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을 만들던 기술자들이 칩의 회로 사이에 새겨 놓았던 ‘숨은 그림’들이 얼마 전부터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광학현미경으로 봐야만 드러나는 이 그림들은 미키마우스에서부터 딜버트, 요트, 농구하는 모습, 꽃모양까지 실로 다양하다(이 그림들을 보고 싶으면 http://micro.magnet.fsu.edu/creatures로 가면 된다). 이 그림에 대해 사람들은 반도체 설계를 맡은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예술’로 생각하고 마치 낙관을 찍듯이 그려 넣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자들은 인공물에 ‘무언가’를 담아내고 있고, 이 ‘무언가’에는 온갖 것들, 이를테면 기술자들의 편견과 철학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한 예로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뉴욕의 도로, 다리, 공원 등을 건설한 로버트 모제스라는 건축가를 들 수 있다. 모제스는 롱아일랜드의 존스비치공원(자신이 ‘대중의 공원’이라고 칭했다)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매우 낮게 설계해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이 밑을 통과할 수 없게, 즉 공원을 지나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중상류계층의 백인은 자신들의 자동차를 타고 공원을 한가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주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저소득층이나 흑인 같은 소수인종은 공원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모제스의 사회계급과 인종에 대한 편견은 굳건한 구조물 속에 구현돼 사회의 불평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것을 그저 편리하게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술에 무엇을 담아내려 했는 지에도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