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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등장

최초의 수상기는 전구


베어드가 닙코프원판을 이용해 발명한 기계식 TV장치.


셀렌(Se, 원소번호 34)은 1817년 스웨덴의 화학자 이왼스 야코브 베르젤리우스(1779 -1848)가 은백색 금속광택이 나는 텔루륨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가열하면 무 썩는 냄새가 나는 보잘 것 없는 셀렌이 광전효과(빛을 비추면 전자가 나오는 현상)를 낸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1873년. 아일랜드의 젊은 전신기사 조지프 메이는 처음으로 셀렌에 빛을 쬐면 저항값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빛의 세기를 조절하면 전기적인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광전효과가 발견된지 2년 후 미국 보스턴에 사는 조지 케리는 영상을 옮기는데 이러한 성질을 활용했다. 그는 셀렌으로 수많은 광전지를 만들어 네모판에 붙이고, 각각의 광전지에 전선을 연결한 다음 다른 쪽에는 전구를 매달았다. 그리고 셀렌 광전지판 앞에 여러가지 모양의 물건을 세웠더니, 전구들의 점멸에 의해 전구판은 광전지판 앞에 세워놓은 것과 똑같은 물체의 윤곽을 그려냈다(그림). 영상을 멀리 전달하는 최초의 텔레비전은 이렇게 탄생했다. 소리를 전기로 전달하는 전화의 발명(1876년)보다 1년 앞선 것이었다.

영상을 전달하려면 동일한 면적에 화소가 많아야 좋은 화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케리의 영상전달기는 화소마다 각각 전선을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좋은 화상을 얻으려면 너무 많은 전선이 들어가는 게 최대 결점이었다.

케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1884년 독일 전기기술자 파울 고틀리베 닙코프(1860-1940)가 해결해냈다. 그는 셀렌 광전지판 앞에 24개의 구멍을 뚫은 원판을 두고 이를 모터로 돌렸다. 구멍을 통해 물체의 이미지를 담은 빛이 순차적으로 광전지에 도달하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신호 역시 순차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광전지에서 발생한 신호를 한개의 전선으로 다른 곳에 보낼 수 있었다. 전기신호를 수신하는 쪽에서는 역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재생하면 된다.

닙코프는 영상신호를 시차를 두고 보내더라도 잔상효과 때문에 전체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원리를 영화로부터 배웠다. 그가 개발한 주사 방식(왼쪽 위 화소에서 오른쪽 아래 화소까지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보내는 방식)은 텔레비전 발전에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닙코프의 영상전달장치는 ‘전기 망원경’(electric telescope)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전구로 물체의 이미지를 표현하는데는 문제가 많았다. 우선 당시에는 전기신호를 증폭하는 장치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구의 빛이 약했다. 결국 희미한 영상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1917년 전구를 대체할 네온등이 발명됐다. 네온등은 약한 전기신호에도 불구하고 밝았으며, 전기신호의 강약에 따라 밝기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닙코프의 전기 망원경을 상업화한 사람은 영국의 사업가 존 로지 베어드(1888-1946)였다. 비누, 젤리, 사탕 등의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그는 네온등이 발명되자 이를 이용한 텔레비전이 큰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925년 그는 아버지와 친구로부터 2백50파운드를 꿔 다락방에서 닙코프의 원판을 단 기계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제작했다. 연장을 넣어두던 낡은 상자로 모터의 받침대를 만들고, 빈 과자상자로 네온등을 넣는 케이스를 만들었다. 주사용 원판은 마분지를 잘라서 만들었고, 못쓰는 자전거에서 떼어낸 렌즈도 도움이 됐다. 이렇게 해서 흉물스럽게 태어난 텔레비전은 30개의 주사선을 가지고 1초에 10번씩 번쩍였다. 베어드는 이를 ‘텔레바이저’(televisor)라고 불렀다.

베어드가 텔레비전을 발명했다는 소문은 소매상점인 셀프리지 백화점까지 미쳤다. 셀프리지 백화점은 1주일에 20파운드를 줄테니 발명품을 백화점에 전시해달라고 그에게 제안했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텔레비전이 백화점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쇼로 전락하는 것이 싫었지만, 대중들의 반응도 볼겸 못이기는 척 승낙했다. 1926년 1월 26일 텔레비전은 마침내 대중 앞에 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록 화면은 작고 어두워서 영상이 겨우 보일 정도였으나, 하루 3번 전시되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백화점 앞에 줄을 섰다. 당시 최초의 텔레비전 스타는 ‘빌’이라고 하는 인형이었다. 그러나 텔레비전이 인기를 끌자 베어드는 출연료를 지급하고 조수였던 윌리엄 테인턴을 모델로 썼다.

영국 BBC방송이 베어드가 발명한 텔레바이저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TV방송을 실시한 것은 1929년 9월 30일이었다. 베어드는 텔레비전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연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특히 경마 중계방송은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트럭에 거대한 카메라를 싣고 말들이 뛰어달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베어드의 성공도 잠시. 화질이 좋지 않은 기계식 텔레비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자식 텔레비전의 상징은 브라운관. 독일 스트라스버그대학의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1850-1918)은 1897년 음극선관을 이용한 브라운관을 발명했다. 전자총에서 나온 빛이 스크린에 닿으면 그곳에 미리 발라놓은 인이 발광한다. 또 빛이 통하는 길목에 자기 코일을 감아놓으면 전자선을 화면의 상하좌우로 보낼 수가 있다. 이를 이용해 스크린에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것이 바로 브라운관이다.

브라운관의 위력을 눈치챈 사람은 러시아 출신의 미국 공학자 블라디미르 코스마 즈보리킨(1889 -1982)이었다. 그는 1924년 브라운관을 이용해 원시적인 전자식 텔레비전을 개발했다. 전자식 텔레비전의 진가를 알아본 곳은 즈보리킨이 일하던 웨스팅하우스사가 아니라 RCA사였다. RCA사는 텔레비전이 장차 모든 가정에 보급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즈보리킨에게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 1931년 7월 21일 전자식 텔레비전은 첫 시험방송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 기계식을 고집하던 영국의 BBC 방송은 1936년 전자식 텔레비전으로 교체했다.

199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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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조사연구팀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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