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군도에 사는 핀치의 부리를 세밀하게 관찰해 그려놓은 그림 덕분에 찰스 다윈은 진화론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DNA으 구조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열 명의 말이나 열 장의 글보다 단 하나의 이미지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과학 분야에서 관찰한 사실이나 연구결과를 얼마나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와 미국과학재단(NSF)은 '2005년 국제 과학기술 시각화 대회'의 수상작을 최근 발표했다.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려는 취지로 마련된 이 대회는 2003년이 첫 회였고, 올해로 세 번째다.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정보성 그래픽,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non-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의 5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여기에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정보성 그래픽 부문 수상작을 소개한다.
| 정보성 그래픽 부문 | 형광의 진수
(Fluoressence : The Essence of Fluorescence)
셰릴 아론, 주식회사 오메가 옵티컬
형형색색의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를 이루고 있는 모자이크 조각 하나하나는 여러 가지 분자들이 빛을 받았을 때 형광을 나타낸 모습. 형광분자가 빛을 흡수하면 그 안에 있는 전자는 에너지가 높아졌다가 다시 낮은 상태로 떨어지면서 스스로 빛을 낸다. 이것이 바로 형광이다. 생물체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분자들 가운데도 형광분자가 있다. 이들은 어느 파장의 빛을 방출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이 나타난다. 이 차이를 이용해 분자를 구분할 수 있다. 아론은 현미경에 쓰이는 광섬유를 만드는 회사의 마케팅 매니저. 이 작품은 현미경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참고자료로 제공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무지개 아래에는 각 형광분자가 내는 빛의 파장을 기록했다.
|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 시냅스, 베일을 벗다
그라함 존슨, 그라함 존슨 메디컬 미디어
뇌 속 깊은 곳. 신경세포들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수십억 개 신경세포로 이뤄져 있는 정교한 뇌 속 네트워크 덕분에 우리는 생각하고, 움직이고, 말할 수 있다. 신경세포 사이의 미세한 공간인 시냅스 안에서 화학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은 몇 밀리초(1/1000초) 동안에 일어난다.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인 존슨은 뇌조직을 얇게 잘라 현미경으로 찍었다. 이를 참고로 복잡하게 말려 있는 신경세포의 미로와 내부 구조물을 연필로 스케치했다. 원본 현미경 사진에서 보이는 신경세포의 약 30%만 묘사했다. 3차원 모델링 소프트웨어로 스캔한 뒤 수채화 같은 느낌으로 색을 입혔다. 가운데 신경세포의 경계선을 뚜렷하게 그려 튀어나온 것 같은 효과를 줬다. 울퉁불퉁한 질감이 일품.
| 사진 부문 | 북부 유럽의 가을 느낌
|제임스 아버, 엠포리아주립대
몇 개의 도형 안에 다시 비슷한 도형 여러 개가 들어있는 것 같은 모습. 부분이 전체를 닮는 프랙탈 구조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북부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마니크자브 습지를 내려다보고 찍었다. 이 습지는 이탄으로 이뤄져 있다. 이탄은 식물의 성분이 퇴적돼 오랜 세월 동안 생물·화학적 변성과정을 거쳐 생긴 것으로 넓게 보면 석탄의 일종이다. 이 습지는 가을이면 새단장을 한다. 황새풀은 금색으로, 숲을 둘러싸고 있는 활엽수는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변한다. 소나무만 녹색을 고집한다. 군데군데 고여 있는 물은 갈색을 띠어 식물의 색과 선명하게 대조된다.
이곳에서 빙하를 연구하던 지질학자 아버는 연에 디지털카메라를 매단 뒤 땅에서부터 50~150m로 띄워 올려 촬영에 성공했다. 비행기보다는 낮고 고층빌딩보다는 높은 중간 높이라 이렇게 독특한 색깔, 질감, 해상도를 얻을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