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하늘은 검게 변하고 구름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흘러가는 구름과 구름이 손을 맞잡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뭔가 심상치 않은 반란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왜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이 서는 것일까. 순간적으로 감전된 듯한 느낌을 지우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찌지직' 하며 번쩍거리는 섬광을 선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번개를 보기까지의 전초전이다.
18세기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에 의해 번개가 '전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번개는 벼락과 천둥을 동반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물론 지금도 미국에서는 홍수 다음으 로 인명을 앗아가는 자연 재해로 벼락을 꼽을 정도이므로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이제 번개에 얽힌 역사적 사건들과 과학적 원리들을 만나보자.
10억V, 수만A
번개는 한마디로 대기 중의 방전현상이다. 공기는 절연체이므로 기본적으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전하와 음전하를 띤 구름과 구름, 구름과 지면사이에 전압이 높아지면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전류가 흐르게 된다. 또 구름이 담고 있는 전하량의 한도가 넘게되면 하늘에서 전하덩어리가 떨어진다. 이것이 구름과 땅 사이의 방전으로 벼락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개가 구름에서 지면으로만 치는 것은 아니다. 지면에서 구름으로 올라가는 번개도 있다.
번개가 칠 때의 전기량은 1회에 전압 10억V, 전류 수만A에 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천A의 벼락은 1백W의 전구 7천개를 8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오랜 옛날 번개는 대기 조성과 원시생물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번개가 치면 공기중의 산소분자는 유리된 산소와 결합한 오존이 돼 공기 중에는 오존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이러한 오존은 층을 이뤄 지구 생명체의 보호막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기중의 공중 질소는 해양에 녹아 들어가 원시 생물 탄생에 필수적인 아미노산합성에 기여했으리라는 가설도 있다. 또 공중질소가 토양에 고정돼 비료로 쓰인다는 말도 있다. 물론 지금도 번개가 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그 양은 극히 미약하다.
전하가 이동하는 가장 짧은 경로
번개가 칠 때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구름의 전하 분포와 구름과 땅의 전하 분포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해답으로 자리 매김을 한 것은 없다. 구름 속 눈의 결정들이 마찰을 일으켜 전기를 띤다는 주장, 구름 속 얼음 입자가 깨지거나 부딪칠 때 전기를 띨 것이라는 주장, 과냉각 물방울이 얼 때 음의 전기를 띠고 주위 공기는 양의 전기를 띤다는 주장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기 초로 1948년 미국의 워크맨과 레이놀즈는 물이 어는 과정이 하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 실험에 의해서 빙정과 과냉각 물방울이 공존하는 상태에서는 많은 전하가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대체로 적란운의 위쪽은 음전하를 띠고 있으며 아래쪽은 양전하를 띠고 있다. 적란운은 습하고 기온이 높이에 따라 급격히 떨어지는 조건에서 두꺼운 대기층이 존재할 때 생긴다. 이런 조건에서는 공기가 매우 불안정해 상층 구름의 양전하와 하층 구름의 음전하가 충돌하면서 방전 현상이 발생한다.
구름과 지면 사이에 번개가 치는 과정을 살펴보자. 온도가 낮은 물방울, 수증기, 얼음 등이 모여있는 음전하가 강한 지역에서 전자들이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를 선도낙뢰라고 한다. 이 번개는 밝지 않고 단계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 지표면은 양전하로 유도된 상태다. 아래쪽으로 내려온 전자들이 지표에 가까워지면 나무와 같이 높이 솟아있는 물질로부터 양전하를 끌어올린다.
지면에 있는 나무같이 뾰족한 것에는 양전하가 많이 모인 다. 전자와 양전하가 만나면 강력한 전기가 흐르기 시작한다. 전자와 양전하의 접촉이 일어 나는 순간 엄청난 양전하의 흐름이 위로 치솟는다. 이를 귀환낙뢰라고 한다.
선도낙뢰가 떨어지는 시간은 0.02초 걸리지만, 귀환낙뢰가 올라가는 시간은 0.00007초로 매 우 짧다. 우리가 보는 번개는 이때의 양전하 흐름으로 속도가 광속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만km/초에 이른다. 또 이 때 터놓은 길을 따라 순식간에(약 10분의 1초) 전하의 흐름이 몇 차례 반복된다.
우리가 눈으로 번개를 볼 때 나타나는 선은 전하가 이동하는 가장 짧은 경로를 나타낸다. 대부분 단순한 직선이 아닌 삐뚤삐뚤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모양을 보고 우리는 대기중에 전위차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즉 대기중에는 전위차가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으며, 전하들은 전위차가 높은 곳을 따라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 줄기가 아닌 곁가지 번개들은 주변 공간에 중심 부분과 같은 전위차를 갖기 때문에 전하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위차:전기장 내의 기준점으로부터 어떤 지점까지 단위 양전하를 이동시키는데 필요한 일 의 양을 전위라 하고, 이 전위의 차이를 전위차라 한다. 전위차가 없으면 전하는 이동하지 않는다.)
태양 표면 온도보다 4배 뜨거워
번개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이 있다. 바로 천둥이다. 찌지직하는 섬광 뒤에 일정시간이 흐 르면 '우르르 꽝꽝'하면서 대지를 요동시키는 그 소리. 천둥소리가 빛보다 느리기 때문에 번 개가 치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들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천둥이 들리는 범위 는 보통 약 20km이다. 번개가 친 후 천둥이 들리기까지의 시간에 음속인 340m/초를 곱하면 번개가 친 곳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번개가 치고 나서 9초 후에 천둥소리를 들었다면 약 3km떨어진 곳에서 번개가 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소리의 근원은 무엇일까. 번개는 공기 중에서 순간적으로 다량의 전기가 흐르면서 그 통로가 되는 곳에 태양 표면의 온도보다 약 4배 뜨거운 2만7천도의 열을 발생시킨다. 그러면 이 열에 의해 주변 공기는 급격히 팽창했다가 수축을 반복하면서 공기의 진동이 발생한다. 이 진동이 소리가 되어 들리는 것이 천둥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천둥이 오랫동안 울리는 것은, 벼락이 칠 때 공기의 온도가 장소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소리가 굴절되거나 반사해 서로 다른 길을 통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번개를 유도하는 피뢰침
번개를 무서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벼락 때문이다. 벼락은 전체 방전의 약 40%를 차 지한다. 이 때의 전하덩어리를 사람이 맞을 경우에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벼락을 신의 응징으로 생각하던 과거에 신성한 교회의 탑 꼭대기에 벼락이 치는 상황은 사람들에게 얼마 나 아이러니하게 다가갔을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번개나 벼락이 다른 곳에 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이제는 번개를 건물로 유도한 다. 바로 피뢰침을 이용한 것이다. 피뢰침은 전하의 흐름인 번개를 뾰족한 금속 끝으로 오게 만들어 지면으로 접지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피뢰침은 미국의 프랭클린이 발명한 것으로 발 명 초기에는 번개를 끌어들인다고 인식돼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하지만 피뢰침으로 떨어진 번개가 안전하게 지면으로 유도되는 것을 보고 피뢰침은 건물의 안전장치로 인정받 게 됐다.
일반적으로 피뢰침은 구리 재질의 막대로 돼 있고 굵은 전선으로 지면과 이어져 있다. 송전선의 철탑도 피뢰침의 역할을 하는데 철탑에는 접지선이 붙어있어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송전선에는 번개로 인한 전류가 흐르지 않게 돼 있다. 특히 피뢰침 끝에서 60도 안쪽은 벼락을 피할 수 있다고 해 이 각도를 보호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개가 치는 곳에는 가까이 있지 않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벼락 피하기
가끔 신문지상을 통해 골프장에서 벼락을 맞고 사망한 사고가 알려지곤 한다. 다른 곳도 아 닌 골프장에서 번개에 의한 인명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골프장은 평지이거나 낮은 구릉이다. 음전하의 덩어리가 지상으로 내리칠 때는 가장 짧은 경로를 찾는데 평지에서 골프채를 가진 사람은 일단 번개의 표적이 되기 쉽다. 동시에 전하가 많이 모여 있는 뾰족한 곳(전위차가 큰 곳)을 찾기 때문이다.
번개가 칠 때 가장 안전한 곳은 피뢰침이 있는 건물 내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서도 주의해야 할 일이 있으며, 더욱이 실외라면 어떻게 몸을 피해야 할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1. 평지나 산 위에서 번개를 만났을 때는 몸을 가능한 낮게 하고 우묵한 곳이나 동굴 속으로 피한다.
2. 나무 밑은 벼락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피해야 한다.
3. 낚싯대나 골프채 같은 전기가 통하는 뾰족한 물건은 버리고 이로부터 멀리 피한다.
4. 자동차에 타고 있을 때는 차를 세우고 차 안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안전하다. 차에 번개가 치면 전류는 도체인 차 표면을 따라 흘러 타이어를 통해 지면에 접지된다.
5. 일반적으로 높은 건물에 있을 때 번개가 치기 전에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피부가 찌릿찌릿할 때는 벼락이 떨어질 징조이므로 재빨리 바닥에 엎드리도록 한다.
6. 집에 번개가 치면 상수도관이나 전선을 따라 전류가 흐를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7. 번개가 칠 때 전화 통화를 하고 있거나 샤워기로 목욕을 하면 번개를 유도할 수도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 벼락을 많이 맞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바로 버지니아주에 살았던 로이 설리번이라는 공원 순찰대원. 이 사람은 1942년 처음으로 벼락을 맞았고, 1977년 6월 25일에는 일곱번째의 충격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