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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몰아치고 있는 벤처의 바람은 꺾일 줄을 보른다.연일 코스닥에서는 벤처기업의 주가가 폭등학고 있고,대학 벤처동아리와 창업지원센터에서는 미래의 억만장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그러나 벤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W이론의 창시자인 서울대 이면우 교수의 벤처특강과 벤처기업가로 속사정을 들어본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인간공학연구실 이면우 교수.그가 만든 제품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밀레니엄 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디어 승부사’.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55세)에게 붙여보고 싶은 닉네임이다. 그러나 본인은 정작 ‘백수(白手)의 왕자’라고 토로한다. 최근 사재를 몽땅 털어 벤처기업에 투자하다보니 빈손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면우 교수는 ‘최연소’(25세) 교수로 서울대에 입성해 산업공학과를 만든 인물. 그의 유명세는 히트상품을 만들기로 이어졌다. 올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것만도 아동용 컴퓨터인 코보(KOBO), 음성인식 전자레인지, 손빨래세탁기, 하이필정수기, 자주형 진공청소기, 따로따로냉장고, 그리고 ET-TV 등 7가지나 있다.

 

그 중에서 3가지는 미국 뉴욕타임스의 밀레니엄 상품으로 선정됐다. 음성인식 전자레인지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기억했다가 그 명령에 따라 조리해주는 미래형 전자레인지이고, 자주형 진공청소기는 스스로 알아서 청소를 해주고 청소가 끝나면 한쪽 구석에 가서 쉬는 지능형 진공청소기이다. ET-TV 역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드라마나 뉴스를 볼 때는 사람의 피부색을 살려주고,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자연의 색을 강조해준다. 게다가 가족들이 보고 있지 않으면 침묵을 지키고, 아예 보는 사람이 없으면 저절로 꺼진다.

 

이면우 교수를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 용기있는 학자, 혹은 ‘겁없이 튀는’ 교수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의 ‘서울대학교 공대 백서’(1991년)는 경쟁력이 없는 서울대 공대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 그러나 이 책의 내용 때문에 평생 구경할까말까 하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끌려가 매맛을 봐야 했다. 두번째 저서인 ‘W이론을 만들자’(1992년)에서는 무분별하게 외국 것을 수입하지 말고 한국실정에 맞는 독창적인 기업철학을 세워 신바람을 일으키자고 주장했다. 덕분에 내용은 몰라도 ‘W이론의 이면우’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신창조론’을 써 한국 산학협동의 현실, 벤처기업 육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어쩌면 이 책은 그에게 새로운 길을 걷게 한 자존심의 결정체인지 모른다.

 

히트상품 제조기, 유명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던 이 교수에게 부와 명성, 그리고 학자로서의 존경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1998년 신창조론을 쓴 이후 돌연 벤처기업을 만들어겠다고 나선 것이다. 벤처기업이라면 말 그대로 위험부담이 큰 모험기업이 아닌가.


“교수가 연구나 하고 학생들이나 가르칠 것이지, 무슨 벤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생각의 한 구석에는 “이 교수가 왜 벤처를 만들었을까”하는 궁금증과 “대체 무슨 벤처일까”하는 호기심이 자리잡는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35동. 이곳에는 이면우 교수가 만든 벤처기업 ‘페이퍼매직’이 있다. 밤 12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가 본적이 없다는 이교수와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을 하고 찾아갔다. 앞서 궁금했던 생각을 노골적으로 끄집어내자, 이 교수 왈. “여기저기 다니며 벤처에 대해 강연하다보니,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말 잘하는 교수님이 직접 해보시라고.” 학계에 있는 교수가 벤처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 또 우리나라에서 벤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겪어보란 뜻. 물론 지나가는 말 중에는 정말로 이 교수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권하는 말도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교수의 벤처특강을 듣고 보면 이 교수에게 직접 벤처를 해보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여기서 그의 자존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페이퍼매직으로 만든 창경궁


철학과 이론적 바탕 필요

 

벤처는 제자들에게나 시키지, 직접 나서서 고생하는 이유가 뭔지를 묻자 이면우 교수는 대뜸 반문한다. “벤처가 뭔지 알아요. 또 우리나라에 벤처기업이 얼마나 있을 것 같습니까.” 질문만 하는 습성에 배여 있는 기자에겐 곤혹스런 질문이었다.

 

“흔히 벤처란 젊은 사람들이 혈기로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벤처라고 말할 때는 3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합니다. 우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개발해야 하고,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예를 들면 최근 인터넷기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의 야후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 기준에 맞는 벤처기업이 몇이나 될까.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제품, 국내시장을 겨냥한 제품,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벤처기업이 아니다. 부품을 국산화한 기업, 세계적인 벤처기업의 한국지사, 국내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제품을 만들어놓고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치는 중소기업 역시 벤처기업의 허울만 쓰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그러니 나름대로의 철학과 이론적인 바탕을 세우지 않고 무조건 벤처기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이 그에게는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에만 벤처를 꿈꾸는 40여개의 동아리가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정부에서 돈을 퍼부어 벤처기업을 육성한다고 하니까, 대학 1-2학년 학생들까지 벤처기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과연 벤처기업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을 우선 말려야 합니다.” 이 교수는 공부를 통해 실력을 기른 다음에 벤처를 시작하는 것이 정석(定石)임을 강조했다.

 

휴렛팩커드(HP)는 스탠퍼드대학에 재학 중인 윌리엄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가 만든 대표적인 벤처기업이다. 벤처기업의 신화를 일구고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휴렛팩커드가 처음 출발할 때에는 큰 힘을 실어준 프레드릭 터맨이라는 지도교수가 있었다. 터맨은 기술적인 지원은 물론 자금을 마련하는 일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휴렛과 팩커드를 도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생 벤처동아리에는 이들을 끌어줄 지도교수가 없다. 스승은 제자를 못 만나고, 제자는 스승을 찾지 못하는 가슴아픈 현실이다. 이 교수는 대학 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도교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다고 이 교수는 단언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벤처기업에는 이를 구성하는 세가지 동물이 있다. 첫째는 몽상가라는 동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빌 게이츠, 일본의 소프트방크를 세운 손정의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모으는 일을 한다. 둘째는 분석가라는 동물이다. 빌 게이츠를 도왔던 폴 앨런, 제리 양과 함께 야후를 세운 데이빗 파일로와 같은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동물은 돈냄새를 맡을 줄 아는 보부상이다. 뉴욕의 월가를 배회하거나, 여의도 증권가를 누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대학 벤처동아리를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일류대학에는 분석가들만 모였습니다. 그리고 일반대학에는 몽상가들만 판을 치지요.” 그러니 지게와 지겟다리처럼 역할분담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우리나라 대학벤처의 현실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왜곡된 국내 벤처기업

 

벤처기업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벤처기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요즘 벤처기업을 만들지 못하면 바보로 취급됩니다. 생각해보세요. 정부가 막대한 재원을 마련해놓고 벤처기업을 만들면 지원해준다는데, 손들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계에서, 아니 인류역사상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꼬이고 있다고 것.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은 창업투자회사(창투사)에서 돈을 지원받는 회사로 규정된다. 그런데 창투사에 가면 벤처기업의 내용과 전망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담보부터 설정하려고 한다. 돈을 투자해야 할 곳이 돈놀이(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벤처기업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창투사를 찾아간 이교수도 담보를 제공하지 못해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게다가 창투사로부터 지원을 못 받았으니 정부의 벤처자금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따라서 벤처기업의 출발은 처음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기술만으로는 안되기 때문에 편법을 써서 창투사의 자금을 받아낸다는 것.

 

어렵사리 창투사를 거쳐 벤처자금을 얻으면, 정부로부터 추가 벤처자금을 받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벤처기업들이 그 맛을 알고부터 벤처보다 ‘눈먼’ 돈으로 치부되는 정부돈에 더 혈안이라는 사실이다. 휴렛과 팩커드가 회사를 세울 때 그들의 수중에는 5백38달러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부이겠지만 벤처기업 중에는 정부로부터 탄탄한 자금을 얻다보니 개발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돈을 만졌는데 밤새워 졸음을 참으며 개발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벤처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것이다. 또 돈을 구하기 위해 얼굴을 돌리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설득하고, 마지막에는 이것이 아니고서는 살 길이 없다는 절망적 몸부림을 해야 한다. 그러한 고생은 벤처기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거쳐야할 관문인데, 정부가 그 물을 흐려놓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의 아픔도 있다. 벤처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발전한다고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나선다는 입장이다. 인프라가 잘 발달돼 있는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이면우 교수는 “그래서 잘된 벤처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느냐”고 단호하게 말한다. 벤처기업은 역시 벤처의 정신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철학인 것이다.

결국 이면우 교수는 칼을 뽑았다. 누구보다도 벤처기업의 속성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또 벤처의 정신으로 진짜 벤처기업을 해보겠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페이퍼매직은 풀과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건축물을 조립할 수 있다.


출사표 페이퍼매직

 

그는 1998년 페이퍼매직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투자한 돈만해도 20여억원에 이른다. 페이퍼매직은 풀과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미리 잘라놓은 종이부품를 조립하는 문화상품. 이 분야에서 이 교수는 세계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세계의 문화유산을 이것을 이용해 모두 만드는 것.

 

그러나 출발은 우리의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거북선, 판옥선, 그리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창덕궁을 테마로 잡은 것이다. 이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건축했던 조상의 슬기와, 풀과 가위를 사용하지 않고 각종 건축물을 만드는 페이퍼매직의 철학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지금까지 완성한 것은 15종. 지난해에는 투자한 돈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4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사장으로 변신한 이 교수는 내년부터 바티칸성전, 피라미드 등 세계유산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에서 대희년(大喜年)이라고 부르는 2000년에는 바티칸을 방문하는 가톨릭신자들이 5천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또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매년 이집트를 보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페이퍼매직은 세계문화유산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꿈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되새겨준다. 그만큼 시장이 넓다는 뜻이다.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까요"하는 질문에 이 교수는 "연간 1조원이 목표"라고 말했다.이어 기자는 '언제쯤' 이란 말을 꺼내다 그만 접고 말았다.이 교수에게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언젠가는 그만큼 벌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고,그보다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벤처기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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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WLWOAKS 기자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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