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2월5일 이라크는 타뮤즈 로켓을 이용해 45kg의 인공위성을 발사했으나 궤도 진입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 남짓한 세월이 흐른 지난 8월31일 북한은 대포동1호 로켓을 이용해 인공위성(광명성1호, 무게 미상)을 발사했으나, 마찬가지로 궤도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과 이라크는 국제사회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국가로 유명하다.
북한 로켓 발사는 우리 사회 전체를 어리벙벙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일본 미국을 비롯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그만큼 이 사건에는 많은 나라의 이해가 걸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은 이번 기회에 자국 방어를 위해 정찰위성을 보유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더이상 대북지원을 할 수 없다고 중유지원과 경수로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미사일? 인공위성? 별무상관
우선 사건의 진상. 지난 8월31일 오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영토로부터 2백53km 거리의 동해에 미사일 추진체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렸고, 곧이어 일본 영토를 넘어서 1천6백46km 지점에도 추진체가 떨어졌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이로 보아서는 기존의 노동미사일(1단, 사거리 1천km, 93년 5월 시험 발사 성공)과는 성격이 다른, 최소한 다단계 로켓 발사임이 분명해졌다.
그로부터 닷새 뒤 북한은 “100% 우리 기술과 힘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했으며, 이 인공위성은 정상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그로부터 사흘 후 인공위성의 이름은 ‘광명성 1호’라고 밝혔다. 9월9일에는 지구 궤도에는 북한이 발사했다는 어떤 위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미국우주사령부(NORAD) 공식 발표가 이어졌다.
9월18에는 일본측에서 북한으로부터 6천km 떨어진 알래스카 근해에서 인공위성 파편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발견됐다는 미확인 보도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공위성 추진 로켓(3단고체로켓)이 지구궤도 진입에 필요한 초속 7.9km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타원궤도를 몇바퀴 돌다가 지구 근지점이 너무 낮아 대기권과 마찰을 일으켜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체적인 사건 개요에서 볼 수 있듯이 북한은 단순히 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아니고 어떤 형태이든 인공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발사했으나 이 인공위성은 궤도 진입에 실패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인공위성이든 아니든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입장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물론 북한이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기술과 ‘쓸만한’ 인공위성을 만드는 기술까지 갖추었다면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진입시키는 기술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인공위성의 자세를 제대로 잡아주는 기술이라든가, 궤도제어를 위한 원격 유도 기술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70년대 일본은 5번의 실패 끝에 겨우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킨 바 있다.
인공위성 제작 기술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는 아마추어들이 간단한 과학위성을 만드는 사례가 없지도 않으나 고도의 전자부품과 특수소재, 그리고 고효율의 태양전지 등이 필수적인 인공위성 제작은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결국 대포동1호의 탄두에 인공위성이 실렸어도 그 수준은 우리가 92년에 제작해 프랑스의 아리안로켓에 실어 쏘아올린 과학실험위성 우리별1호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위성체에는 축적된 기술도 없고 별관심도 없다는 뜻이다. 항간에는 일본과 미국에서 전자전문가들을 매수해 위성체 개발을 비밀리에 수행했다는 소문이 있으나,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위성체보다는 발사체를 개량하는데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상품 시연회
그러나 발사체, 로켓에 이르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원래 우주로켓은 미사일 발사 기술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북한은 70년대부터 미사일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러시아가 북한을 제외하고 제3세계에 스커드미사일을 판매한 것은 70년대. 여기서 소외된 북한은 이집트에서 스커드를 수입하고, 이를 개량해 스커드B,C를 만들어서 이들 나라에 재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93년에 개발한 노동1호도 스커드엔진 4개를 하나로 통합한 스커드의 개량형. 스커드 한대의 추력이 13톤이므로 노동미사일의 추력은 52톤에 이른다. 노동 1호 발사실험에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국가의 군사 관련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바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무기수출만으로 연간 적게는 2억달러, 많게는 10억달러까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번 대포동로켓 발사는 미사일 시장의 신상품 시연회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대포동로켓은 기본적으로 노동미사일을 1단로켓으로, 스커드 한대를 2단로켓으로 2층집을 짓고 탄두에 고체로켓을 단 위성체를 실은 것. 1층집이 상품성이 떨어지자 2층집을 지어서 사람들 앞에서 시연회를 가진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노리고. 결국 대포동로켓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6천km 이상)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기존 노동미사일에 비해 사거리를 2배 이상 향상시킨 신형 미사일인 셈이다.
북한은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준하는 대포동2호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추력이 1백톤에 이르고 사거리는 5천km 이상으로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대포동2호가 완벽한 ICBM이 되려면 몇가지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대기권을 벗어난 탄두가 재차 대기권에 돌입하면서 열에 견딜 수 있는 기술, 이후 목표물이 정확한 위치에 도달하는 기술 등의 확보가 선결돼야 한다. 이는 인공위성체를 목표한 지구궤도에 진입시키는 기술과 같은 수준이다. 아직 북한은 이러한 세부적인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 대내외의 평가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미 1단로켓으로 사거리가 3천km에 이르는 중국제 DF3를 확보하는 등 대포동2호 발사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포동2호의 탄두에는 내용물이 무엇이든지 간에 5백kg급 이상의 탑재체가 실릴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톱텐 진입?
북한이 미사일 발사가 아닌 인공위성 발사 형식을 취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목적이 아닌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 우주개발 로켓은 국제사회에서 말썽의 소지가 없다. 동전을 뒤집으면 우주개발 로켓이 미사일이 되지만, 우주개발이라는 외피를 두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다. 군사적 무기 개발은 철저히 규제당했지만 우주로켓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본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첨단기술의 결정체인 우주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대내적인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지궤도든 저궤도든 지구궤도에 인공위성을 올릴 수 있는 나라는 8개국. 그 능력을 굳이 순위로 매기자면 러시아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인도 이스라엘순. 여기에 작년 7월 브라질이 VLS로켓에 3백50kg급 인공위성을 발사했으나 1단 로켓에 문제가 생겨 실패한 적이 있다. 결국 공인된 8개국 외에 10위권 진입을 위해 브라질 이라크 북한이 치열한 3파전을 벌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는 91년도 걸프전을 치르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이제 북한이 그 틈새를 비집고 선진국 대열에 바싹 다가간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했나. 우선 위성체 분야에서는 과학실험위성인 우리별1호(92년)를 거쳐 우리별2호(93년)를 KAIST(한국과학기술원) 산하의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자체적으로 개발한 바 있으며, 99년에는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 우리별3호(1백kg급)를 인도의 ASLV로켓에 실려 발사할 예정이다.
방송통신용 실용위성인 무궁화1,2호(95년 12월과 96년 1월 발사)는 돈을 주고 사온 위성이니까 논외로 하고, 99년 7월에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와 미국의 TRW사가 공동 제작한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1호(3백50kg급)를 쏘아올릴 예정이다. 이후 2015년까지 총 7기를 제작할 계획을 갖고 있다. 참고로 98년 8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공위성은 총2천5백여개(한국은 4개이며 북한은 없음). 이미 수명을 다해 우주쓰레기로 존재하는 것까지 합치면 8천8백개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은 현재까지 인공위성에 관한 한 북한을 앞서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발사체인 로켓 분야에서는 상황이 역전된다. 한국은 93년 1단과학로켓 과학1,2호(최대 고도 37.5km)를 쏘아올렸고, 올해 6월에서야 2단 중형과학로켓을 고도 1백37km 상공에 올렸을 뿐이다. 예정대로라면 2003년에야 3단로켓을 고도 7백km 상공에 쏘아올릴 계획이다. KSR3호로 명명된 이 로켓은 1단 추력이 20톤에 불과하다. 대포동1호의 반에도 못미치는 수준.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과 맺은 미사일 양해각서 덕택이다. 79년 10월에 맺어진 이 각서에는 사거리 1백80km, 탄두중량 5백kg으로 제한돼 있다. 국산 미사일 현무나 백곰이 왜소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사일과 관련된 각서이지만 미국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주개발 로켓 분야에도 족쇄를 채워온 것이 사실. 외교채널을 동원한다든지, 부품 구입을 규제하는 방법이 쓰여져 왔다. 다행히 이번 ‘대포동 쇼크’로 인해 미사일사거리가 국제규약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서 제한하는 사거리 3백km로 조종될 것으로 예상되고, 여기에 덧붙여 우주개발 로켓인 경우 제한조건이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스푸트니크 쇼크, 대포동 충격
1957년 옛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1호를 쏘아올리자 미국은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다. 우주개발 정책을 전면적으로 수정했을뿐 아니라 교육제도까지 바꾸었다.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인간의 달착륙으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했다. 이를 ‘대포동 쇼크’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까.
우주개발은 경제성을 불문하고 미소의 자존심 대결로 지속돼 왔다. 그러다가 방송통신위성이나 기상위성 등 실용위성이 등장하면서 우주가 비지니스의 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프랑스는 이 틈새를 노려 아리안로켓으로 세계 발사체 시장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성능 위주의 대형로켓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한번에 실용위성 2-3개를 쏘아올릴 수 있는 아리안로켓이 가격경쟁에서 우위에 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지금부터 돈과 인력을 투자해 세계의 발사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할 수 있을까. 만약에 조금이라도 경제성이 있다면 ‘대포동 쇼크’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지궤도(3만6천km상공)에 위성을 올리려면 보통 1억달러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고부가가치 시장이 바로 위성체 발사 서비스시장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채연석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발사체 시장은 80년대 이후 또한번 지각변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인공위성이 정지궤도용에서 통신용 저궤도위성(수백km 상공)시장으로 급격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옛소련의 로켓은 물론 아리안조차도 저궤도용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 발빠르게 대응한다면 틈새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일본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성능제품을 만들다보니까 가격 경쟁력에서 처지고 있다. 일본의 H2로켓은 아리안 대결용으로 만들어졌고, 저궤도용인 J1로켓도 워낙 고가부품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한 예로 내년에 발사할 예정인 한국의 아리랑1호 발사체는 미국의 토러스 로켓으로 결정됐는데 가격은 2천만달러. J1은 3천5백만달러를 제시해 탈락했다. 중국도 장정 로켓을 개량하고 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저궤도용 위성 발사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나 로켓 자체가 구형이기 때문에 환골탈태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장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 80년대 프랑스의 아리안로켓에 일격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시장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비행기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페가수스로켓을 변형한 미국 OSC사의 토러스 로켓이 바로 그것. 또한 미국내에는 저궤도용 위성 발사체 시장을 노리는 벤처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변화기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 새로운 개념의 로켓 개발을 주도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개념의 로켓’이란 과거처럼 성능 위주가 아니라 경제성 위주의 그러면서도 신뢰성 있는 로켓을 의미한다. 고급 스포츠카 개발되는 상황에서 포니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은 항상 첨단을 지향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의 혜택을 누리기 시작할 때 ‘고성능’이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라 꼭 필요한 기술과 신뢰성을 담보로 한 ‘경제성’이 보다 상위의 가치로 자리잡는다. 컴퓨터가 등장할 때 대형컴퓨터 시장은 IBM의 독주무대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컴퓨터의 주도권은 PC로 넘어갔고 공룡 IBM은 컴팩이나 DEC 등에 PC 개발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 틈새를 비집고 한국도 PC를 수출했고 지금도 강력한 PC 수출국이 아닌가.
우주는 바야흐로 첨단기술의 장에서 대중기술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일개 벤처기업이 덤벼드는 상황이니, 한국이 국가적으로 주도한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 주도’란 최고 통치권자가 직접 챙기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후발주자라고 해서 항상 불리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