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Ⅱ. 체질인류학/신석기시대인

독특한 생김새의 머리뼈 출현

한국인 머리뼈는 앞뒤 폭이 좁고 위아래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그렇다면 이런 머리뼈를 갖춘 옛사람이 한국인의 조상일 것이다.한반도에 살던 신석기시대의 사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먼옛날 한반도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키가 컸을까 작았을까. 얼굴은 둥그스름했을까 네모 형태였을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한국인의 조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이다. 한반도에 살았다고 해서 모두 한국인의 조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조상으로 자리매겨지기 위해서는 체질적 특성이 현대 한국인과 비슷해야 한다. 체질인류학은 바로 이 땅에 살았던 옛사람들의 골격이나 해부학적 특성을 탐구하는 분야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체질을 바탕으로 갈래를 찾아내고 옛사람과의 진화 관계를 밝히는데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뼈화석을 찾아 비교하는 일이다. 즉 옛사람 뼈의 크기와 생김새가 어떤지를 현대인의 특성에 견주어보는 것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뼈로부터 추출한 DNA를 이용해 민족의 계보를 밝히는 일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런 첨단 기법의 적용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옛사람에 대한 체질인류학적 연구는 주로 뼈화석의 재기(계측)와 생김새를 탐구하는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짧고 높은 머리가 특징


하지만 이 작업 역시 만만치는 않다. 현재 한국인의 체질 특성을 바탕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해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에 걸쳐 발굴된 뼈화석을 통해 옛사람들의 생김새가 어땠는지를 밝혀야 한다. 또 한반도 주변에 살던 같은 시기의 주민 모습과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찾아야 한다.

 

체질인류학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위는 머리뼈다. 머리뼈의 생김새를 가장 잘 나타내는 항목을 살펴보면 옛사람의 생김새 특징을 밝힐 수 있다.

 

지금까지 현대 한국인의 체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머리뼈가 다른 주민들과 구별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머리의 길이가 짧고 높이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여기서 머리의 길이는 이마에서 뒤통수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높이는 아래턱뼈 윗부분의 ‘으뜸점’에서 정수리까지의 거리를 의미한다. 특히 머리뼈의 높이가 높은 것은 구석기시대인부터 현대 한국인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집단의 사람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된다.

 

이 특징들이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출토된 인골에서 나타나는지를 조사하면 한국인의 기원과 형성을 설명하는 작은 실마리가 밝혀질 수 있다. 연구된 머리뼈의 모습을 보면 ‘짧은 머리’는 신석기시대에 와서 나타나며 ‘높은 머리’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서 많이 발생한다. 얼굴의 넓이와 높이 같은 또다른 특징들은 신석기시대 이후 별다른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분명 신석기시대를 기점으로 체질인류학적인 어떤 변화가 생긴 셈이다. 이 변화가 환경 변화에 따른 진화의 산물인지, 아니면 새로운 유전자가 유입된 때문인지를 밝히려면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새로운 유전자의 유입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주변 지역의 주민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구석기시대 머리뼈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추위에 잘 적응하는 이유


이에 비해 신석기시대에 한반도에서 출토된 머리뼈는 북중국 특히 산동·용산문화를 담당했던 집단과 매우 비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 청동기시대의 머리뼈들은 중국의 하북성과 길림성, 그리고 요녕성 출토 머리뼈와 가깝게 나타난다.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당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 분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기후에 적응해온 체질적 특성 역시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설명하는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한국인은 추위에 대해 비교적 잘 견디고 있다. 이 특성과 유전적 요인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한국인의 시작이 북반구의 바이칼 호수 근처가 아니었느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최근 북한의 연구자들은 한국인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시작됐다는 ‘자생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는 실제로 구석기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출토된 화석에 관한 고인류학 연구와 고고학 연구, 그리고 슬기사람의 기원에 관한 연구 성과를 종합해 설명해야 한다.

 

오늘날 현생인류인 슬기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단일지역기원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의 고인류학연구에 따르면 20만년-15만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난 이 현대인은 10만년 전을 전후해 서아시아 지역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으로부터 이들의 이동경로를 크게 세방향으로 가정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한반도가 포함된 동북아시아를 향한 한갈래는 3만년 전 이후 형성됐다고 추측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시작되는 2만년 전을 전후해서 황해가 육지로 변하자 이 지역에 도달한 슬기사람의 일부가 한반도와 일본으로 펴져 나갔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서남해 지방과 일부 내륙지방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서 발견되는 작은 석기에서 공통성이 발견되는 점이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시기에 같은 문화전통을 지닌 후기 구석기문화 담당자들이 동북아시아 일대에 작은 집단을 이루며 널리 펴져 살았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슬기사람은 이 지역에서 먼저 살고 있던 호모 하이델베르겐스(Homo heidelbergensis) 단계의 옛인류와 함께 거주했으며, 이때 유전자의 교환이 발생했을 것이다.

 

체질인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옛 서양인의 모습을 복우너하는 장면.


외부 유전자가 유입

 

한편 2만년 전을 전후해 만주지역을 통과한 슬기사람의 일부는 바이칼호 주변 지역에 도달했다. 이 지역에는 2만년-1만년 전 사이에 시베리아 초원지대를 지나 동쪽으로 이동해온 유럽의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들끼리의 유전자 교류 역시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지막 빙하가 물러가고 기후가 따뜻해지자 동북아시아의 환경과 생태조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인류와 동물들은 더이상 황해를 지나 이동할 수 없게 됐으며, 오직 한반도 북부 지역이 대륙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런 상황에서 빙하기에 한반도에 살던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일부는 이 지역에 고립됐다. 추운 빙하기에 자연스럽게 얻은 적응력은 체질적으로 보존된 채. 그리고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아마도 외부 유전자가 유입됨에 따라 머리뼈의 생김새를 비롯한 체질적 특성이 변화했을 것이다.

 

이런 연구를 종합하면 한국인의 뿌리는 추운 시기에 동북아시아에 펴져 살던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의 한 갈래였으며, 빙하기가 끝나고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한반도에 고립된 이 갈래에 새로운 유전인자가 유입돼 한국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추측된다. 이들이 지닌 체질상 특징은 청동기시대로 이어졌으며 이후 이웃하는 다른 집단과 비교적 오랫동안 떨어져 하나의 독특한 유전집단을 이루었기에 주변의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게 됐을 것으로 가늠된다.


유적에서 발굴된 옛사람 머리뼈의 특성을 컴퓨터로 분석하는 모습.이 자료는 머리뼈의 주인이 어느 종족에 속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다.

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선주 교수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문화인류학
  • 생명과학·생명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