운 가방을 하루 이틀 든다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좀 걸립니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가 필요하죠.

L: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나요?

의사: 네. 그러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부분은 비수술적인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턱관절 치료에 사용되는 근육이완교합장치


양치질이 중요한 이유

L군은 입안에 장치물을 끼우는 것이 싫었지만 더 심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쁜 습관을 없애라고 충고할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이때 의사가 한가지를 더 설명했다.

의사:아까 말씀드린 내용 외에 평소 양치질을 열심히 해 충치에 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L: 충치도 턱관절에 영향을 미치나요?

의사: 네. 왜 그런지 설명하죠. 위아래 치아가 맞물리는 것을 교합이라고 합니다. 교합이 안정됐다는 말은 충치가 없고 치아들이 가지런히 배열됐다는 의미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입을 다무는 힘이 치아와 관절로 골고루 분산되기 때문에 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적습니다. 그러나 충치가 생겨 교합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입을 다물 때의 힘이 관절에 가해지거든요. 인간은 하루에 약 4천번씩 위아래 치아가 맞닿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좋지 않은 자극이 턱관절에 전달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상담을 마친 L군은 사소한 생활습관 하나가 어느 순간 무서운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의사의 설명으로는 인구의 30% 정도에서 턱에서 소리가 발생하거나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적지 않은 수다. 물론 이들이 모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 통증이 느껴지는 경우, 그리고 통증이 없지만 소리가 나는 횟수가 늘어나는 등 상황이 악화되는 때에만 치료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입을 벌릴 때 ‘딱’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평소의 생활습관을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소리가 들리기 전에 나쁜 습관을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

200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기범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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