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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혁명 일으킨 방사선

방사선(radiation)이란 말처럼 자주 쓰면서 그 뜻을 풀기가 어려운 것도 드물다. 방사선 중 가장 대표적인 X선은 자외선이나 빛(가시광선)과 같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파장의 길이는 1-1천nm(1nm = ${10}^{-9}$m) 정도. 결국 자외선과 빛도 방사선이란 말이 된다. 이들은 X선처럼 인체나 생물에게 영향을 줄 만큼 에너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방사선이라고 의식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렇다고 빛이나 자외선을 깔봐선 안된다.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유전병이 있다.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많이 쬐면 DNA가 손상을 입어 생기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햇빛을 쬐면 과민반응을 일으켜 피부에 붉은 점이 생기고 꺼칠해진다. 심할 경우에는 피부암으로 발전해 목숨을 잃는다. 또 햇빛을 많이 쬐면 화상을 입는다. 비록 X선보다 에너지는 작지만 자외선이나 빛도 많이 쬐면 위험한 방사선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감마(γ)선은 X선과 더불어 대표적인 방사선이다. 감마선의 파장은 X선보다 짧으며 그 에너지는 방사선 중에서 가장 크다. X선과 감마선을 아는 사람들은 방사선이 에너지가 큰 전자기 ‘파동’(wave)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방사선 중에는 알파(α)선과 베타(β)선처럼 입자(particle)로 이뤄진 것들이 있어 이렇게 정의하면 곤란하다.

감마선과 더불어 알파선과 베타선은 주로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나온다. 알파선은 전자를 떼어버린 헬륨핵(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뤄짐)이고, 베타선은 큰 에너지를 가진 전자의 흐름이다. 또 원자핵이 분열하면서 중성자의 흐름인 중성자선도 나오는데 이것 역시 중요한 방사선이다. 결국 방사선이란 X선,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중성자선 등처럼 ‘큰 에너지를 가진 파동이나 입자’라고 애매하게 정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나 맛도 없으니 방사선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더욱 어렵다.

애매하지만 방사선을 특별하게 다루는 이유는 인체나 생물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파선은 사람의 피부(피부를 덮고 있는 얇은 죽은 세포층이 보호막 역할을 함)를 뚫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하지만 알파선을 내는 미세한 방사성물질이 음식물이나 호흡기관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면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와 생명의 비밀을 간직한 DNA를 파괴한다. 방사선은 많이 쐴 경우에 생명을 잃는다. 또 DNA를 파괴해 2세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무서운 존재이다.

방사선의 투과력은 알파선, 베타선, X선, 감마선 순으로 커진다(그림1). 베타선은 종이를 뚫지만 알루미늄판은 뚫지 못하다. 그러나 감마선의 경우에는 콘크리트로 막아야 할 정도다. 투과력이 큰 방사선일수록 에너지가 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림) 방사선과 투과력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나 생물은 이러한 방사선을 피할 수가 없다. 자연계에 너무나 많은 방사선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자연 방사선은 우주, 공기, 땅속에 널리 퍼져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위험한 방사선들을 지구 대기가 걸러준다는 점.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는 연간 방사선량은 약 2.4밀리시버트. X선을 한번 촬영하면 1밀리시버트를 쐰다고 했을 때 1년에 평균 2.4번 가량 X선 촬영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 몸속에 손상된 DNA를 고쳐주는 효소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효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사선을 많이 쬐는 경우다.

방사선을 많이 쬐게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병원, 원자력연구소,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방사성물질을 다루는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방사선을 많이 내는 방사성물질을 다루고 있다. 방사성물질이란 원자핵이 불안전해 일정시간이 지나면 붕괴하는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들을 말한다. 하지만 수소와 같은 원소이면서 질량이 세배인 트리튬처럼 가벼운 원소 중에 방사선을 내는 것들도 있다.

비록 방사선은 위험하지만 무용지물은 아니다. 만약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뢴트겐(1845-1923)이 X선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20세기 의학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X선은 사람에게 칼을 대지 않고도 몸속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전투를 하다가 다친 병사의 몸에서 폭탄 파편을 찾아주었고, 어느 부위의 뼈가 부러졌는지도 알려주었다. 그래서 X선 촬영은 병원에서 필수코스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X선 촬영을 많이 하면 몸에 좋지는 않다.

프랑스의 여성물리학자 마리 퀴리(1867-1934)는 방사성물질인 라듐을 연구해 두번에 걸쳐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그녀는 라듐을 연구하던 도중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피기 위해 자신의 팔 위에 라듐을 얹어놓고 관찰한 적이 있다. 그 결과 퀴리의 팔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라듐에서 빠져나온 알파선 때문이었다. 오늘날 의학계에서는 이 실험을 응용해 암세포를 퇴치하는데 알파선을 활용하고 있다.

중성자선을 제외한 보통의 방사선, 즉 X선,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등은 어떤 물질에 집중적으로 쪼여도 그 물질이 방사성물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중성자는 방사선을 내지 않는 원자의 핵을 건드려 방사성물질로 만든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면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미국에서 감마선을 이용해 감자를 보관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 그런 예다. 생감자에 감마선을 쪼이면 이들은 생감자 속으로 사라지거나 감자를 구성하는 원자들 사이로 통과해버린다. 즉 감자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살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잘 썩는 감자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밖에도 비파괴 검사, 물질 연구 등 방사선의 쓰임새는 매우 넓다. 결국 방사선이란 이를 어떻게 쓰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유용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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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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