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덕을 톡톡히 본 또다른 과학자로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가 있다. 그는 만물의 기본 단위를 '원소'란 개념으로 파악하고, 산소가 연소 반응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했으며, 화학반응에서 물질의 보존원리를 규명했다.
라부아지에는 파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마음껏 섭렵했다. 법률가인 아버지 권유로 법과대학에 진학해 21세때 법학사가 됐지만, 학생시절 수학, 천문학, 광물학 등 자연과학 전반에 관해 일류 선생으로부터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가 특히 재능을 발휘한 분야는 화학이었다. 그는 화학연구의 업적을 인정받아 불과 25세의 젊은 나이에 파리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됐다.
라부아지에가 결혼한 나이는 28세. 아내는 14살 연하의 마리 안 피에레트 폴즈였다.
그녀는 당시 악명높은 세금징수원 조합 대표의 딸이었다. 라부아지에는 화학 연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징수원 일을 했다. 국가를 대시Y 각종 간접세를 징수하고 일정 액수를 국가에 납부한 뒤 나머지를 '짭짤하게' 챙기는 직업이었다. 물론 세금징수원에 대한 국민의 적대감은 매우 컸다. 라부아지에로서는 마리와 결혼함으로써 자신의 연구재원이 더욱 탄탄해진 셈이었다.
라부아지에는 마리에게 외국어와 화학을 가르쳤다. 결과는 100%이상 나타났다. 그녀는 영국과학자들의 논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주고, 라부아지에의 연구결과를 글로 정리하는 등 조교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상황이 바뀌었다. 세금징수원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라부아지에와 그의 장인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다.
라부아지에 사후에 부인은 훌륭한 조수답게 남편의 저작과 참고서를 모아 유고집을 엮었다. 6권으로 구성된 '라부아지에 저작집'(1864-1893 출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