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사건을 해결하는 또다른 열쇠는 현장에 있던 증인을 찾아 탐문하는데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친부를 살해하고 친모와 결혼한’ 패륜아를 찾기 위해 증인을 동원해 탐문수사를 벌인다. 불행하게도 패륜아의 정체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었다. 그리스의 소포클레스가 엮은 3부작 희곡 ‘오이디푸스왕’에는 그가 증인과 나눈 대화를 포함해 일생에 걸친 비극적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 사례에 근거해 사내아이가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를 사모하는 경향을 가리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가 아들을 얻자 델포이 신전에 가서 아들의 장래를 묻는다. 그런데 신탁의 내용은 끔찍했다. 아기가 크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혼인한다는 것이다.
왕은 사흘도 되지 않은 갓난애를 양치기를 시켜 산에 버린다. 빨리 죽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죽은 뒤 망령이 걷지 못하게 하려고 발꿈치를 브로치로 찌른 상태였다.
그러나 양치기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동료 양치기에게 아기를 준다. 그는 코린토스의 왕비에게 아기를 바친다. 때마침 아기가 없던 왕비는 그를 양자로 삼고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짓는다.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꿈치’라는 뜻이다.
어느날 오이디푸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줏어온 아들이라고 욕하는 소리를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델포이 신전을 찾아가 신탁을 듣는다. 그런데 신탁의 내용은 “결코 고향으로 돌아가지 마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하게 된다”였다.
경악한 오이디푸스는 정처없이 산길을 헤매다 좁은 세갈래 길목에서 수레를 몰고 오는 노인 일행을 만난다. 서로 비키라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노인을 잘못 쳐 살해한다. 그런데 노인은 다름아닌 친부 라이오스왕이었다. 신탁의 첫번째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방랑을 계속해 테베에 이른다. 때마침 테베는 스핑크스의 행패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상반신은 여자, 몸뚱이는 사자,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괴물이다.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침에는 네발, 낮에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낸 뒤 이를 못풀면 잡아먹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인간”이라고 옳게 답하자 스핑크스는 산에서 투신해 죽는다.
여기서 두번째 비극이 실현된다. 테베의 백성은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모셨으며, 그는 왕비(어머니)의 남편이 된다.
어느날 테베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고 흉년이 이어졌다. 해결을 위해 신전을 찾자 “라이오스왕의 살해자를 추방해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진다.
오이디푸스는 직접 수사에 나섰다. 때마침 코린토스의 왕이 사망하자 그곳 백성들은 특사를 보내 오이디푸스에게 왕이 돼달라고 청한다. 이때 특사는 갓난 오이디푸스를 건네받아 왕비에게 전한 양치기였다. 오이디푸스는 이미 테베의 왕에 오른 뒤였기에 정중히 거절했고, 특사는 오이디푸스가 사실은 코린토스 왕의 친자가 아니라고 증언해 오이디푸스가 코린토스로 떠나지 않게 도와준다.
이때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 비밀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버리라는 명령을 받은 양치기를 찾는다. 양치기는 처음에는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진실을 고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위협에 그만 사실을 말해버린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다.
양 치 기 : 그 아이는 라이오스 왕의 아들입니다.
오이디푸스 : 노예에게서 태어났나 왕비에게서 태어났나?
양 치 기 : 왕비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오이디푸스 : 아니 왕비가 너에게 주었다는 거냐?
양 치 기 : 예, 그렇습니다.
오이디푸스 : 무엇 때문에?
양 치 기 : 죽이라는 분부였습니다.
오이디푸스 : 비정하게도 자신의 자식을?
양 치 기 : 불길한 신탁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오이디푸스 : 어떠한 신탁이었나?
양 치 기 : 아기가 커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한다는 겁니다.
오이디푸스 : 그럼 왜 넌 이 사람에게 주었나?
양 치 기: 불쌍해서 차마 죽이지 못했습니다, 폐하. 이 사람이 먼 타국으로 데리고 갈 줄로 생각했습니다. 한데 그와 같이 그의 손에 넘어가 목숨을 건졌기 때문에 오늘의 이 무서운 결과가 나온 겁니다.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왕비의 브로치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국외로 추방당하고, 왕비는 자살을 택한다. 탐정 스스로가 범인임을 알아낸다는 줄거리 구성이 흥미롭다.
혈육 살해범 쫓는 탐정여신 에리뉘에스 - 광기 어린 집념의 추적자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중에서 살인을 저지른 자를 끈질기게 쫓는 3명의 '탐정여신'이 있다. 응보와 천벌의 여신으로 알려진 세자매 에리뉘에스(Erinyes)다.
이들은 신화에 나오는 지옥 타르타로스에서 살면서 영원한 벌을 받는 자들을 몰아치다 지상에서 죄인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연법칙을 어기는 자, 특히 부모나 형제, 그리고 동포를 살해하는 자는 가차없이 에리뉘에스의 추적을 받는다. 이들의 머리털에는 뱀이 뒤엉켜 있고, 손에는 횃불과 채찍이 들려 있다.
그리스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희곡 '오레스테이아'에는 에리뉘에스가 등장해,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한 범인 오레스테스를 추적한다. 다른 신들이 그를 비호하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에리뉘에스는 고대 아테네 법정에서 범인이 재판을 받도록 신들을 설득한 후에야 추적을 중지한다. 결국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가 재판장으로 나서 판결을 내린다. 에리뉘에스의 집요한 추적 탓에 그녀들에게 쫓기는 자들은 대부분 미쳐버린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에리뉘에스의 또다른 이름이 푸리아이(Furies), 즉 광기라고 불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