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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자연에서 대칭성은 아름다움을 만들고 쓸모를 높여준다. 호수에 비친 달은 하늘에 떠있는 달과 대칭을 이루어 더욱 아름답고, 축구공이나 타이어는 둥글게 대칭인 모양에서 기능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그림이나 건물의 대칭성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분자를 변환하는 일을 하는 화학자들은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에서 똑같은 감동을 받는다. 또한 그들은 대칭성을 이용해서 분자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밝혀내기도 한다.

 

자연이 좋아하는 분자

 

화학에서의 대칭성은 주로 물질의 분자구조를 결정한다.또한 구조는 물질의 특성을 결정한다.


분자의 구조에 대한 이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영국의 화학자 존 돌턴이었다. 그는 180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원자는 둥근 공 모양이고, 그런 원자들의 화학결합으로 만들어지는 분자는 대칭성이 가장 높은 모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 화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공’과 ‘막대기’로 만든 분자 모형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돌턴은 모든 분자가 평면 구조를 가질 것으로 생각했고, 정확한 원자량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분자의 정확한 구조를 밝히지는 못했다. 같은 해에 역시 영국의 윌리엄 울러스톤은 분자의 모양이 3차원 입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화학자들은 자연이 대칭적인 모양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화학에서는 이 무조건적인 희망을 따르고 있는 분자들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분자로는 벤젠(${C}_{6}{H}_{6}$)과 메탄(${CH}_{4}$), 그리고 풀러렌(${C}_{60}$)을 들 수 있다. 같은 평면에 놓인 6개의 탄소와 6개의 수소가 정육각형의 고리 모양으로 대칭을 이루는 벤젠의 구조는 1866년 독일의 프리드리히 케쿨레에 의해서 제안됐다. 케쿨레는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분석하던 중에 이론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점진적으로 6중 대칭축을 가진 정육각형 구조를 떠올리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케굴레가 버스를 타고 가다 갑자기 고리모양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고도 하고, 벽난로 옆에서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육각형 고리 구조를 보게 됐다고도 한다. 어쨌든 벤젠의 구조가 밝혀지게 된 계기는 ‘자연은 대칭적인 구조를 좋아한다’는 케쿨레의 무의식적인 가정이 바탕이 됐던 셈이다. 벤젠과 달리 탄소만으로 된 흑연은 벤젠에서와 같은 정육각형 모양의 탄소 고리가 사방으로 연결된 평면 형태를 지니고 있다.

 

1874년에 네덜란드의 야코부스 반트 호프는 탄소 원자가 정사면체의 중심에 자리잡고, 4개의 수소가 정사면체의 꼭지점에 있는 메탄의 정사면체 구조를 제안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구조가 가능성으로 제기될 수 있었지만, 그는 분명한 이유 없이 그저 가장 대칭적인 구조를 선택했다.

 

기둥이 필요 없는 축구공 구조

 

분자의 구조를 밝힐 수 있는 여러 가지 실험 방법들이 개발돼 있는 최근에도 대칭성이 높은 구조에 대한 화학자들의 무의식적 희망이 가끔 사실로 밝혀진다. 1985년에 미국의 화학자 리처드 스몰리와 영국의 해롤드 크로토는 60개의 탄소 원자가 뭉쳐진 덩어리 모양의 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분자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며칠 동안 고민하던 스몰리는 어느날 점심 식사 후에 식탁 위에서 종이를 잘라 이리저리 맞추어보다가 바로 축구공의 꼭지점이 60개임을 깨닫고,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C}_{60}$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구공인 셈이었다.

 

축구공은 12개의 오각형과 20개의 육각형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이런 구조는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밝혀낸 정리에 따른 대칭성이 매우 높은 ‘절단된 이십면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실생활에 가장 먼저 활용한 사람이 바로 미국의 유명한 건축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벅민스터 풀러였고, ${C}_{60}$는 그의 이름을 따라 ‘벅민스터 풀러렌’ 또는 간단히 줄여서 ‘풀러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풀러가 오일러의 정리에 따라 처음으로 디자인했던 측지돔은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매우 단단한 특성을 가진 초대형 공 모양의 건축물로 몬트리올 엑스포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고, 대전 엑스포에서도 전시관으로 이용됐다.

 

자연이 대칭을 좋아하는 이유


분자들이 대칭적인 모양을 좋아하는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20세기 초에 정립된 양자역학 덕분이었다. 원자는 원자핵의 주위에 가벼운 전자들이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전자의 분포는 양파 껍질처럼 여러 겹으로 된 ‘오비탈’로 나누어진다. 원자핵에 가까이 분포하고 있는 전자는 원자핵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외부에서 다른 원자가 다가오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핵에서 먼 바깥쪽에 분포하고 있는 ‘원자가전자’는 다른 원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 분포의 모양이 바뀌면서 화학결합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분자의 모양은 화학결합을 만드는 원자의 오비탈 모양에 의해서 결정되는 셈이다. 분자의 모양과 원자가 오비탈의 관계를 처음으로 밝힌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그 업적(과학동아 1999년 4월호 참조)으로 195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두 개 이상의 원자가 서로 접근하게 되면 원자를 둘러싸고 있는 원자가전자 오비탈들의 모양이 바뀌면서 소위 ‘혼성 오비탈’을 만들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혼성 오비탈에 전자가 분포하게 돼 화학결합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오비탈을 차지하게 되는 전자들은 같은 음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반발하기 때문에 분자가 형성될 때 만들어지는 혼성 오비탈들은 가능하면 서로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지게 된다. 메탄과 같은 분자가 대칭성이 높은 정사면체 구조를 갖게 되면 오비탈에 분포하는 전자들 사이의 반발 에너지가 가장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이 대칭적인 모양을 가장 좋아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희망의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는 데에는 무려 1백3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셈이다.

 

60개의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풀러렌의 구조.가장 대칭성이 높은 구조다.공모양 돔은 풀러렌의 구조를 응용한 것으로 내부 기둥 없이 가장 효율적인 공간을 형성할 수 있다.


예외가 있어서 더욱 빛나

 

모든 분자가 가장 대칭적인 모양만을 갖게 된다면 분자 세계의 대칭성은 그렇게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한 개의 산소 원자의 양쪽에 두 개의 수소 원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물분자(${H}_{2}$O)의 경우가 바로 그런 예이다. 대칭성만을 생각한다면 산소의 양쪽에 두 개의 수소가 일직선으로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의 물분자는 두 개의 수소가 104.5°의 각도를 이루며 결합돼서 썩 대칭적인 모양이 아니다.

 

그런데 물분자는 이렇게 구부러진 모양 때문에 비슷한 다른 분자보다 녹는점과 끓는점이 훨씬 더 높고, 밀도와 열용량이 크며, 고체의 밀도가 액체보다 더 작은 매우 특별한 특징을 갖게 된다. 물의 이런 특성 때문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물을 용매로 이용해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분자가 대칭성이 낮은 모양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혼성 오비탈을 이용한 폴링의 이론으로 설명된다. 산소 원자는 탄소 원자보다 더 많은 8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고, 그 중에서 6개가 화학결합을 형성할 수 있는 원자가전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산소가 물분자를 형성할 때는 메탄의 중심에 있는 탄소 원자와 같이 정사면체의 꼭지점을 향한 4개의 혼성 오비탈을 만든다. 탄소의 경우에는 그런 혼성 오비탈 4개가 모두 수소와의 결합에 이용되기 때문에 정사면체 모양의 메탄이 생긴다. 그러나 전자가 더 많은 산소의 경우에는 4개의 혼성 오비탈 중에서 2개만이 수소와의 화학결합에 이용되고, 나머지 2개의 혼성 오비탈에는 산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전자 4개가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까 혼성 오비탈의 모양은 사면체의 꼭지점을 향하고 있지만 실제로 수소가 결합된 모양은 대칭성이 낮은 구부러진 것으로 나타나게 되고, 수소가 결합되지 않고 비어있는 혼성 오비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분자의 모양이 대칭적이 아니라면 반드시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화학자들이 분자의 모양에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의 분포 모양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복잡한 양자역학적인 계산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고성능 컴퓨터의 발전으로 분자에서의 전자 분포를 알아내는 계산이 쉬워지면서 복잡한 분자의 정확한 구조를 밝히는 일도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화학자들이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에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분자의 모양이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 분포의 모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원자핵보다 적어도 1천8백배 이상 가볍기 때문에 전자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전자가 움직이는 동안에는 원자핵은 가만히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몸무게가 비슷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돌면 두 사람이 모두 움직이지만, 가벼운 돌을 줄에 매달고 돌리면 사람은 가만히 서있고 돌만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니까 원자핵 주위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원자핵은 정해진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래서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의 분포를 나타내는 오비탈의 모양에는 분자의 대칭성이 그대로 반영되게 된다.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에 대한 간단한 정보에서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전자의 오비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분자 모양을 보고 정보를 얻는다

 

분자 주위를 둘러싸는 전자의 오비탈에 대한 정보는 분자의 색깔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게 이용된다. 분자가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흡수하면 낮은 에너지를 가진 오비탈의 전자는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 오비탈로 올라가서 분포의 모양이 바뀌게 된다. 분자가 빛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광자의 에너지가 두 오비탈 사이의 에너지와 같아야 할 뿐만 아니라, 두 오비탈의 모양도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어떤 모양의 오비탈에 있는 전자가 빛을 흡수해서 다른 모양의 오비탈로 올라갈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규칙을 ‘선택규칙’이라고 한다. 오비탈의 모양과 대칭성은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분자가 어떤 빛을 흡수할 수 있는가가 분자의 모양에 의해서 결정되는 셈이다.

 

전자의 오비탈의 모양과 대칭성은 화학반응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다. 서로 다른 분자가 접근할 때 두 분자의 오비탈이 적당히 겹쳐지게 되면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미국의 로알드 호프만과 일본의 겐이찌 후쿠이는 바로 그런 오비탈의 대칭성에 대한 특성을 밝혀낸 공로로 198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은 원자핵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진동과 회전 운동의 형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런 정보는 분자에 적외선이나 마이크로파를 쪼여줄 때 일어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유용하게 이용된다.

 

분자의 모양과 대칭성에 대한 호기심은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했지만 분자의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 성질은 물론 화학반응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자의 구조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의약품이나 농약으로 사용되는 화합물의 생리적인 약효와 분자의 구조 사이에도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신약개발과 같은 첨단과학 분야에서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


비타민 ${B}_{12}$를 함유하고 있는 물질의 전자밀도 지도.형태를 보고 이 물질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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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덕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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