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국내에서 최초로 신약이 탄생했다. 산파의 주역은 SK케미칼의 김대기 박사(상무·43). 서울대 석사(약품화학)와 뉴욕 주립대 박사(의약화학) 출신으로 한국화학연구소를 거쳐 1989년부터 SK케미칼에서 연구를 이끌고 있다. 그는 1990년 새로운 항암제가 화학적으로 어떤 구조를 갖춰야하는지에 대한 디자인 설계에 착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직접 항암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했다. 이후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이 무난히 진행되도록 전반적인 연구 흐름을 주도해 왔다. 투여된 총 연구개발비는 81억원에 달했다. 10여년 걸친 지난한 과정을 끈질기게 이끌어와 마침내 '신약 1호'의 영광을 안은 연구팀의 주역 김대기 박사와 대화를 나눴다.
선플라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선은 영어로 태양(sun)이란 뜻이고, 플라는 백금의 영어명(platinum)에서 머리말을 딴 것이다. 백금이 포함된 항암제로 암환자들에게 태양빛을 비추듯 밝은 희망을 주겠다는 뜻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백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선플라는 흔히 백금착체 항암제로 불린다. 백금착체란 말이 붙는 이유는 분자구조의 중심에 백금 원자가 있기 때문이다. 백금은 암세포의 DNA가 복제를 하기 위해 약간 풀렸을 때 그 사이에 끼어들어가 붙어버린다. 이때 암세포의 DNA는 더이상 풀어지지 않아 DNA의 복제가 일어날 수 없다. 그 결과 암세포의 분열이 진행될 수 없다.
백금을 이용한 약들이 이미 개발돼 있다고 하는데, 이들과의 차이는?
76년에 시스플라틴, 86년에 카보플라틴이 개발됐다. 그런데 시스플라틴은 항암효과는 탁월하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부작용이 심했다. 반대로 카보플라틴은 독성은 줄었지만 항암효과가 낮았다. 선플라는 백금을 제외한 나머지 화학구조를 전부 바꿔 양쪽의 장점만을 취했다.
임상시험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나
선플라는 위암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만 실시했다. 흔히 항암제의 효능은 암덩어리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환자의 비율로 평가한다. 선플라의 경우 1백명 중 34명에게서 이런 효과가 나타났다. 약효 면에서 평균 수준에 달하는 값이다. 그러면서도 머리털이 빠지거나 백혈구와 혈소판의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일반적인 부작용이 적다는게 선플라의 장점이다. 다른 암에 대해서도 잘 적용되는지 알려면 별도의 시험과정을 거쳐야 한다.
선플라가 1달 전에 시판됐는데, 현재까지의 치료 결과는 어떤가
항암제는 일반적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1달에 1회꼴로 환자에게 투여되기 때문에 아직 공식적인 결과를 말하기는 이르다. 보통 4회 정도 투여하고 암덩어리의 크기를 조사함으로써 항암제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선플라로 1백여명 정도가 치료중인데, 부작용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비용은 어느 정도 필요한가
기존의 항암제에 비해 많이 저렴하다는 점이 선플라의 또다른 장점이다. 보통 외국산 항암제의 경우 1개월에 2백-3백만원이 필요하다. 이에 선플라는 80만원 수준이다. 보험이 적용되면 불과 13만원 정도로 값이 줄어든다.
국내에서 최초의 신약을 개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 연구원은 본인을 포함한 2명뿐이었다. 그러나 실험이 진전되면서 학계나 연구소와의 연계가 형성돼 신약 개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 일본의 경우 이미 70년에 신약을 개발했는데, 그 비결은 명실상부한 산학연의 연계였다고 본다. 선플라의 경우도 SK케미칼과 함께 연구에 몰입한 서울 의대 내과학교실 김노경 교수팀, 약리학교실 신상구 교수팀 등의 힘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