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위 과학책의 시의적절한 가이드
코스모스 읽는 법
끝까지 읽도록 돕는 과학책 번역가의 친절한 가이드
박초월 지음│유유│260쪽│1만 7000원
“한국의 과학책 베스트셀러는 1위를 비워 둬야 한다”는 농담을 예전에 어느 편집자에게서 들었다. 원서는 1980년, 정식 한국어판은 2004년에 나온,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여전히 과학책 1위에 자주 오르는 것이 놀랍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코스모스’는 한국에서 과학이라는 분야, 과목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인정받는다. 과학동아의 과학 필독서 연재인 ‘사이언스 북마크’도 이 책으로 시작했다. 이번에 나온 박초월 번역가의 ‘코스모스 읽는 법’은 지금 ‘코스모스’를 읽는 독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책이어서 더욱 반갑다.
‘코스모스 읽는 법’은 ‘코스모스’를 읽고자 하는 현재의 과학책 입문자에게 필요한 과학 개념과 지식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먼저 내용과 범위가 방대한 ‘코스모스’를, 핵심 개념들을 중심으로 친절하게 해설해서 꾸준히 읽도록 도와 준다. 이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코스모스’가 2026년 한국에서 갱신돼야 하는 지점들을 이 고전의 해설과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독자들이 과학 고전을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을 보다 밀도 있게 읽을 수 있는 토대까지 이 책이 다져주는 셈이다.
과학 고전으로서 ‘코스모스’의 중요한 가치는 우주를 향한 지적 욕구와, 자유로운 탐구·비판 정신이 핵심인 과학적 사고를 아우르는 시야를 열어 준 것이다. 이런 ‘코스모스’와 공명하면서도, 그 입장의 한계와 맹점까지 짚은 것은 ‘코스모스 읽는 법’의 가치다. 이 책이 패러다임을 극적으로 전환한 뉴턴, 아인슈타인이 이룬 창의성의 과학사를 강조하는 ‘코스모스’를 풀이하면서도, 전환의 대상이 된 패러다임, ‘정상과학’의 의미까지 조명한 것도 그런 예다. 과학이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정상과학을 학습, 개선, 발전하는 활동이며, 새 패러다임을 수립하는 과학 혁명도 기존 패러다임인 정상과학의 연장선에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코스모스’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그의 통찰을 보여 준다. 세이건의 주장대로 사상의 자유만이 과학 발전의 핵심이라면, 우리 대부분이 배웠고 배우는 과학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에 사려 깊게 응답한 것이다.
‘코스모스 읽는 법’의 저자는 대학에서 물리학, 과학사를 전공하고 과학 교양서 편집자를 거친 과학책 번역가로서 ‘궁정인 갈릴레오’ ‘수학의 중력’을 비롯한 과학책들을 옮겨 왔으며, 이 책은 그의 첫 저서다. 이 책이 독자들이 과학책에서 느끼는 어렵고 낯선 점들을 작은 부분까지 풀어 주는 동시에, 과학책을 읽더라도 빠지기 쉬운 과학과 기술, 미래에 대한 오해와 편향도 놓치지 않고 경계한 점에서 과학과 과학책에 대한 저자의 깊은 생각들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이미 세상에 있는 까마귀의 확실한 영향력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마쓰바라 하지메 지음│정한뉘 옮김
나무의마음│304쪽│1만 9000원
서울의 비둘기들이 왠지 기죽은 모습이라면, 도쿄의 까마귀들은 사뭇 기세등등했다. 이 공간의 주도권이 3차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기에게 있다는 듯이. 마쓰바라 하지메 일본 도쿄대 종합연구박물관 교수가 쓴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이 눈에 띈 첫 번째 이유는 저자가 일본인이어서였다. 동물행동학 전공의 까마귀 생태, 행동 및 진화 연구자가 도쿄에서 일하는 일본인이라면, 도쿄 주택가 골목의 진짜 주인공처럼 보였던 까마귀에 대한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에서 마쓰바라 교수는 까마귀 연구자이자 애호가로서 까마귀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 ‘성덕’의 면모를 과시한다. 일본의 까마귀 7종 중 1년 내내 머무는 새는 큰부리까마귀와 송장까마귀의 2종이라는 본문 아래 달아둔 정성스러운 각주가 단적인 예다. 남쪽 오키나와에서는 송장까마귀의 아종인 작은부리까마귀가 겨울새로 분류된다는 내용을 각주로 넣어서, 일본에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 겨울 까마귀를 이 기회에 알리고 싶었던 걸까.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 질문은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 없는 세상이란?’이다. 지구 생태계와 생명의 역사를 거쳐 문학, 종교, 학문까지 아우르며 까마귀가 없어진 세상의 모습들과 까마귀를 대신할 법한 유력한 새들을 아주 진지하게 고민한다. 특히 ‘최애의 아이’와 ‘귀멸의 칼날’부터 ‘포켓몬스터’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까지 시기도 장르도 제각각인 애니메이션 속 까마귀의 역할과 표현을 비평하며, 까마귀가 없다면 어떤 새가 대신 나올지까지 분석하는 3장에 몰입하는 독자들도 있을 듯하다.
이 책은 까마귀를 멸종하면 생태계가 붕괴해 버릴 정도의 핵심종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초반부터 인정한다. 저자가 독수리, 앵무새, 바다직박구리 같은 새들을 생태적 대역으로 가정한 것도 까마귀의 대체 불가능성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다. “어떤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그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란 저자의 말 그대로, 이 책은 지금 우리 곁의 까마귀가 미치는 흥미진진한 영향을 말한다. 최소한 “(까마귀 따위) 없어도 그만”이란 말보다는 까마귀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삶을 푸는 과정이 담긴 수학 서간집
세계적인 응용수학자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미적분을 비롯한 수학의 핵심 개념들과 인간이 성장하는 시간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결합한 수학 에세이다. 이 책의 바탕은 스트로가츠가 대학에 입학한 후, 자신에게 수학의 매력을 알려준 고등학교 시절의 수학 교사 돈 조프레이와 30년간 주고받은 수학 편지다. 대학 진학, 진로 고민, 가족의 상실과 같은 삶의 굵직한 사건들이 수학적 대화의 틈 사이로 잔잔하게 스며들면서 지적 탐구와 삶의 경험이 함께 깊어지는 책이다.
우정의 미적분 | 스티븐 스트로가츠 지음│김일선 옮김│프시케의숲│264쪽│1만 8800원
| 생존 경쟁으로 재구성한 인간과 암의 관계
암을 우리 삶의 동반자가 된 질환으로 바라보며, 도대체 암이 무엇이고 앞으로 암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화적 관점에서 파헤친 책이다. 암 생물학자인 아테나 액티피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암의 생물학적 의미와 치료법을 다윈주의적으로 살펴본다. 세포들 간의 협력이 깨지고 특정 세포가 다세포체의 이익을 위한 협력과 조정을 중단하며 자원을 남용할 때에 암이 발생한다는 설명을 통해, 암은 몸속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암세포의 진화 |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김정은 옮김│열린책들│368쪽│2만 3000원
| 범죄 프로파일링을 한국 수사에 정착시킨 20년
한국 경찰은 2005년 ‘특채1기 프로파일러’로 민간인 심리전공자 16명을 공개 채용했다. 이 중 경찰학교 졸업이 늦어진 1명을 제외한 1기 15명은 2006년 초에 현장에 배치됐다. 올해로 특채 프로파일러 도입이 20년을 맞은 것이다. 이 논픽션은 미국의 범죄 프로파일링 이론을 한국 현실에 적용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 특채 1기 프로파일러 중 네 명을 취재해서, 악의 행태와 심리를 해부하기 위해 고민하고 고뇌하며 성장하는 직업인의 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악의 이유를 찾는 사람들 | 나경희 지음│에스판다스│252쪽│1만 6800원
| 낯선 언어가 열어 줄 경이로운 가능성
정신과 언어의 관계를 연구하는 심리언어학자인 비오리카 마리안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교수가 ‘다중언어’의 방법과 효용을 소개한 책이다. 특히 10여 개 언어를 구사하는 다중언어 사용자인 저자 본인의 오랜 경험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새로운 언어의 습득’을 독자에게 권하면서, 다른 언어의 습득이 우리 내면을 더 창의적으로 바꾸고, 도덕적 판단력을 높이며, 건강한 뇌를 유지해 주고, 이런 효과가 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 비오리카 마리안 지음│신견식 옮김│위즈덤하우스│288쪽│2만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