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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역사박물관 팔만대장경 보존고에는 세로 22.2cm, 가로 48.4cm, 두께 3.9cm 크기의 목판에 22줄로 줄을 내고 한 줄에 14자씩 글자를 새겼으며, 목판 겉면에는 옻칠을 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썩지도, 좀도 먹지 않고 원모습 그대로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동아일보 98년 3월 12일자).

"창건연대가 오래된 기림사에는 흔치 않은 문화재도 많다. 그 중에서도 보물 제415호인 건칠보살좌상(종이로 만들어 그 위에 옻칠을 하고 다시 금을 입혀 조성)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란다"(한국경제 97년 7월 18일자).

위에 인용한 글들은 짧은 시간에 인터넷을 통해서 찾아본 옻칠에 관한 신문기사 내용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흠뻑 받아온 옻칠은 우리 조상들이 창안해낸 중요한 생활과학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옻나무는 이 땅에 터잡아 살고 있는 1천여 종류의 나무들 중에 소나무, 참나무, 뽕나무, 닥나무와 더불어 선조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나무의 하나였다. 특히 옻나무의 수지인 옻칠은 황칠나무의 황칠과 더불어 수천년 동안 조상들이 영위했던 생활 속에 오늘날의 인공도료인 페인트나 니스 역할을 대신해 왔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내구력이 필요한 모든 기물(器物)에 천연도료인 옻칠을 사용했으며, 이를 기초로 독특한 칠기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이 조칠(彫漆: 옻칠한 표면에 산수, 화조 인물을 부조하는 방법), 일본이 금, 은분을 칠에 배합해 그림을 그리는 금분화칠법을 독특하게 발전시켰다면 우리는 색 옻칠로 그림문양을 그린 칠화칠기(漆畵漆器)를 발전시켰다.

또한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 기물에 붙인 뒤 옻칠로 마감하는 나전칠기(螺鈿漆器)를 창조해냈다.
 

옻나무


옻산의 비밀

옻나무과에 속하는 옻나무(Rhus verniciflua)는 높이 20m, 사람 가슴높이의 나무 둘레가 약 80cm까지 자라는 키 큰 낙엽수다. 특히 진붉은 색으로 변하는 이 나무의 단풍잎은 이 땅의 가을 숲을 현란하게 장식한다.

함경북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랄 수 있는 옻나무는 특히 평안북도 태천군, 평안남도 성천군, 함경남도 신흥군, 강원도 원주군, 충청북도 옥천군, 경상남도 함양군이 주산지였다. 동국여지승람 토산조에는 양질의 옻 생산지로 함경도 함흥과 평안도 태천산을 제일로 들고 있다.

이북의 옻나무는 비교적 키가 크고 나뭇가지의 수가 적은 반면에 이남의 옻나무는 키가 낮고 가지가 많은 모습으로 자란다고 알려져 있다. 옻나무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인 티벳과 히말라야지방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을 통해서 이 땅에 소개되었으리라 추정하지만 정확한 도입시기는 알 수 없다.

옻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 3국에서 오래 전부터 귀중한 약용 및 천연도료로 쓰인 식물자원이었다. 우리의 경우, 신라시대에 이미 옻나무 재배를 권장했으며, 관직으로 식기방(飾器房)이 경덕왕 이전에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옻나무 심기를 적극 권장했으며, 옻나무 세금도 부과했다. 조선시대에도 옻나무에 대한 나라의 적극적 관여는 계속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조 12년에 각 마을마다 옻나무를 자르고 심는 수를 조사 보고하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기록처럼 옻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알뜰하게 가꾸고 현명하게 이용했던 산림자원이었다.

옻나무는 병도 주고 약도 주는 나무다. 산을 오르다 이 나무를 잘못 만져 옻이 오르는 것처럼 이 나무에서 나오는 수지를 잘못 만지면 옻독이 올라 얼굴이 부어 오르고 온몸에 가려움증으로 고생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옻나무의 이파리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괴로워진다. 그런데 옻나무에서 추출한 옻칠액을 바른 생활도구를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까?

물론 잘만 건조시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옻나무 수액에 함유된 옻산은 인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물질이지만 한번 건조되고 나면 다시 물에 적셔도 이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옻칠을 한 가구나 다기를 만져도 옻이 오를 염려가 없다.

이렇게 병도 주는 나무이지만 이 나무가 만들어 내는 옻액은 약도 된다.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옻을 구충, 복통, 변비 등에 사용해 왔으며, 최근에는 옻액의 주성분인 옻산(urushiol)에 항암효과가 탁월한 물질이 함유돼 있음이 밝혀졌다.

특히 베어낸 옻나무를 열처리해 얻은 화칠(火漆)에서 추출한 성분이 항암효과가 탁월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며, 급성 독성이 전혀 없는 5가지 물질의 복합체라는 연구결과가 우리나라 임목육종연구소 나천수 연구관에 의해 발표되기도 했다.

이러한 약용자원의 기능과 더불어 옻나무는 자연도료 중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옻액을 생산해 낸다. 특히 오늘날 국내의 주요 옻나무 산지나 칠기산업의 근거지가 치악산(원주)이나 지리산(함양)과 같은 큰 산 주변에 위치한 이유도 이들 지역에서 질 좋은 옻칠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옻액은 나무의 조직이 파괴되거나 세포가 소실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옻액은 옻나무의 생리작용으로 생성되는 분비물로 조직의 분비간극(옻액구)에 축적돼 있다. 옻액구는 관다발의 체관부에 있기 때문에 껍질 부위는 물론, 잎, 꽃, 열매, 그리고 어린뿌리에도 있다.
 

옻나무의 잎.


이 땅의 옻칠은 세계에서 으뜸가는 천연도료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칠은 서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동양에서만 발달된 특유의 천연도료다. 옻나무 줄기에 상처를 주어 채취한 생옻은 회백색의 액체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갈색으로 변한다. 생옻의 주성분은 옻산이며, 그밖에 고무질, 질소질과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옻산은 합성칠로는 흉내낼 수 없는 효소반응에 의한 3차원 구조의 고분자를 형성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옻칠은 산이나 알칼리에 쉬 녹지 않으며, 내열성, 내염성, 방부성, 방수성, 방충성, 절연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내구성이 요구되는 각종 생활용품과 기물에 사용돼 왔다.

옻이 가진 부패방지와 항균효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나 북한 묘향산의 팔만대장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7백여년 동안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보관중인 대장경판의 표면이 온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던 것은 옻칠 덕택이라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경판에 칠이 벗겨진 부분만 유독 훼손이 심했던 점에서 옻칠의 성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도료가 필요한 모든 재료에 옻칠을 사용했다. 나무는 물론이고, 가죽, 종이, 삼베, 모시, 명주와 같은 천, 금속, 도기 등등에 이르기까지 옻칠을 사용했다. 옻칠이 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했는지는 옻칠을 입힌 재료에 따라 물품을 고유 이름으로 불렀던 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금태칠기(金胎漆器: 녹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금속에 옻칠), 와태칠기와 도태칠기(瓦胎漆器 또는 陶胎漆器: 토기나 도기 표면에 옻칠), 지승칠기 및 건칠칠기(紙繩漆器, 乾漆漆器: 종이를 백골로 한 옻칠로 경주 기림사의 보물 제415호 건칠보살좌상이 좋은 예다), 대모칠기(玳瑁漆器: 거북 껍데기에 옻칠을 해 장식), 금박칠기(金箔漆器: 금박을 옻칠로 붙인다)와 나전칠기나 칠화칠기 등이 그것이다.

옻칠은 이처럼 예로부터 각종 생활소품, 공예품 등에 사용돼 왔으며, 오늘날은 무공해 도료로 해저케이블선, 선박, 비행기, 각종 첨단 기기 등에 산업용으로 이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 옻나무에서 생산되는 생옻은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옻액의 구성성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국산 옻액이 최고의 품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이유는 옻산의 함량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옻산의 농도는 옻칠의 품질을 좌우한다고 알려져 있다. 옻산의 농도가 높으면 칠을 할 경우 도막(塗膜)이 두껍게 생기고, 투명성이나 광도가 좋기 때문에 옻칠 산업이 발달된 일본에서조차 한국산 옻액을 최고로 친다.

옻 품질은 채취시기에 따라 다르다. 초칠(6월 하순에서 7월 중순 사이에 채집)이나 말칠(8월 하순에서 9월 하순 사이에 채집)보다 성칠(盛漆: 7월 하순에서 8월 하순 사이에 채집한 것)이 채집량도 많고 품질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발전시킨 나전칠기


사려져가는 칠기문화

옻칠은 살아있는 도료다. 일반 인공 화학도료는 건조한 후에 색이 차츰 퇴색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옻칠은 비록 처음에는 색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색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목기에 옻칠을 한 경우, 처음 수년 동안에는 목기의 나무 결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난 이후에는 차츰 발색을 하므로 나무결이 제 색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수천년 만에 출토된 유물들이 오늘도 생생하게 제 색을 발하는 이유도 자연도료인 옻칠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물 중 칠기가 출토되고 있음을 미루어 볼 때 이미 4천년 전에 중국에서 옻칠이 천연도료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평안남도 대동군 용인면 남정리 낙랑시대의 고분에서 옷상자 채화칠협이 출토된 것을 미루어 이미 2천여년 전에 옻칠이 널리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정제칠, 채색칠, 건칠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나전칠기가 우세해 순 옻칠제품이 많지 않지만 옻칠의 전통은 최근 3-40년 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한때 5만명이 넘었던 이 땅의 나전칠기 기능인 수가 오늘날은 5천명이 채 안되는 현실처럼 수천년 동안 이 땅에 꽃피웠던 칠기문화는 요근래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산업화의 여파로 급격하게 변한 주거생활 양식은 서양식 가구를 유행시켜 옻칠의 쇠퇴를 가속시켰고, 옻칠 대용품으로 개발된 캐슈라는 인공도료는 칠기산업의 기반을 더욱 위축시켰다.

칠기산업과 관련지어 안타까운 사실은 옻액의 가공기술이 없어서 옻액을 싼값에 일본에 수출하고, 일본에서 가공한 칠액을 비싼 값에 역수입하고 있는 점이다. 칠기를 다루는 기능인들은 우리의 칠정제 기술이 일본의 4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본의 옻칠 정제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한때 훌륭한 칠기문화를 보유했던 우리의 칠정제 기술이 오히려 퇴락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우리는 지난 30여년 동안 수천년의 전통을 가진 칠기문화를 계승 발전시키지 못한 반면, 일본은 지난 1백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옻칠연구를 계속해 칠기문화를 대중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칠기문화의 성쇠에 대한 두 나라의 차이는 일본이 나무제품을 실생활에 여전히 많이 사용하는 문화적 배경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전영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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