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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는 생물 블랙박스

한국인의 기원도 밝힐 수 있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는 공룡 DNA로부터 공룡을 다시 복원해냈다.


'쥐라기 공원'이 실현될 수 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아니오"다. 설령 유전공학이 더욱 발달해 공룡과 같은 고생물을 재현시킨다 할지라도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고생물은 현재의 지구환경에 적응할 준비가 전혀 안돼 있기 때문이다.

장구한 세월 지구환경은 서서히 변해 왔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각 생물에게 적응을 요구했고, 변신에 성공한 생물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도태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생물의 적응 흔적이 DNA(deoxyribonucleic acids)에 변화(변이)된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생명과학자들은 DNA를 통해 생물의 구성과 변이를 엿본다. 또한 DNA에는 환경적응에 필요한 추가적인 유전정보도 수록돼 있다.

DNA가 무엇이길래 사라진 생물을 다시 태어나게 해주고, 생물의 시대적인 변이내역을 알려준단 말인가? 그것은 DNA가 생물의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DNA는 생물의 모든 구성요소를 만드는 제조명령에서 본능적인 생존방법까지 기록해 놓은 생명정보의 수록장치이자 생물변천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DNA는 생물의 유전정보를 수록한 이중나선형 생체고분자이다. 아데닌(A), 시토신(C), 구아닌(G), 티민(T) 등 4가지 문자(염기)로 구성돼 있으며, 이 문자가 연속적으로 조합을 이뤄유전정보를 기록한다.

한 생물의 모든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집합체를 유전체(게놈)라고 하는데, 사람의 경우 30억개 염기로 구성돼 있다. 사실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의 진화는 DNA라는 동일한 언어체계를 갖고 진행된다. 따라서 모든 생물은 동일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DNA의 변신

DNA는 영속성과 변이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생물은 종족번식의 본능을 DNA에 실어 1차적으로 실현하지만, 한편으로 지구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매우 서서히 변하고 있다. 지구환경 중 자연방사선, 자외선, 그리고 수많은 변이유도 화학물질들에 노출되면서 DNA 내의 유전문자들은 서서히 바뀐다. 또한 변이생물과의 교접이나 타생물의 침입 등 생물학적인 요인에 의해 DNA가 바뀌기도 한다.

물론 생물은 변환된 DNA 문자를 원상복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 DNA 변이는 자체적으로 교정된다. 하지만 일부는 교정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돌연변이다. 일반적으로 1백만개 중 하나의 확률로 변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게 바뀌어진 유전문자는 바로 영향을 주어 유전병과 같은 형태로 발전해 그 생물을 도태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때때로 돌연변이가 생물의 생육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거나, 더욱 강건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돌연변이의 발생은 간혹 관측되는 현상으로 생물진화의 원동력인 셈이다. 환경적응을 위한 제2 생존방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DNA 변이는 생물 내에 계속 축적된다. 수백-수천년의 짧은 기간에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만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 생물의 모습에 뚜렷히 차이가 생겨 새로운 생물종으로 구별된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은 생물 간의 유전정보 크기가 다르면 변이속도도 다르다는 점이다. 수십억개 이상의 유전문자를 가진 고등생물은 수백만 유전문자를 가진 저급 미생물보다 DNA 내 유전문자가 수천배 많다. 따라서 고등동물의 변이확률이 수천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고등생물이 저급 미생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 혹은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표1) 동물 인슐링 B사슬 1차구조의 비교


고대생물의 추적

DNA를 통해 생물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고생대 생물의 DNA를 얻어서 비교조사하는 일이고, 다른 방법은 현 생물 간의 DNA 차이점을 이해함으로써 생물간의 상호 관계를 정립하고 변화를 구별하는 일이다.

전자는 우선 고생물 DNA 시료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에서 DNA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에서 몇천년 전에 생존했던 사람의 DNA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DNA 분석은 미라의 주인공이 생존시 어떤 지병으로 고생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또 소나무 송진이 굳어져 만들진 호박(amber) 속에는 간혹 과거생물이 파묻혀져 있다. 이를 통해 고생물의 DNA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하지만 그 실현성은 극히 제한적이다. 어쨌든 현재 고대생물의 시료확보가 어려워서 과거생물과 현대생물간의 직접적인 비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돌파구가 열렸다. 즉 현존하는 생물 중에 고대생물이 남아있음을 알게된 것이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은행나무와 깊은 바닷속 화산 근처에 서식하는 심해 미생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생물들은 환경적 변화요인을 극복했거나, 깊은 바닷속처럼 정체된 외부환경에서 서식하는 것들이다. 이들은 고대생물과 거의 같은 형태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물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실험재료가 되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땅속 수km 아래 퇴적암 속에서 생존해 있는 미생물이다. 현재 '색소박테리아'(그림) 등 수천종 이상의 새로운 미생물과 곰팡이류가 보고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제약회사에서 항생제 등 신약개발연구에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층미생물은 수억년 이상 가사상태로 지하암석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미생물의 DNA는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DNA 분석은 타임머신을 타고 머나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듯이 고대생물의 추적을 가능하게 해준다.
 

(표2) 사람 인슐린 유전자 유형과 한국인 사례


사람과 동물의 비교

생물변이의 사례로 인간과 동물의 인슐린 유전자를 비교해보자. 모든 동물은 포도당을 취해 생체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이때 인슐린은 포도당의 혈액농도를 조절해주는 호르몬으로, 인슐린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모든 동물은 긴 세월 동안 인슐린의 구조와 기능을 철저히 유지하고 보존해 왔다.

그러나 인슐린의 구조는 오랜시간 동안 매우 서서히 변해왔다. 그러므로 인슐린의 구조적인 차이는 동물간의 관계와 그 변천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슐린의 1차구조를 비교해 보면 사람은 가축과 거의 유사하고, 조류와는 다소 차이가 있고, 어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슐린의 구조가 사람의 것과 유사한 동물일수록 구조적 변이가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생물 가계도에서 가까운 친척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러한 유전정보의 관계를 이용하면 생물의 분류(分類)와 종(種)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백년-수천년 동안에는 유전자의 변이 정도가 비교적 적으므로 특정 유전자를 기준으로 인종들을 비교하면 인종의 이동과 기원을 엿볼 수 있다. 사람 인슐린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해 한민족의 구성과 외부 민족의 유입을 살펴보자.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는 알파형과 베타형 두종류가 있다.

대부분 한국사람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똑같이 알파형 인슐린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인도인, 중동인, 유럽인들은 알파형과 베타형의 혼합형태로 인슐린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보고됐다. 아프리카인에 대한 조사결과는 없으나 베타형 인슐린 유전자의 근원지가 아프리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합적인 사람의 유전정보 조사는 인류의 이동과 기원에 대한 비밀을 밝혀줄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한국사람의 인슐린 유전자의 분포다. 한국인의 인슐린 유전자는 대부분 알파형이지만, 베타형이 일부 유입됐음을 조사 결과 알 수 있다. 그 수는 적지만 알파형과 베타형의 중간형태인 인슐린 유전자가 한국사람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에 베타형 인슐린을 가진 인종이 유입되고, 그들이 기존 알파형 사람과 동화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이 DNA 변이는 생물간 또는 인종간의 관계, 인종이동, 개인의 유전적 특성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유전체 중 염색체 6번에 위치한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의 유전자들이 인종구별, 개인식별, 골수이식 대상선정 등에 사용된다. MHC 유전자 분석결과도 인류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 정보

근래에 와서 색다른 연구보고가 나와 과학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람과 동물세포 내에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기구가 들어있다. 이는 생체에 필요한 에너지(ATP)를 생산해 공급하는 생육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가 독립적으로 유전정보를 갖고 있고 모계를 통해 그 유전정보를 자손에게 전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정보 구성이 사람의 일반 유전정보와 사뭇 다른 형태임을 알게 됐다. 아주 먼 옛날 한 저급 미생물(예를 들면 미토콘드리아)이 동물세포 내에서 공생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하나로 동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생물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생물간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이 DNA는 생물의 변천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명 역사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범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유전체 연구(게놈 프로젝트)는 1차로 유전정보의 확보와 생물산업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부가적으로 생물진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미 10여종의 생물 유전체 연구가 종료돼 독립된 생명체의 모든 유전정보가 책상위에 놓여 비교 조사되고 있다. 그래서 생명체의 부품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생체분자들이 규명되고 있다. 또 그 구조적인 특성이 유전정보를 통해 상세히 드러나고 있으며, 생물간의 유전정보의 차이와 진화적인 상호관계도 명료하게 밝혀지고 있다. 결국 머지않아 생명의 기원과 생물진화과정의 전모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해석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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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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