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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밀레니엄 프런티어와의 만남 : 5. 특허심사관 안소영


특허심사관 안소영


6시에 눈을 뜨고 30분간 ‘오늘의 양식’이란 책을 읽으며 인간성 회복의 시간을 가진다. 왜? 직업상 결점을 자꾸 보기 때문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아이를 깨워 씻게 하고, 아침 준비를 한다. 물론 있는 것을 디스플레이 하는 정도. 전쟁터 같은 집을 뒤로 하고 9시쯤 회사에 도착한다. 오늘은 어제 심사하던 것을 마쳐야하므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후 제일 먼저 인터넷을 통해 생명공학분야 특허와 관련된 국제적 동향을 파악한다. 이것을 제대로 못하면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치기 십상이다. 출원된 내용을 보며 기준에 적합한지를 검토하면서 국내외 특허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다. 점심 먹고 잠깐 신문에 자신이 처리했거나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실렸나 확인한다. 하품을 하며 심사서류를 덮을 때 벽시계의 바늘은 밤 10시 30분을 가리킨다.

이상은 특허심사관 특채 1기인 안소영박사(38)의 하루다. 특허심사관? 우선 이름에서 공무원이란 느낌이 들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말에 웃으면서 여유롭게 반문한다. “새롭게 밀려오는 신기술을 가장 먼저 접하는 그 짜릿함은 아마 아무도 모를걸요?”

일상생활에서 개인과 특허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내가 먹은 이 약이 어떤 특허를 받았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특허심사관인 그도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할 때까지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다. 하지만 기업간, 국가간에 특허는 엄청난 이익이 걸린 전장과 같다. 특히 21세기에는 특허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특허전쟁에서 신기술을 감별해내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특허심사관이다.

과학지식, 분석력, 법률지식의 삼박자

특허란 발명자가 자신의 기술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발명자에게 그 발명을 일정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특권을 주는 것이다. 특허심사관은 출원한 내용이 제3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충분히 공개했는지, 관련된 선행기술과 비교해 신규성과 진보성이 있는지, 산업적으로 이용가능한지를 판단해야한다. 따라서 기술내용을 모르고 이 일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근래 출원된 내용이 점차 전문화되면서 심사관의 전문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현재 특허청 3백40명의 특허심사관 중에 약 1백20명 정도가 박사특채자다. 앞으로 이 비율은 점점 증가할 추세. 전문성이 점점 강조됨을 반영한다.

여기에 출원된 기술을 선행기술과 비교해 판단해야하는 정확한 분석력까지 요구된다. 이 점은 약학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무수한 실험에 매달렸던 그에게는 특혜처럼 주어진 면이다. 보통 특허 1건을 처리하는데 이틀이 걸리므로 하루하루의 삶이 승부사 같다고 한다. “각 건에 관한 한 최초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내 결정이 발명자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이익과도 관련되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또 최종적인 결론은 특허법에 기초해야 하므로 법률적 지식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이공계 박사들한테 법률적 지식을 기대하기란 곤란하다. 하지만 3개월간의 심사관 교육이 이를 해결해준다. 처음에는 동료와 선배로부터 조언을 들으며 일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란다. 그 이후는 일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해결해준다. “심사관에게 있어 경험은 최대의 재산이다”며 자신의 지적재산을 은근히 과시한다.

심사관은 흰머리?

그는 유전공학과에서 생명체를 이용해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특허를 처리하고 있다. 특허청에는 이외에도 정밀기계, 유기화학, 무기화학, 정밀화학, 약품화학, 농림수산, 반도체, 전기, 정보, 영상기기, 컴퓨터 분야에서 심사관들이 매 순간 승부사의 마음으로 출원된 내용을 심사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특허청에서 사무원과 심사관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이겠지만 흰머리와 탈모 증상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심사관이라고 한다. 또 결함을 보고 따지기 좋아해 성격이 나쁘다는 말까지 듣는다며 우울해한다. 하지만 보람은 크다고 이내 목소리를 키운다.

직업 자랑을 해보라고 권했다. “심사관 각자가 독립적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고 늘 첨단기술을 접해야하므로 항상 공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서 지낸다.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것이 서울대 암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얻은 행복일까. 역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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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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