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은 일산화질소(NO)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한 3명의 미국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미국 뉴욕주립대 건강과학센터의 로버트 퍼치곳 박사(82), UCLA 의대의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57), 그리고 텍사스 의대의 페리드 뮤라드 교수(62)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연구한 물질은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 나와 지구온실화의 주범으로 작용하는 일산화질소. 그런데 일산화질소가 인체에서는 오히려 심장혈관 체계에서 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하는 효자 노릇을 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더욱이 일산화질소는 최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원리도 담고 있어 흥미롭다. 비아그라는 일산화질소가 성기의 혈관을 확장시켜 발기가 이뤄진다는 원리에 근거해 만들어진 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의 업적이 뛰어난 점은, 호르몬이나 단백질이 아닌 기체가 세포막을 통과해 신호전달을 일으켜 세포의 기능을 조절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데 있다.
비아그라의 원리
일산화질소의 주요 역할은 한마디로 몸 곳곳에서 혈압이 높아지는 것을 막는 일이다. 혈관은 혈관 내벽을 구성하는 한층의 내피세포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층의 평활근세포로 구성돼 있다. 혈압은 평활근세포가 수축하고 이완하는 정도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일산화질소는 내피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이곳에 있는 필수아미노산(L-아르기닌)에 일산화질소 합성효소가 작용하면 일산화질소가 형성된다.
일산화질소는 인접한 평활근세포로 들어가 평활근세포를 이완시키는 물질(c-GMP)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혈관은 확장된다.
일산화질소의 또다른 역할은 혈소판이 응집되는 과정을 억제하는 일이다. 혈소판이 응집돼 혈관에 쌓이면 혈액의 흐름이 막혀버린다.
따라서 일산화질소가 잘 생성되지 않으면 동맥경화나 고혈압과 같은 혈관계 질환이 발생하며, 심하면 신경계 장애마저 일으킬 수 있다. 만일 음경에서 일산화질소 생성에 장애가 생기면 혈관 확장이 잘 안돼 발기부전이 초래될 수 있다. 비아그라는 c-GMP가 다른 효소에 의해 깨져 없어지는 일을 막음으로써 음경의 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제다.
이 외에도 일산화질소는 인체 내 세균의 발생을 억제시켜 몸의 방어력를 증가시킨다. 예를 들어 백혈구에서 생성된 일산화질소는 세균을 죽여 암세포를 억제한다. 또 신경세포에서는 신경전달물질로 작용해 행동, 기억, 소화기관의 운동성 등의 조절에 관여한다.
그러나 일산화질소가 항상 인체에 이로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세균의 침입으로 일산화질소가 다량 만들어지면 혈관확장에 의해 혈압이 떨어져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때는 일산화질소 생성 억제제를 투여해 혈압을 올려야 한다.
흥미롭게도 노벨의학상을 받은 3명의 약리학자는 각각 다른 연구를 하다가 같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퍼치곳 박사는 1980년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혈관에 투여할 때 서로 상반된 결과가 일어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혈관에 내피세포가 있으면 확장이 일어나고 내피세포를 벗겨내면 수축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아세틸콜린이 내피세포로부터 혈관을 확장시키는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이를 내피세포의존성 혈관확장인자(EDRF)라 명명했다.
이그나로 교수는 EDRF의 정체를 연구하던 중 1986년 퍼치곳 박사와 거의 동시에 별도의 연구에서 EDRF는 일산화질소와 동일한 물질임을 밝혀냈다.
뮤라드 교수는 1977년 심장의 관상동맥이 좁아져 가슴에 통증이 오는 병인 협심증을 연구하다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협심증 치료제로 쓰이는 혈관확장제 니트로글리세린의 작용은 니트로글리세린에서 분리된 일산화질소의 역할이라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노벨이 거부한 노벨상감
이후 일산화질소가 심혈관계뿐 아니라 우리 몸의 여러 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밝혀지게 되고, 그 결과 여러 질병에 대한 새로운 메커니즘과 치료법들이 개발됐다. 일례로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이 선천적으로 좁은 경우(신생아 폐성 고혈압) 폐동맥 확장을 위해 일산화질소가 투여된다.
에피소드 한가지. 노벨상을 만든 당사자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이용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그런데 노벨이 협심증에 걸렸을 때 주치의가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했다. 하지만 노벨은 폭약의 원료가 치료제로 쓰인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해 투약을 거부했다. 그로부터 1백여년이 지난 오늘 아이러니하게도 폭약의 원료인 니트로글리세인이 일산화질소를 방출해 협심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