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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면 입에 침이 돈다. 수영복 차림의 미인을 쳐다보는 남자의 입에도 침이 돈다고 한다. 더러움이나 증오를 표시할 때는 침을 뱉는다. 아이들은 자기의 소유를 분명히 하기 위해 ‘침을 발라 놓았다’는 표현을 한다. 담배꽁초에 묻은 침으로 범인을 알아낼 수도 있다고 한다. 침에 관한 이런 일들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세균을 가지고 있는 침이 인체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루 분비량 1.5L
 

돌이 되기 전의 유아들이 침을 많이 흘리는 것은 침을 전부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생리반응이다.


침은 침샘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몸에는 여러 개의 침샘이 있다. 그 중 큰 침샘이 세 쌍 있는데 위치에 따라 각기 이하선(耳下腺), 악하선(顎下腺), 설하선(舌下腺)이라고 부른다. 이하선은 귀 아래에, 악하선은 턱뼈의 옆 아래에, 설하선은 혀의 앞쪽 아래에 한 쌍씩 있다. 볼 안쪽과 혀 아래쪽에 작은 구멍이 보이는데 이들이 큰 침샘의 통로다. 작은 침샘은 입술, 혀, 볼 안쪽, 입천장 등에 산재해있는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침의 대부분은 큰 침샘에서 만들어지는데, 이하선에서는 주로 묽은 성분의 침이 만들어지고, 다른 침샘에서는 점액 성분이 많은 침이 만들어진다. 이들 큰 침샘과 작은 침샘에서 하루에 분비되는 침의 총량은 1L에서 1.5L에 이른다.

침은 평상시에도 분당 0.5mL 정도씩 계속 분비된다. 안정한 상태에서 분비되는 침은 pH가 6.0정도의 약산성을 띠고 있으며 점도도 낮다. 그러나 외부에서 자극이 가해지면 분비량은 분당 4mL 까지 늘어난다. 그리고 pH도 7.0 - 7.3 정도로 증가돼 중성 또는 약알칼리성을 띠며 점도도 증가한다.

미인 보고 흘리는 침

침분비의 촉진은 자율신경 특히 부교감신경의 자극을 통해 일어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약물을 투여하면 침은 많이 분비된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을 억제하는 약을 투여하면 침의 분비가 억제된다. 침분비를 촉진하는 자극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물의 맛이다. 특히 신맛은 침을 분비시키는 가장 강력한 자극이다.

그러나 음식의 맛이 아니라 음식물 덩어리가 입안에 닿는 것만으로도 침이 분비된다. 둥근 조약돌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거나 맛이 없는(無味) 물질을 씹어도 침이 분비된다. 이것이 바로 기계적 자극에 의한 침의 분비현상이다.

또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거나, 보거나, 냄새를 맡아도 이것들이 자극이 돼 침이 나온다. 물론 이것은 그 음식의 맛에 대한 기억이 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레몬을 보거나 생각만 해도 침이 나오지만, 레몬은 신맛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거나 맛을 경험한 적이 없으면 침이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과거의 기억이 뇌에 남아 있다가 그 기억을 되살리는 조건하에서 침을 분비하게 되는 것을 조건반사에 의한 침의 분비라고 한다. 음식 이야기를 할 때 입에 군침이 도는 것도 조건반사에 의한 침의 분비 때문이다. 성적흥분시에도 자율신경계통이 자극되면서 침이 분비된다. 미인을 보고 침을 흘린다는 것은 이런 현상을 반영하는 말이다.

씹을수록 맛있는 밥

침은 어떤 기능을 할까.

첫째로 침은 입안을 깨끗이 유지해준다. 침은 99%가 수분이다. 이 수분이 입안을 흐르면서 구강내의 음식물 찌꺼기와 세균을 씻어내 청결히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로 윤활작용을 한다. 침이 약간 끈적끈적한 것은 침 속에 있는 뮤신(mucin)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뮤신은 당(糖)과 단백이 결합된 물질이다. 뮤신은 수분과 함께 구강점막을 덮고 있어 입안을 마르지 않게 하고 기계적으로 보호한다. 또 음식물을 삼키기 쉽게 하며, 말을 하는데도 불편이 없도록 해준다.

셋째는 소화작용이다. 침속에는 알파 - 아밀라아제(α-amylase)라는 소화효소가 들어있다. 아밀라아제는 프티알린(ptyalin)이라고도 불리는데, 녹말을 분해시키는 소화효소다.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분해하면 맥아당이 된다. 녹말은 단맛이 없지만 맥아당은 단맛이 있다. 밥을 입에서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 이것은 밥속의 녹말성분이 침에 의해서 소화돼 단맛을 띠는 맥아당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음식물 등의 자극으로 침의 분비량이 많아지면 pH가 7.0까지 증가된다. 이것은 구강내 환경을 아밀라아제가 작용하기 가장 적절한 산도(pH 7.0)로 유지하려는 반응이다.

침 속에 DNA가?

침의 넷째 기능은 유해한 세균에 대한 항균작용이다. 침속에 있는 항균성분에는 라이소짐, 감마글로블린, 시안화황 등이 있다. 라이소짐은 세균을 녹여서 파괴하는 단백질분해효소의 일종이다. 감마글로블린은 항체기능을 해 세균이 몸속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는다.

침의 다섯째 기능으로는 분비기능을 들 수 있다. 체내에 들어온 수은, 납, 아연 등은 미량이긴 하지만 일부가 침을 통해 분비 배설된다. 구강 내에는 수많은 세균이 서식하고 있는데 이 세균들도 모두 침에 섞여 나온다. 또한 병을 앓는 환자의 침에는 그 질병의 원인균이 섞여 있다가 말을 하거나 기침을 할 때 작은 침방울에 섞여 나와 병을 전염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흔한 B형 간염도 원인 바이러스가 침으로 분비되고 있다. 침이 주된 전염경로는 아니지만 대량의 침에 의해서는 전염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또 AIDS에 감염되면 항체가 침으로 분비된다. 최근에는 이 항체를 검출해 AIDS를 간편하게 진단하는 방법도 개발돼 이용되고 있다. 침에는 혈액형을 나타내는 물질이 분비되어 침으로 혈액형을 알아낼 수도 있다. 또한 침속에는 구강 내의 여러 세포들이 함께 섞여 있는데, 이들 세포 속의 DNA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할 수도 있다. 담배꽁초에 묻은 침으로 범인의 혈액형을 확인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최근 독일에서는 살인범을 잡기 위해 피해자 거주지 일원의 주민 1만8천명에 대해 모두 침 속의 유전물질을 검사하기로 해 주목을 끌고있다.

더러움이나 증오를 표시할 때 침을 뱉는 것은 입속의 세균이 침에 섞여 나오니 더러운 것을 퍼붓는다는 의미다. 자기의 소유를 주장할 때 ‘침발라 놓았다’고 하는 것은 가져가려면 더러움을 감수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 자신만을 특징지울 수 있는 침으로 표시를 했다는 뜻이라고 하면 견강부회(牽强附會)일까.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영되면 항체가 침에 섞여 분비되기도 한다.


침이 없는 것도 병

침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침이 부족해서 입안이 건조해지는 것을 구강건조증이라고 한다. 구강건조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말을 많이 하거나 입으로 숨을 쉬는 경우, 열이 나거나 수분의 섭취가 부족해 전신이 탈수 상태에 있을 때 입이 마르는 것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당뇨병이 있거나, 뇌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침샘이 손상되었을 때, 그리고 침샘 자체에 병이 생겼을 때도 침의 분비가 감소해 입이 마른다. 그리고 침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약물을 복용하였을 때와 쉐그렌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병이 있을 때도 입이 마른다. 침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약물에는 부교감신경차단제, 항히스타민제, 항우울제 등이 있다.

부교감신경차단제는 복통이나 소화관 운동의 증가를 동반하는 위장관질환에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항히스타민제는 콧물, 두드러기, 가려움증, 어지러움증 등에 쓰인다. 항우울제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두통을 포함한 만성통증에 자주 처방되는 약이다. 쉐그렌증후군은 침과 함께 눈물이 마르는 병인데, 작은 침샘인 입술의 침샘을 조직검사해 진단하는 점이 특이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구강건조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말을 오래 계속하기가 어렵고 입에서 구취가 심하게 나서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며, 입안이 잘 헐고 충치가 많이 생긴다. 정상적으로 침이 할 기능을 못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이다. 이것을 보면 평소에 침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알 수 있다. 구강건조증은 물론 원인을 치료해야 하지만 보조적으로 소독약을 넣은 인공침으로 구강 점막을 자주 적셔주는 방법도 있다.

반대로 침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다. 돌이 되기 전의 유아들이 침을 많이 흘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유아들이 분비된 침을 전부 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이가 날 때 침 분비가 많아져 평소보다 더 많은 침을 흘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모두 정상적인 생리 반응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도 침을 흘리는 것은 특별한 병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이 헐었을 때 침이 많아지는 것은 흔히 경험할 수 있으며 간질, 뇌성마비, 정신박약, 중풍과 같이 신경계통에 이상이 있어도 침을 흘린다. 또 수은 중독, 농약 중독, 부교감 신경 자극제의 과다 투여시에도 침이 많이 분비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몸의 윤활유

침의 분비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침샘에 생기는 병중에는 볼거리가 있다. 일명 항아리손님이라고도 하는데 유행성이하선염이 정확한 이름이다. 이 병을 임파선에 생긴 병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병은 이름에서 보듯이 침샘의 하나인 이하선에 바이러스가 침범해 생기는 병이다. 현재는 예방접종으로 많이 줄긴 했지만 어린이에게 잘 걸리고 유행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어른들이라면 초등학교 때 반 친구들 여러 명이 동시에 열이 나고 양쪽 이하선이 붓고 아파서 수일씩 고생했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행성 이하선염이었던 것이다.
 

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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