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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뇌세포 되살린다

치매도 해결, 머리도 좋아질 수 있어

한번 망가진 뇌는 결코 재생되는 일이 없다는게 학계의 정설이었다.하지만 이 학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실험결과들이 속출하고 있다.생쥐와 원숭이는 물론 사람의 경우에도 뇌세포가 새롭게 생성된다는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한때 세계 헤비급 복싱의 왕으로 군림하며 ‘건강과 야성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무하마드 알리(58)가 남긴 말이다. 그런데 그는 현재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경직되는 파킨슨병에 시달리고 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뇌세포가 손상돼 발생하는 대표적인 뇌질환의 일종이다. 알리가 현역 시절 머리를 많이 두드려 맞은 탓에 뇌세포가 파괴돼 발병한 것으로 추측된다.

 

알리처럼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건강한 사람이라면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키는 자연적인 치유력이 뛰어나지 않을까. 만일 알리가 피부나 뼈에 상처를 입었다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빨리 정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뇌는 다르다. 뇌세포는 어떤 경우에도 한번 파괴되면 재생되지 않는다. 20세기 초 스페인의 신경생물학자 라몬 카잘이 “포유동물의 경우 한번 손상된 중추신경계 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이후 과학자들에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뇌에서 각종 지적 정보를 처리하는 주인공인 뉴런.사람의 경우 출생 후에는 더 이상 증식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그 반대 증거가 나오고 있다.


특별 대접 받은 생쥐의 지능


그런데 최근 기존의 학설을 뒤엎는 증거가 제시됐다. 1999년 10월 15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프린스턴대학 뇌연구실장 엘리자베스 굴드 박사의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굴드 박사는 어른 원숭이를 대상으로 행한 실험에서, 지적 기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에 매일 수천개의 새로운 뇌세포가 생성되고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에도 뇌세포가 계속 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린 환자의 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뇌세포는 크게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주인공인 신경세포(뉴런, neuron)와 그 보조자인 신경교세포(glia)다.

 

뉴런은 인식이나 기억과 같은 복잡한 지적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담당하며, 보통 한 사람의 뇌에 1백40억개 정도가 존재한다(흔히 언급하는 뇌세포는 바로 뉴런을 뜻한다). 이에 비해 신경교세포는 뉴런보다 10배 정도 많이 존재하지만,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뉴런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등의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추측되고 있다.

 

뉴런과 신경교세포는 모두 신경기간세포(neural stem cell)로부터 분화된다. 흥미롭게도 사람의 경우 뉴런의 증식은 임신 5주에서 20주까지, 그리고 신경교세포의 경우 생후 2개월에 최대치를 기록한다. 이후 뉴런과 신경교세포 모두 증식하는 일이 없다는게 정설이었다. 단지 신경교세포는 뉴런과 달리 뇌가 상처를 입었을 때 새롭게 증식한다는 점은 알려져 있었다.

 

굴드 박사가 주목한 곳은 원숭이 뇌 가운데에 액체로 가득찬 방들 위쪽에 위치한 부위다. 최근 신경기간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알려진 장소다. 중요한 점은 이 신경기간세포가 뇌의 주인공인 뉴런으로 발달하는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쓸모 없는’ 신경교세포로 분화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경기간세포는 대뇌피질로 서서히 이동해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서 신경기간세포가 뉴런으로 발달했다. 굴드 박사는 특히 새로운 뉴런이 대뇌피질 가운데 기억이 저장되는 곳과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곳, 그리고 시각적인 인지를 담당하는 두곳 등 모두 네군데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원숭이의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세월이 지나도 계속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일까. 만일 뉴런의 재생이 많이 일어난 원숭이와 보통 원숭이의 지적 능력을 비교한다면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굴드 박사의 실험만으로는 이런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이에 비해 생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실험들은 보다 풍부한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실 굴드 박사의 실험은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960년대 신경생물학자 알트만은 이미 생쥐의 경우 출산 이후에 뇌의 특정 부위 3곳(대뇌의 뇌실 아래와 해마 일부, 그리고 소뇌의 바깥 부분)에서 뉴런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점을 밝혔다.

 

이후 과학자들은 생쥐에게 새로 생성된 뉴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알아내기 시작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생쥐에게 ‘특별 예우’를 갖춰 쾌적하고 놀이기구가 많은 공간에서 자라게 했다. 그리고 이들을 먹이와 물만 제공되는 보통의 환경에서 자라는 생쥐와 비교했다. 흥미롭게도 특별 대접을 받은 생쥐의 경우 해마 부위의 뉴런이 더 많이 생겼다. 그리고 이들에게 학습력과 기억력을 테스트하자 보통의 쥐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를 나타냈다. 그렇다면 새롭게 재생되는 뉴런은 지적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환경에 따라 재생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알리(오른쪽)는 현역 시절 머리를 많이 많은 탓에 파킨슨병에 걸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식이 필요한 이유

 

한편 뉴런이 재생되는 보다 확실한 이유가 국내 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1998년 연세대 의대 소아과의 박국인 교수는 뇌에 손상이 일어났을때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뉴런이 재생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박교수는 생쥐 대뇌의 좌우반구 중 한쪽에 뇌졸중을 일으키고, 신경기간세포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관찰했다. 보통의 경우 신경기간세포는 뇌실 아래에서 증식이 시작돼 앞쪽 코부위로 이동해 뉴런으로 분화한다. 그런데 박교수의 실험에서는 이동하는 신경기간세포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상당량의 신경기간세포가 뇌졸중이 발생한 부위로 이동했다. 더욱이 손상을 입지 않은 다른쪽 반구에서도 신경기간세포가 상처 부위를 향해 움직였다. 손상이 발생한 부위를 뇌 스스로 치유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파킨슨병을 비롯한 각종 뇌질환은 불치의 병으로 남아있을까. 불행하게도 뉴런이 재생하는 양이 병을 치료하기에는 너무도 적다. 박교수는 “뇌에 충격이 가해지면 일시적으로 태아시절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이 충격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뉴런의 재생은 곧 멈추고 만다”고 설명한다. 병을 치유하는데 자연적인 재생으로는 뉴런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뇌질환 환자를 치료할 때 현실적으로 많이 쓰이는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조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뇌의 특정 부위별로 뉴런의 종류는 다양할 것이다. 환자에 따라 이식하는 뉴런의 종류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를 일일이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문제의 해결점은 뉴런과 신경교세포의 ‘어머니’에 해당하는 신경기간세포에서 찾아졌다. 1999년 6월 미국 하버드대학 의대의 신경과전문의 에번 스나이더 박사는 신경기간세포를 상처 부위에 이식할 경우 필요한 종류의 뉴런을 모두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스나이더 박사는 생쥐 수정란에 유전자조작을 가해 신경교세포의 일종(희돌기교세포)을 생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생후 2-3주에 이르면 몸을 많이 떠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스나이더 박사는 이 생쥐에서 태어난 새끼들에게 신경기간세포를 주입했다. 3주 후 신경기간세포를 이식한 생쥐 가운데 60%가 몸을 떨지 않았다. 이들의 뇌를 검사한 결과 주입된 신경기간세포는 희돌기교세포로 변해 있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행해졌다. 1999년 11월 9일 연세대 의대 박국인 교수는 사람의 신경기간세포를 뇌졸중을 일으킨 생쥐에 이식한 결과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임신 15주에 인공유산된 태아의 뇌에서 신경기간세포를 채취해 이를 생쥐의 뇌손상 부위에 이식했다. 그러자 손상 부위에서 신경기간세포가 성공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한편 이번 실험의 성공에는 또다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신경기간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실험을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유산된 태아로부터 얻는 뇌조직 정도의 양으로는 수많은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부족한 부분을 어떤 방법으로 메꿀 것인가가 과학자들의 당면한 관건이었다. 박교수는 신경기간세포를 유전공학 기법으로 처리해 대량으로 복제한 후 1년 이상 배양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람 뇌에서도 발견


뉴런의 재생에 대한 현재까지의 연구는 대부분 동물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사람에게 적용되기에는 수많은 안전성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한다. 다만 사람의 경우에도 뉴런이 재생된다는 점은 밝혀진 상태다.

 

199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솔크연구소는 성인의 뇌에서 새로운 뉴런이 생성된다는 점이 실험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 대상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환자들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실험에 참여하겠다는 동의를 얻은 후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해마 부위에서 새로운 뉴런이 생성된다는 점이 발견됐다.

 

모든 사람의 뇌에서 뉴런이 재생되고 있는지, 그리고 신경기간세포를 인간에게 무사히 이식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20세기가 남긴 최대 불치병의 하나로 꼽히는 뇌질환을 극복하는 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점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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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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