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과학은 생리학 심리학 운동역학 의학 등 인간에 관련된 모든 학문이 어우어져 엮어내는 한편의 대서사시입니다."
최고의 성과를 달성하려는 합리성의 추구, 진실에 접근하려는 가장 올바른 방법, 진보의 상징 등 ‘과학’이라는 표현은 우리의 의식속에 백이면 백, 선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 88올림픽은 우리나라에서 스포츠과학 즉, 스포츠선진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호기임에 틀림없다.
88올림픽을 한달여 앞둔 9월 중순에는 우리나라에서 전세계 스포츠과학자 1천8백여명이 모여 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 조직위원회 실무책임자(부위원장)이면서 스포츠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정성태박사(50)를 만나 스포츠과학전반에 관해 들어보았다.
●─ 생리학 심리학 역학 등의 종합학문
─ 일반인들은 ‘스포츠과학’하면 ‘기록갱신’정도로 생각하는 게 보통인데 먼저 스포츠과학에 대한 시각교정부터 해주시지요.
“기록갱신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스포츠과학 모두를 설명하기는 힘들지요.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스포츠현상의 모든 것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까요. 스포츠도 일종의 인간의 기능이니까 인체의 기능을 연구하는 생리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경쟁관계에서나 주위 환경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불안 긴장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심리학, 인간을 기계로 보고 최고의 능률을 발휘케 하는 운동역학 등이 주요 분야입니다.”
최신의 전자장비를 들여와 어떻게 훈련해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다는 식의 설명이 있음직한데, 학자이어서 그런지 차분한 ‘스포츠과학강의’가 계속된다.
“스포츠과학의 내용은 운동경기 그 자체의 기능향상을 위한 훈련방법의 과학화가 있는 반면에, 트레이닝 외적인 것이 있읍니다. 예를들어 인간이 운동하는데 휘발유라고 할 수 있는 글리코겐을 체내에 가장 많이 축적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경기 1주일 전에 탄수화물의 공급을 줄였다가 3일 전에 늘린다든가, 적혈구수를 늘리기 위해 산소분압이 낮은 고지훈련을 한다든가, 1백m 단거리선수가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바싹 깍고 팬티를 수영선수처럼 입는다는 것 등이 바로 이 분야에 속합니다. 그밖에도 부상을 방지하고 상해를 입었을 때 빨리 회복하는 방법 등도 주요 내용이지요.”
─ 국내에서는 스포츠과학에 연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읍니까.
“스포츠과학이라는 용어가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60년대라고 할 수 있읍니다. 주로 그당시에는 의사들이 중심이 돼서 이 분야에 관심을 표명했고 70년대를 거치면서 체육학으로 탈바꿈됐지요.”
스포츠과학연구소는 80년 12월 대한체육회 산하단체로 설립되었고 85년 5월에 훈련원 스포츠과학연구소로 개편됐다. 현재 스포츠생리학연구실 운동기술분석연구실 등 6개의 연구실에 30여명의 연구원이 상근하면서 대표선수 경기력 향상과 국민체력 향상을 위해 연구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 장비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읍니까.
“최신 전자장비를 비롯 스포츠선진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 있읍니다. 선수들의 미세한 흔들림을 측정하는 포스플랫폼(Force Platform), 근력측정분석장치인 사이벡스(Cybex), 뇌파 심전도 등을 측정해 선수가 경기 중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설명가능한 폴리그래피시스팀 등을 비롯 약 20억원어치 2백여점의 장비를 갖추고 있읍니다.”
─ 요즘 일각에서는 ‘참여하는 스포츠’대신에 ‘보고 즐기는 스포츠’가 범람하여 사회체육, 국민체력 증강에 큰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반집단과 선수와의 관계인데, 체육 학자들은 일단 일반인은 뭐를 할지 모르는 집단으로 보지요. 그래서 선수 몇명을 뽑아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기를 하게 합니다. 선수들이 연출하는 멋있는(?) 모습을 자꾸 보게되면 일반인들도 하고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73년 사라예보대회에서 이에리사 정현숙 선수 등이 큰 성과를 거두자 국내에 탁구장 수가 엄청나게 는 것도 바로 이런 관계를 나타내주는 예가 됩니다. 혹자는 프로야구를 좋지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프로야구가 생긴 이후에 동네 골목마다 야구배트든 아이들의 요란스러운 함성이 진동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읍니다.”
결국 88올림픽도 마찬가지라는 것. 세계 유명선수들이 직접 연출하는 훌륭한 묘기는 우리 국민들을 사로잡을 것이 분명하고 이는 반드시 국민체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정부측에서 공원이나 한강고수부지와 같은 좋은 조건의 장소를 조성해주고 각 지역에 훌륭한 시설을 갖춘 체육관을 저렴한 비용으로 개방해주면 국민체육은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번성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 국민체육을 위해 스포츠과학연구소에서 계획중인 프로그램은 없읍니까.
“우선 국민들의 체력 현황을 파악해야 겠지요. 연령별 성별 체력지수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주면 스스로 알아서 체력보강에 힘쓸 것입니다. 기존의 조기회 등산모임 등을 중심으로 의사와 스포츠과학자들을 초청해 무료시민강좌를 곧 운영하려 합니다.”
●─ 유전적인 요인도 분석
─ 과학적 측정과 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를 몇가지만 이야기해 주시지요.
“사격의 경우 선수들이 조준하는 동안 몸의 흔들림, 심장 맥박, 뇌파검사, 안구검사 등을 통해 어떠한 조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가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지요. 우리나라가 양궁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나름대로 심리적 영향까지를 정확히 분석해 대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지요. 단거리사이클에 적합한 순발력형 근육을 가진 선수가 장거리경기에 출전해 우연히 좋은 성적을 내 대표선수로 발탁된 것을 측정과 분석을 통해 교정해서 좀더 좋은 결과를 냈읍니다. 이처럼 스포츠과학은 타고난 자질은 더욱 발전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최고도로 발전시켜 우수선수를 만들어내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읍니다.
이외에도 잘 알려진 비디오분석, 연습 할 때와 시합할 때의 혈중 젖산분석, 운동 후의 피로회복 방법, 시합 전날의 수면분석 등 경기 내외적인 모든 분석이 이 연구소에서 이루어집니다.”
예를들어 시합 후에 음식을 안먹고 휴식을 취한 경우는 글리코겐이 전혀 생성이 안되고, 고기(육류)를 많이 먹은 경우는 5일이 지나도 평상시의 반정도만 회복되고, 탄수화물을 섭취한 선수는 48시간만에 완전회복된다는 실험치는, 보통 선수들이 시합 끝나고 육류로 영양보충(?)한다는 통념을 교정시켜주고 있다. 운동기간 중에 물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상식은 운동내용에 따라 먹는 회수와 양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 오는 9월 열리는 서울올림픽 스포츠 과학학술대회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지요.
“전세계 스포츠과학자가 모여 12분야에 걸쳐 그동안 연구해온 결과를 주제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학술축제입니다. 64년 동경올림픽때부터 올림픽 개최지에서 매번 열립니다. 이번 대회에는 외국에서 8백여명, 국내에서 1천여명의 스포츠과학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며 발표될 논문수는 국내에서 70여편, 국외에서 5백50여편으로 스포츠과학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다루어집니다. 체육학계에서 이처럼 큰 행사를 치뤄 본적이 없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번 학술제를 통해 국내 스포츠과학은 한번더 질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다루어질 내용은 운동생리학이나 운동역학 등 직접 스포츠과학에 관련된 내용뿐 아니라 체육사, 스포츠철학, 스포츠교육 등 체육학 전반에 걸친 내용이다.
이의 실질적인 실무책임자로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박사는, 준비의 일환으로 동독으로 출발하면서 “동독이 어떻게 해서 인간의 한계능력에 도전하여 좋은 기록을 내는지, 이에 상응할 정도의 국민체육을 갖추고 있는지, 어떤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트레이닝하는지 매우 궁금하다”며 꼭 뭔가를 하나라도 배워오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스포츠과학이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로서 ‘선체력 후기술’을 거듭 주장하는 정박사는 우리나라 선수들 모두 “머리는 쉬더라도 몸은 움직여라”는 어느 펜싱코치의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